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이하늬)이 요리 콘테스트를 통해서 라스페라 공동 셰프로 들어오게 됨으로써 현욱(이선균)은 대단히 껄끄러운 상황에 빠지게 됐다. 한편 방영 이후 최고로 불편해진 파스타에 공효진의 연인 류승범의 까메오 출연으로 흥미를 더해주었다.

더군다나 류승범이 주문한 파스타가 기존 메뉴에 없는 이름도 생소한 것인데, 이 주문부터 두 셰프인 현욱과 세영은 정반대의 입장으로 대립하게 된다. 당연히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것은 새우. 두 사람의 다툼에 유경은 팔뚝에 화상을 입는다. 괴짜 의사를 만나 링거를 맞고 하룻밤 입원까지 하게 된다.

드라마 속에서 입원은 팽팽하던 긴장이 새로운 국면을 갖게 될 터닝포인트로 작용하는 경우다. 아니나 다를까 팔뚝에 링거를 꽂고 유경의 병실을 찾은 현욱은 결국 유경의 손을 잡고만다. 이거야 말로 요즘 말로 올레!를 외칠 순간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현욱의 잘난 척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동안 자기 마음을 숨겨왔던 현욱이 지난 8회 끝무렵에는 분명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토라져 툴툴거리면 반대방향으로 간 유경을 따라온 현욱은 버스 정거장에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가 널 좋아하면 안될 이유가 몇 가지나 되는 지 아냐"고 한다. 좋아한다는 말인데 남자란 동물은 이런 말투를 택하게 된다. 그에 대한 유경의 대답은 "저는 그냥 계속 좋아지는 이유나 생각 할래요"하고 버스에 오른다. 잔뜩 겉멋부린 현욱의 표정이란, 같은 남자라도 통쾌할 정도로 고소하다. 이처럼 남자는 감정에 충실치 못하다. 게다가 권력까지 갖고 있다면 그 허위는 소유가 아니라 속박이 된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할 공효진의 짧은 시같은 고도의 함축된 대사들을 상기해보면 재미를 더할 것이다. 6회에 현욱이 바다에 빠진 후 컵라면을 먹으며 짧게 말한 "이제 술이 깬다"와 7회에 "그런데 왜 나왔을까?" 그리고 한 회를 건너뛰어 9회에 병원에서 입원을 종요하는 의사와 김산의 권유에 "안 되는데.."하며 묘하게 웃는 모습이다. 사실 이들 대사는 모두 독백이다.

겨우 한 마디에 불과한 유경의 독백 시리즈는 아주 긴 내레이션보다 훨씬 근사하게 전환을 설명해준다. 결국 9회의 "안되는데"는 현욱을 옆 침상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마초 현욱의 하릴없이 무너지게 했다. 이렇게 해서 현욱은 자기의 룰 두 개를 연달아 스스로 깨버리게 됐다. '내 주방에 여잔 없다'와 그 주방에 역시 없는 '사랑'을 있게 하고 있다. 다만 첫 번째 파격은 유경 때문이라면 두 번째는 세영 때문이다.

사내는 위협이나 위험 속에서 본능적으로 여자에게 의지하게 된다. 자기만의 권력을 세영과 나눠야 하는 마초 현욱에게 라스페라의 주방은 놓을 수도 없지만 또 한편으로 피하고 싶은 헤게모니 다툼장이다. 그럴 때 때마침 유경이 다쳐서 입원하게 됐으니 상처 입은 현욱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욱이 유경의 손을 잡게 된 것은 유경에 대한 순수한 감정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대한 위안을 찾기 위한 것이다.

처음에는 유경을 통해 여자의 섬세한 심리를 공부하는 맛이 쏠쏠했는데 갈수록 남자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에 놀라게 된다. 파스타는 남자를 잘 아는 드라마다. 등장인물이 구태의연하게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유경이 입원한 후 빈 주방에서 물이 줄어든 붕어 와인잔에 물을 부어주는 것 같은 상징적 수단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심리를 그려내기에 가벼운 드라마이지만 그 즐기는 방법에는 꼼꼼함을 요구한다.

한 지붕 두 셰프의 파스타 문화예술위를 풍자하나? 물론 아니다. 히어로라면 몰라도 파스타가 현실 정치에 대해서 풍자를 할 깜냥은 아니다. 그러나 공교롭게 한 지붕 두 위원장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래 예술위)와 똑 같은 상황이 벌어져 파스타를 바라보는 시선이 흥미롭다. 일반인에게 예술위는 대단히 생소한 기관이다. 노무현 참여정부 전에는 문예진흥원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되었다가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체제로 바뀌었다.

MB정부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수많은 산하기관장에 대한 물갈이 나선 것은 지금은 벌써 희미해졌으나 당시로는 꽤나 큰일이었다. 대부분의 기관장들은 선선히 사퇴를 받아드렸으나 당시 예술위 김정헌 위원장은 임기 보장의 의지를 굳히지 않았고, 결국 유장관은 김위원장을 해임했다. 이후 법정 다툼을 통해 작년 12월 김 위원장은 해임무효 판결을 받았고 곧 이은 해임효력정지까지 승소해 사상 초유의 한 지방 두 위원장의 웃지 못 할 상황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이 문화계에 던진 충격은 대단히 크지만 일반 시민이 평생 가야 예술위와 관계 맺을 일이 없기에 이번 사태가 어떻게 불편한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때마침 라스페라의 주방에 두 명의 셰프가 같이 서면서 벌어지는 불편한 모습들이 그려지면서 본의 아니게 예술위를 풍자하는 형국이 빚어졌다. 게다가 화요일 방영될 10회에는 앞서 마초 셰프 현욱에 의해 강제 해고당했던 라스페라 3명의 여자 요리사들이 이 사태에 반발하는 유학파의 반발하는 통에 재입사하게 되어 이러저러 더욱 닮은꼴이 돼가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