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우먼>을 봤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건 새로 나온 볼만한 영화라든가, DC코믹스의 새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라든가 하는 요건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추억 여행' 때문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 그 시절 '린다 카터'의 원더 우먼이 아닌데도 극장으로 향한 내 발길을 보면서, 어린 시절 슈퍼맨과 배트맨을 보던 아이들이 성장해 극장판 히어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그 심정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70년대 그 시절의 <원더 우먼>

영화 <원더 우먼> 스틸 이미지

먼저 TV에서 <원더 우먼>을 방영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1979년부터 TBC를 통해 방영된 <원더 우먼> 시리즈는 당시 인기를 끌었던 <육백만불 사나이>부터 <소머즈>, <전격 z작전> 등 인기 있는 외화 시리즈의 흐름 속에 등장했던 '미드'이다. 그저 '미드'여서 인기가 있었던 것일까?

70년대는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의 여배우 트로이카로 상징할 수 있는 시대다. 이 여배우들은 그녀들의 대표작이자 70년대 드라마의 상징적 작품이라 할 <청실홍실(1977)>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전도유망한 능력남을 놓고 순애보의 경쟁을 벌이는 두 여인, 그들이 부잣집 딸이건 가난한 직업인이건, 화려하건 순수하건, 그들의 삶의 결정적 요소는 '사랑'이고 '결혼'이었다. 그런 순종적이고 여전히 현모양처를 지향하는 여성들이 드라마를 점령하고, 그로부터 배제된 여인들은 슬픈 운명의 서사를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되풀이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황금 팔찌를 두르고 총알을 막아내며,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을 올가미로 대번에 굴복하게 만드는 여성 히어로라든가, '뚜뚜뚜뚜'거리며 저 먼 곳의 소리를 듣고 대번에 달려가 적들을 제압하는 그녀들은 '획기적인 여성상'이었다. 맨날 TV에서 지고지순하게 울며불며 사랑을 위해 매달리던 여성들만 보던 그 시절 아이들에게, 대놓고 온몸의 라인이 드러내는 '섹슈얼'한 미스 아메리카 출신의 미녀, 정돈되지 않은 듯 날리는 머릿결에 자연스러운 옷차림으로 어떤 미션도 척척 수행해내는 '이지적'인 분위기의 이방인은 신선하고 매력적인 '신여성'이었다.

하지만 '진취적'인 그녀들의 캐릭터만이 매력적인 건 아니었다. 당시 소녀들에게 <원더우먼>이나 <소머즈>는 또 다른 버전의 '로맨스' 담이기도 했다. 아마존의 공주였던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이역만리' 미국으로 와, 안경만 쓰면 못 알아보는 비서로 불철주야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원작이 참조했다는 '마가렛 생어의 페미니즘'과는 별개로, 현대판 인어공주와도 같은 ‘로맨틱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서사로 다가왔다. '소머즈'와 ’육백만불 사나이‘의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도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캐릭터는 진취적이었지만, 동시에 지고지순한 순애보의 주인공들이었다.

2017년의 원더우먼

영화 <원더 우먼> 스틸 이미지

이제 2017년에 돌아온 <원더 우먼>은 그 시절 '사랑'의 기억을 모티브로 삼는다. 하지만 원더우먼이 하는 2017년의 사랑은 1970년대의 그녀와 또 다르다.

아마존 데미스키라 왕국의 다이애너 공주, 그녀는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공주의 신분으로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사'로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나갔다. 그리고 이제 왕국의 그 누구도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을 무렵, 데키스키라 왕국을 지키는 버뮤다 삼각지대가 뚫리고 '트레버 소령'이 등장한다.

그의 등장과 그를 통해 전해들은 전쟁은 다이애너에겐 '하네스'의 귀환으로 전해졌고, 의기가 충천한 그녀는 그를 따라 '하네스'를 제압하기 위해 인간들의 세상으로 떠난다. 하네스에 대한 전의가 충만한 다이애너와, 역시나 휴전 회담을 앞두고 스파이로서 적의 위기를 감지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의 음모를 막으려는 트레버 소령은 다른 듯 같은 모습이다.

영화 <원더 우먼> 스틸 이미지

인간 세상의 실상을 모른 채 하네스만을 향해 맹목적인 다이애너나, 자신이 손에 넣은 적의 음모를 막기 위해 군율과는 상관없는 작전을 계획하는 트레버 소령의 고지식한 애국심은 궤를 같이한다. 마치 아직 세상의 쓴 맛을 보기 전의 순수한 열정을 가진 미성년들처럼. 그런 그들이 자연스레 서로에게 공감하고 의지하며, 나아가 남자와 여자로서 '사랑'의 감정까지 전개해 나가는 것에 이물감이 없다.

시리즈물로서 미드 속 다이애너가 트레버 소령의 비서로 자신을 감추며 그의 안위를 위협하는 적들의 무리를 제거하는 데 매진하는 것과 달리, <원더 우먼> 속 다이애너는 이제 세상을 구할 '히어로'로서 '업그레이드될 사명을 부여받는 존재이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은 '자각'의 매개체이지만, '동반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기에 트레버 소령은, 가장 불가능한 평화의 조건을 가지고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한 패트릭 장관의 모습을 한 하네스로 인해 인간 세상의 부조리함에 좌절하는 원더 우먼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존재로 '산화'한다. 인간은 부조리하나, 그럼에도 그 부조리함을 넘어서는 '희망' 역시 인간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인간 세상에 온 히어로'의 명제'를 풀이해주는 존재로 그 역할을 다한 채, '영원한 하지만 이승에선 그 운명을 다한 사랑'으로 그녀를 인간 세상에 머물게 한다.

영화 <원더 우먼> 스틸 이미지

2017년의 <원더 우먼>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원더우먼과 트레버 소령의 이별의 순간이었다. 그 어떤 사랑 영화보다도 극적이었고 슬펐던. 그리고 그 슬픔은 곧 히어로 원더우먼의 동력이 된다.

1970년의 다이애너가 영웅이지만 매번 트레버를 구해줌에도 그의 그늘 속 여성으로 남겨진 것과 달리, 2017년의 다이애너는 트래버를 통해 '남녀간의 사랑'을 이루지만 동시에 동지인 그를 통해 히어로로서 자신의 임무를 '자각'한다. 그리고 이제 '사랑'의 온기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얻고 '히어로'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해나간다. 2017년 그녀에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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