영국에서 대한민국을 정염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추노>를 보면서 화제가 되고 소통이 되는 것이 겨우 이다해의 화장과 선정성이 전부였다는 것은 제작진도 <추노>를 즐겨보던 팬들에게도 실망스럽고 아쉽기만 했습니다. 논쟁을 위한 논쟁을 통해 누군가는 소득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추노> 자체는 타격만 입고 있었습니다.

죽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9회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죽음'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실행되었다는 것입니다. 8회 업복이에 의해 노비를 가장 심하게 수탈해 왔던 양반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본격적인 '양반사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 정세가 흉흉해지며 정치꾼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제공하게 만듭니다. 결국 양반과 상놈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업복이 패거리도 정치적인 술수에 놀아나는 형국으로 그칠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보여 지는 가치는 <추노>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의미가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한 동안 실망스러웠던 <추노>가 다시 의미 있게 다가왔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작가에 의해 진행된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명나라 내시부 출신의 윤지가 언년이를 죽이기 위해 송태하와 싸우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의외로 오랜 시간 등장할 가능성도 높았던 그녀를 제거했다는 것은 이야기의 중심이 어떻게 변화할지 강하게 언급하는 대목입니다.

황철웅을 쫓아 뒤처리를 해주던 천지호 부하들의 죽음에서는 양반들의 잔인한 정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활용하고 과감하게 버려지는 그들의 운명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음을 봤을 때 잔인한 '정치인들의 피'는 유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돈만 밝히던 천지호의 수하들이 독살을 당하고 오른팔인 만득이가 제주에서 돈을 밝히다 냉철한 황철웅에게 죽임을 당하며 새로운 국면을 마련합니다. 돈을 쫓아 황철웅의 뒤처리만 해주던 천지호가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 게 추노야"라며 울먹이며 만득이를 묻는 장면은 이후 추격의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원소를 죽여야만 하는 철웅과 지켜내야만 하는 태하의 싸움은 결정적인 순간 화려하게 꽃을 피울 예정입니다. 더불어 황철웅과 함께 했던 천지호 패거리들이 모두 죽임을 당함으로서 새롭게 등장하게 될 송태하의 부하들은 중반을 넘어 후반까지 <추노>의 재미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역할을 담당할 듯합니다.

이는 단순히 노비를 쫓고 쫓기는 단계를 넘어서 혁명을 꿈꾸는 자들의 외나무다리 대결이 임박해오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9회 가장 극적인 죽음은 언년이를 마음속으로 사모 해왔던 백호의 죽음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언년이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백호는 아이러니하게도 언년이가 죽어도 잊지 못하는 정인을 죽이려는 순간 죽임을 당합니다.

찢어진 언년이의 그림을 서로 쥐고 있는 백호와 대길의 모습은 현재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장치였습니다. 누구에게도 가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언년이의 조각난 그림을 손에 쥔 대길과 백호. 그들은 어쩌면 한 여자를 좋아해서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 속에 던져진 비운의 인물들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 큰놈이가 사는 곳을 알게 된 대길은 그길로 백호가 살던 곳으로 향하고 자신의 얼굴에 깊은 상처를 준 언년이의 오빠이자 부모를 죽인 원수인 큰놈이와 대면하게 됩니다. 그렇게 큰놈이에게 언년이가 송태하와 혼래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은 더욱 복잡한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제거하는 이유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저 사랑에 목을 매던 대길이 사랑보다도 더욱 값진 그 무엇인가를 깨달아 갈 수 밖에 없도록 이끌기 위해, 극적인 죽임들이 9회에서는 폭풍이 몰아치듯 휘몰아쳤습니다.

대길을 혁명가로 만드는 송태하

대길이가 혁명가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만으로 보면 그가 혁명가일 거라는 추측도 불가합니다. 다만 자신이 사랑하는 언년이를 위해 '출세해 세상을 바꿔 너와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는 희망을 피력했을 뿐 대길이 혁명가가 될 변수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송태하와 함께 하며 그의 존재와 이유를 알게 된 언년이와 결국은 만날 수밖에 없는 대길은 함께 혁명을 꿈꿀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될 듯합니다. 비록 연적이 되어버린 존재이지만 송태하가 이루고자 하는 꿈과 그 꿈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존재는 서로 쫓고 쫓기던 대길과 송태하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양반으로서 대쪽 같은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던 송태하가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함께 동행 하던 언년이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한 언년이가 노비 출신임을 그는 알게 됩니다. 양반이 된 노비와 노비가 된 전직 훈련원 교관은 아이러니하게 서로 뒤바뀐 신분으로 조우합니다.

그렇게 송태하는 대길이 언년이에게 다짐했던 '양반과 상놈이 없는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꿈'을 나눌 수 있는 동기가 부여되었습니다. 그들이 동일하게 혁명적인 반란을 꿈꾸는지 알 수 없지만 언년이를 둘러싼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일치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혁명을 꿈꾸는 대길과 혁명 속에 사랑이 들어와 버린 태하는 서로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를 의지하고 함께 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적이지만 적일 수 없는 그들은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혁명을 해나갑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럴 의도가 없어도 그렇게 혁명의 길을 걸어야만 하는 대길의 운명은 사랑에 울고 웃는 지고지순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사랑을 위해 양반이라는 지위까지 버려가며 저작거리에서 추노꾼으로 살아야만 했던 대길은, 이제 무예의 맞수이자 연적인 송태하에 의해 혁명의 소용돌이 중심이 내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간사한 지략으로 나라를 흔들려는 이경식에 대항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춘 송태하와 대길은 같은 인물에게 쫓기며 그 인물을 쫓는 역할로 극의 재미를 더해 줄 예정입니다. 죽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추노>는 대길과 송태하의 만남부터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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