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목동 방통심의위 ⓒ미디어스
시사·보도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언론인이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게 하나 있다. 아이템을 수시로 점검하는 데스크와 시청자도 물론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대상이지만, 현 시점에서 언론인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요주의 대상은 바로 방송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이진강, 이하 방통심의위)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중요시 하는 방통심의위는 인터뷰 내용을 긍정, 부정으로 나눠 ‘균형성’과 ‘편향성’을 논하기도 하며, 때로는 방송을 제작한 언론인을 불러 방송 제작 취지를 묻기도 한다. 그러면서 “법정제재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니까 부담을 갖지 말라”는 친절한 코멘트를 건네기도 한다. 또 일부 특정 단체의 지속적인 민원 제기도 넓은 아량으로 받아준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27일 전체회의에서 지난해 12월1일 방송된 MBC <PD수첩> ‘4대강과 민생예산’에 대해 ‘객관성’을 이유로 권고를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방송사 재허가시 감점 요인이 되는 법정제재가 아닌 행정지도에 속하는 ‘권고’라는 점에서 큰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진행된 회의를 지켜본 나로서는, 일부 심의위원들이 PD수첩 징계를 위해 굳이 트집을 잡으려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날 회의에서 이진강 위원장을 비롯한 이재진, 권오창, 전용진, 김유정 등 여당 측 위원들은 “PD수첩 방송이 큰 문제가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일부 오해할 수 있는 부분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권고’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백미숙, 이윤덕, 엄주웅 등 야당 측 위원 3명은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결국, 엄주웅 위원이 “권고로 결정을 할 거면 공정성 등 다른 조항을 근거로 대지 말고, ‘객관성’을 명시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를 들어 권고로 하자”는 중재안을 제시, 위원들이 동의하면서 ‘권고’로 결정됐다.

방통심의위가 PD수첩 방송에 대해 문제를 삼은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4대강 사업 중 낙동강 공구를 동지상고 출신 건설사가 휩쓸어야 하느냐는 취지의 의혹 부분에 대해 면밀하게 검증하지 않고 자료화면과 인터뷰, 자막 등을 방송한 점 △인천국제공항공사 매각자금을 4대강 혹은 정부추진 토목사업 건설비로 충당하려는 것 아니냐는 등 확인되지 않은 불명확한 사실을 방송한 점이다.

▲ 2009년 12월 1일 방영된 MBC PD수첩 '4대강과 민생예산'편.

쉽게 말해,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부분에 대해 검증하지 않은 것과, 인천공항 매각자금을 4대강 혹은 토목사업 건설비로 사용하려는 것에 대한 확인되지 사실을 그대로 방송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나 이는 PD수첩 뿐 아니라 여러 언론에서 수없이 의혹을 제기했던 부분이고, 국회 국정감사, 대정부질문에서도 크게 논란이 된 부분이다.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 진실을 보도하는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한 인물의 인터뷰를 내보낸 것, 취재 시점에서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방송한 것이 징계의 사유라면 앞으로 모든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의혹을 제기하는 순간 ‘객관성’ 조항을 근거로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방통심의위는 진정,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관련 사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일까?

PD수첩 보도가 징계 제재를 받은 현 상황에서, 다른 방송사의 시사·보도프로그램도 방통심의위 심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정 단체 혹은 민원인의 신청으로 심의 테이블에 올라간다면, 방통심의위는 그 때부터는 공정성, 객관성, 균형성 등의 잣대를 들어 프로그램을 낱낱이 해부할 것이고, 어떻게든 조항을 걸어 문제를 삼을 것이다. 심의를 하는 과정에서 방송 제작 의도, 배경이 궁금하다면 얼마든지 그들이 가진 ‘권한’을 이유로 제작진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다. 이는 PD수첩만의 문제가 아니다. MBC <후 풀러스> <시사매거진 2580>, 그리고 KBS <추적 60분> <미디어비평> <KBS 10>, SBS <뉴스추적> <그것이 알고싶다> 등도 언제든 심의 과정에서 프로그램이 하나 하나 해부될 수 있다.

이날 회의에서 야당 측 백미숙 위원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PD수첩이나 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특정 단체가 계속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 저널리즘 수준에서 의혹을 제기되고 있는 스트레이트 기사와 탐사 보도가 많다. (심의) 테이블에 올린다면 문제될 거 많다. 이 정도 가지고 객관성 문제로 이야기를 한다면, 저널리즘 심의에 대한 기획을 통해 방통심의위 스스로 심의 판단 기준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 KBS 탐사보도를 보더라도 (PD수첩 보다) 더 심한 거 많다. 규제 기관에서 하나하나 털어 의혹 제기 수준이 객관성에 위반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 모델을 가지고 논의하는 게 아닌가 싶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확정해 전체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방통심의위의 의견제시 및 권고와 같은 행정조치도 앞으로는 감점 요인이 돼 방송사 재허가 때 영향을 준다. 개정안은 방송 심의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고 있는 방통심의위원들의 권한을 더 강화시켜 줄 것이다. 부디, 시사·보도프로그램 제작진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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