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SNS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어떤 내용의 멘션이든 끝말을 항상 “그런데 최순실은?”으로 끝맺는 것이었다. 해시태그(#)라는 것인데 그저 댓글놀이라는 표현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놀이처럼 즐겼지만 전투처럼 치열했고, 염원처럼 간절했었다. 당시 목숨 걸고 최순실 의혹을 덮으려던 정부여당의 의도에 맞선 민심의 이슈 살리기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트위터 유저들의 장난기로만 보였던 “그런데 최순실은요”는 의외로 커다란 영향력으로 커져갔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이 트위터에서의 작은 움직임이 주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굳이 신문과 방송의 보도가 없어도 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이슈가 확산되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대단히 큰 변화와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 계기였기 때문이다. 기존 미디어가 미덥지 못한 대중은 SNS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언론의 대안적 자리를 스스로 마련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언론만 몰랐거나 알아도 아는 체를 하지 못할 뿐이었다.

또 다른 움직임도 있었다. 소위 문자폭탄이라는 것인데 문제가 된 정치인에게 불특정다수의 시민들이 문자를 보내는데 그것이 때로는 수만 통씩 쌓이는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는 지금까지도 논란인데, 시민들의 의사표현을 폭탄이니 테러니 하는 말로 몰아가는 것은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운데)가 2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현재 정책위의장(왼쪽), 박맹우 사무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인이 그것도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바로 자신을 뽑아준 민의를 향해서 폭탄이니 테러니, 차마 해서는 안 될 험한 말들에 혐오와 증오를 드러내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표를 줄 때는 존경하는 시민이고, 항의를 할 때는 테러리스트라니. 아무리 정치인들이 내로남불의 이중잣대를 즐기는 부류라지만 이 정도면 해도 너무한 것이다.

시민들의 표현은 트위터나 문자항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볼 수 없다는 정치인들의 후원금 계좌가 가득 채워지는 일들을 무수히 만들어냈다. 굳이 거창한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고도 그저 의정활동만 제대로 한다면 시민들은 기꺼이 박봉의 유리지갑이라도 열어 정치인을 후원하겠노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정치인들을 향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의지 표현은 더 발전하여 촛불운동을 통해 비로소 간접민주주의의 단점과 결점을 극복했고, 그 경험을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인 시민운동으로 발전할 이유와 의지를 이미 밝힌 바 있다. 시민들은 대선 후에도 자발적으로 팔로잉 운동이나 당원 가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조직되지 않은 조직력을 발휘하고,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모인 동력 흩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시민들의 변화에 둔감한 것이 언론이나 정치인들이나 다르지 않은 것은 그들이 똑같이 서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과 유리된 언론과 정치, 그 참담한 결과는 지난 9년의 적폐가 증명하고 있다. 그런 자신들의 불민함을 모른 체 시민들의 행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발하고 폄훼하고 호도하고 있다. 당했으니 억울한 심정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적개심을 드러내면서도 꽃길을 걷기를 기대한다면 대단한 착각일 것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

최근 트위터에 다시 등장한 해시태그 파도타기와 각종 패러디 짤방들은 그런 여러 의미들이 복합된 주목해야 할 운동일 것이다. 지난 “그런데 최순실은?”이 최순실 게이트를 열기 위한 민의의 안간힘이었다면, 이제 일기 시작하는 “이게 다 야당 때문이야”는 민의에 맞서려는 정치권의 오만함에 지난 대선의 의미를 복기시키려는 시민행동의 시작이라 할 것이다.

적폐청산과 개혁과제의 추진은 대선의 결과로 확인된 시대정신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게 쏠린 국민들의 엄청난 지지는 정부의 행보에 대한 기대와 신임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적폐정권 앞에 숨죽이던 세력들이 이제 개혁에 발목을 붙잡는 민폐가 된다면 아직 어디 가지 않고 새 정부의 울타리를 지키고 선 시민들의 분노 앞에 똑바로 서게 될 것이다. 다시 시작된 해시태그 놀이를 결코 가벼이 보지 말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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