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 서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 5월 미디어국민위원회에서이다. 당시 미디어국민위원회에서는 여당의 미디어 관련 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논의가 한창이었다.

▲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윤 교수는 지난해 5월 1일, <신문·방송 겸영과 여론다양성> 특별공청회에 여당 측 공술인으로 나왔다. 윤 교수는 이날 공술문에서 “지난 수년간 의제설정, 프레이밍 등 다양한 미디어의 여론형성효과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이 TV와 인터넷이었다”며 “소유제한 완화에 따라 우리나라 방송시장에 경쟁력 있는 사업자들이 진입할 경우 종래 지상파TV들의 과도한 여론지배력이 완화되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윤 교수는 이 공술문에서 지상파 방송, 라디오, 주요 일간 신문, 뉴스채널, 포털사이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지배력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여론지배력이 70%를 넘어섰다는 결론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정부 여당이 미디어법 개정 논의를 함에있어서 핵심적인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다.

윤 교수는 이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의 인터뷰에서 지상파 방송의 미디어법 보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 교수는 “TV에 몇 개씩이나 되는 라디오 채널까지 소유하고, 막강한 '여론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자신들의 영향력만 믿고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며 “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심각한 편향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조선일보 2009년 7월 28일자).

하지만 최근 지상파방송의 여론독과점을 주장하며 지상파 방송 소유규제 완화와 신규 사업자로서 종합편성, 보도전문 채널의 도입을 주장했던 모습과 사뭇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2일, 방송협회가 주최한 <종합편선PP채널도 도입과 정책 과제> 토론회에서 윤 교수는 “나도 강혜란 소장(여성민우회 미디운동본부)과 비슷하다”며 토론을 시작했다. 강혜란 소장은 수용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대표적인 미디어 ‘공공론자’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윤 교수는 “종편채널, 보도전문 채널 승인을 지난해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해를 넘겼다”며 “일각에서는 (종편 사업자를 선정을) 빨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종편에 진출하려는 메이져 신문이 사업권을 노리고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굳이 정부의 입장에서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윤 교수는 “종편이 상당히 지상파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방통위 정책 담당자들이)차별적인 특혜를 주고, 편성 제약도 없고 광고도 풀어 주는 등 종합적인 미디어 관점에서 볼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바라건데’ 방송정책 담당자들이 종편, 지상파 방송, 고사위기에 있는 신문저널리즘까지 논리적 상충이 없는 최적의 미디어 정책을 고민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지상파 여론독과점 해소에서 최적의 미디어 정책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어 윤 교수는 '방송정책 담당자들이 생각해야 할 대원칙'을 제시했다. 제시된 네 가지 대원칙은 ▲‘미디어 시장을 키워야 한다', ▲'위기에 빠진 미디어에 대해서는 회생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공영, 민영 미디어 영역의 벨러스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보도·시사물에 있어서는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이다. 또 “이러한 원칙에 비춰 봤을 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도입에 관해서는 업그레이드 된 정책이 필요하다”며 “필요하다면 법이라도 다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가 이번에 제시한 방송의 ‘4대 원칙’은 평소에 주장해 왔던 산업론에 입각한 것이라고 보다는 방송이나 매체의 공공성을 대변하는 이들의 주장과 닮아 있다. '위기에 빠진 미디어 회생책'과 '미디어 밸런스', '공/민영 미디어 조화'의 원칙 모두 미디어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또 윤 교수는 ‘첫 번째 미디어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전제를 밝히면서도 “시장이 커져야 뉴스와 시사를 비롯한 프로그램의 질이 높아 질 수 있다”는 공익적 근거를 제시했다.

윤 교수의 생각은 미디어법 통과 이후, 방통위의 태도 등을 보면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방송협회 토론회에서 제시한 ‘네 가지 원칙’은 이날 즉흥적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 교수가 지난해 12월호<신문과 방송>에서 지적한 개정된 방송법의 문제점과 토론회에서 제시한 ‘네 가지 원칙’은 거의 유사하다.

이 기고문에 윤 교수는 “산업적 뿌리가 건강해야 좋은 방송이 될 수 있다”며 “공영방송은 공영방송답고 민영방송은 민영방송답게, 지상파 방송은 지상파 방송답고 유료 다채널 방송은 유료 방송답게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윤 교수의 바뀐 생각을 토론회를 통해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차이가 났다.

토론회를 본 한 언론학 연구자는 “전형적인 학자의 모습”이라며 “윤 교수가 말한 원론은 어디든지 붙일 수 있다”고 비꼬았다. 또 “세 명의 발제자가 모두 종편채널에 대해 비판이기 때문에 립서비스 한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참석자는 “윤 교수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이 아니라, 숨고르기를 하며 종편도입에 지지부진한 방통위와 청와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 참석자는 지난해 “공언련의 토론회에서의 발제가 사기극이었던 건지, 아니면 오늘의 주장이 사기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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