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전동에 있는 LG유플러스고객센터. 눈이 퉁퉁 부어오른 채, 울면서 퇴근하는 사람을 봤다. 동료로 보이는 이가 옆에 달라붙어 어깨를 감싸고 위로했지만 눈물은 계속 났다.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같은 회사에 다녔던 사람들을 잘 안다. 서른살 이문수, 열여덟 홍수연. 두 사람도 그랬다. 책임감 넘치고 씩씩한 이들은 회사를 다니며 울었다.

이문수는 유서를 썼고 홍수연은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이문수의 유서는 “노동청에 고발합니다. 내용상을 보시고 미래부 방통위에도 접수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회사가 시간외수당과 인센티브를 착복하고 상담사들에게 영업을 압박한다고 썼다. “거대한 사기꾼 같습니다” “여긴 고객센터가 아니라 거대한 영업조직일 겁니다”라고 썼다.

홍수연은 콜(call) 수를 못 채워야 퇴근할 수 있었다. 귀책이라도 있다면 퇴근시간이 훌쩍 지나서도 녹취파일을 듣고 반성해야 했다. 그리고 딸이 퇴근하기만을 바라는 아버지, 저녁밥을 차리고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아빠, 나 회사야. 콜수 못 채웠어.” “귀책 때문에 녹취 듣고 있어.” 홍수연도 이문수처럼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회사를 관뒀다.

희망연대노조 제공 사진

지난 1월 지역신문에 홍수연의 기사가 실렸다. 나는 두 달 동안 그의 삶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회사를 뒤졌다. 가족, 친구, 현직자, 퇴직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원청 LG유플러스와 하청 LB휴넷이 국회에 제출한 서류뭉치들을 몇 번이고 들쳐봤다. 이 과정은 2014년 이문수의 유서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다.

회사는 상담사들을 소모품처럼 다뤘다. 수습기간 중에도 콜수 압박과 실적 압박을 가했다. 상담사들을 10등급으로 나눠 평가했다. 실적이 나쁘면 녹취를 듣게 하거나 빽빽이(깜지)를 쓰게 했다. 이 회사 퇴직자의 평균근속은 0.85년… 이 회사는 2주마다 사람을 뽑았다.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콜센터의 상담사는 “어떻게 이런 곳이 여태껏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족들은 자식을 가슴에 묻지 못한다고 했다. 수많은 노동‧사회운동단체들이 모였고, 석 달 넘게 LG유플러스에 이야기했다.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고,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사회에 재발방지를 약속하라고 했다. 그런데 석달이 지나도록 LG는 대화도 교섭도 추모도 사과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책임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법적으로 사용자가 아니고 아직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잊고 있는 사실들이 있다. 고객센터를 “거대한 영업조직”으로, “거대한 사기꾼” 같은 회사로 만든 것은 바로 LG다. LG는 고객센터의 적정업무량, 적정인원은 물론 ‘인당 단가’와 ‘영업이익률’도 결정한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기본급 113만5천원, 70여가지로 구성된 실적급 평가기준은 사실상 LG가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LG는 상시지속업무인 상담업무를 외주화했다. LG는 고객센터 상담사 5천여명을 회사 4곳과 센터 9곳으로 쪼갰고, 이중 가장 큰 규모의 센터들을 LB휴넷에 넘겼다. 이 회사는 주주와 경영진 대다수가 LG그룹 창업주인 구씨일가의 직계자손들이다. 노동자들을 철저히 쪼개고 쥐어짜 만들어낸 이익을 원청 LG유플러스와 총수일가 구씨들이 챙겼다.

이런 사실들은 변하지 않는다. 이문수, 홍수연… 잊지 않을 것이다. LG유플러스 그리고 구씨일가에게 묻고 싶다. 당신네들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 죽었다.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게 그렇게도 하기 힘든 일인가. 지금도 당신네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울고 있다. 이런 지옥을 내버려 둘 것인가. 재벌에게도 양심이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