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수요일’ 이후 국면의 큰 그림은 대략적으로 확정된 듯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는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유력하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이보다 불투명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국회 본회의 표결까지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레 해 볼 수 있다. 문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이다.

강경화 후보자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야당의 ‘타겟’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문재인 정권의 ‘개국공신’이 아니기 때문에 야당 입장에선 낙마에 따른 무리한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는데다 문재인 정부 첫 인사 중 제기된 의혹이 가장 석연찮아 보이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여러 쟁점에 대해 언론의 무리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딸의 위장전입 문제는 청문회를 통해서도 제대로 해명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 석연찮은 의혹을 상쇄하는 것은 그가 가진 ‘상징성’이다. 비고시출신, 여성, 인권전문가라는 점은 폐쇄적이고 주류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외교부에 ‘촛불 정신’을 적용할 유력한 유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청문회 이후 ‘능력에 대한 평가’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강경화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외교수장에 걸맞는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잖아도 과거 이력을 볼 때 양자외교나 북핵 문제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던 판국이었다. 강경화 후보자가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청문회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강 후보자가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론의 반응도 썩 좋은 것 같지는 않다. 9일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창간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질과 도덕성이라는 측면에서 강경화 후보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은 전체의 38.9%로 32.9%를 차지한 긍정적 응답보다 많았다. 김이수 후보자나 김동연 후보자의 경우 긍정적 응답이 부정적 응답보다 높았다.

만일 국회가 강경화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을 철회할 것이냐, 강행할 것이냐의 선택지를 눈앞에 두게 된다. 일단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이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고 있지 않지만 내부적으로 임명 강행 시나리오를 따져보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럴 경우 추경과 정부조직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태에서 국회와 대립국면을 만드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쨌든 국회는 여소야대의 상황이다.

이 상황을 해소할 키는 국민의당이 쥐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인사청문회 내내 보여준 태도로 보아 협상이 불가능한 상대라는 점이 드러났고 바른정당은 협력을 기대할 수 있는 의석수에 비해 내줘야 할 적절한 정치적 카드를 모색하는 게 쉽지 않다. 국민의당은 ‘슈퍼 수요일’ 이전만 해도 후보자 전원의 임명에 협력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였지만 8일 의원총회에서 사실상 강경화 후보자 낙마를 결정했다. 언론은 청와대에 비상이 걸렸다고들 쓰고 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는 ‘올코트 프레싱’을 통해 국회를 설득해보겠다는 입장이다. 12일 추경 관련 국회 시정 연설이 전환점이 될 거라는 예상도 있다. 물론 설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좋다. 실제로 외교안보 분야 담당 인사의 임명은 중요하고 시급하다. 당장 6월 말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최근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내놓는 것도 시급하다. 더군다나 예상하지 못했던 구설로 국가안보실 2차장이 사실상 경질된 상태다.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정권으로서 다소간의 흠이 있더라도 상징성 있는 외교부 장관의 임명에 동의해주기를 국회에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의당의 입장 변화는 결국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다시 치를 수도 없는 일이니 결국 협상테이블에는 이후의 정치 일정에 대한 것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앞서 언급한 추경이나 정부조직법의 쟁점, 또 다른 장관급 공직자 후보 지명에 대한 의견 수렴 등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의 상당 부분은 청와대의 정치적 역량에 달린 일이다.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청와대가 ‘일방통행’한다는 비판을 자초하는 상황을 최대한 방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코드 인사’ 문제다. 중앙일보는 9일 지면의 논설을 통해 강경화 후보자의 낙마를 예상하면서 그 다음에는 문재인 정권과 코드가 맞는 ‘자주파’가 새로운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보수언론이 반복적으로 ‘노선 논쟁’을 예고하고 있는 그림이다.

중앙일보는 이 논설에서 “김기정 후임으론 또 다른 핵심 코드인 박선원 전 청와대 비서관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썼다. 다른 언론 보도를 보면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 후임은 조병제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가 유력하다고 한다. 박선원 전 비서관은 ‘천안함 폭침’에 의문을 제기한 이력이 있는 인사로 ‘노선 논쟁’을 기대하는 보수세력이 어떻게든 수면 위로 등장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인물이다. 중앙일보가 이 논설을 통해 콕 집어 이름을 거론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일 중앙일보의 우려(?)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길 기대하는 국민의당을 설득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옥선(왼쪽부터)·이용수·김옥선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므로 살얼음을 걷듯 하되 설득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럼에도 강경화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눈앞엔 외로운 결단만이 남는다. 이런 상황을 막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이 온다면 임명 강행보다는 철회를 고려하는 게 낫다.

기성 정치의 문법은 이런 경우를 청와대 권력의 약화로 보고 꺼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문재인 정권의 특성과 처해 있는 상황을 상기하면 이런 선택이 정치적 손해로만 작용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청와대의 역량에 따라 국회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장관 임명을 강행했던 과거 정권의 ‘불통’과 차별화하면서 공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묘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새로운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강경화 후보자 이상의 상징성을 갖춘 인물을 지명한다면 야당도 두 번 연속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는 게 쉽지 않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남은 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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