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출간된 고 박완서 작가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수필집 중 한 꼭지에 해당하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마라톤 대회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손을 모아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선두 그룹이 지나고, 마라톤 대회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관심이 흩어질 무렵 여전한 교통 통제에 짜증이 나던 참에 푸른색 옷의 마라토너가 등장한다. 그의 모습이 좀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꼈던 작가, 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에서 '정직한 고통'을 본 순간,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차도로 뛰어들어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그런 작가의 독려에 힘입어 거리의 시민들도...

지금이라면 다를까? 처음 이 책을 접했던 70년대 후반, 이 글은 충격적이었다. 꼴찌는 말 그대로 꼴찌였던 세상에서 '낙오하지 않는 이'를 향한 격려의 박수라니! 그건 그저 한 편의 수필이 아니라, 성장 지상주의 대한민국 사회를 울리는 경종이었다. 그리고 이제 5월 28일 <SBS 스페셜>은 어쩌면 그 시절 박완서 작가처럼 이번 대선에서 꼴찌를 한 심상정의 선거전을 복기한다.

꼴찌 심상정, 하지만 여전한 심블리

'어대문'으로 규정된 선거전이었다. '어대문'에 도전한 다른 후보들은 이제 정계 은퇴가 운운될 만큼 역부족의 선거전이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선거 중반 토론 과정에서 그래도 우리 편 '어대문'에 흠집을 내는 데 동조했다는 이유로 당원들을 잃는 해프닝을 겪으면서도 완주했다. 그리고 아쉽게도 6.2%라는 여전히 넘기 힘든 진보 세력의 현실을 경험했다. 그런데 왜 다큐는 심상정을 주목할까?

SBS 스페셜 ‘꼴찌, 심상정이 남긴 것’ 편

시작은 이제는 돌아와 주방 앞에 선 서툰 주부 심상정으로 시작한다. 가사를 14년 째 남편에게 맡기고 바깥사람이 된 심상정. 모처럼 돌아와 아들이 원하는 '닭볶음탕'을 하려는데, 도무지 부엌이 낯설다. 장보러 간 마트에서는 여전히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낙선한 대통령 후보가 맞는지? 인기가 좋다. 어른들만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돌 스타급이다. 거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6.2%의 득표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놈의 인기'말이다.

바로 그 점이다.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선거 과정에서 만난 상당수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두 사람 있었다. 바로 유승민 후보가 바른정당 후보라는 점과, 또 한 사람 심상정 후보가 정의당이라는 점이다. 후보자들의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여야의 편견 없이 보자면 두 사람이 제일 잘했다. 발언의 앞뒤가 맞았고, 자신의 논리가 있었고, 객관적인 설득력을 가졌었다. 사전 선거 지지율에서 심상정 후보는 11.4%의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번 선거도 토론과 결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물론 '토론'을 못해서 망한 후보도 있다. 하지만 '토론'을 잘해서 잘된 후보도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정의당이 바른정당에 못 미친 6.2%를 득표했지만 역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진보 세력 후보 중 가장 다수의 표를 얻었다. 14대 대선 당시 민중후보 백기완 선생은 0.9%를,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는 3.0%를 득표했다. 그에 비하면 심상정 후보의 득표수는 무려 두 배나 늘어난 것이다.

득표수만이 아니다. 선거가 끝나고 정의당에는 성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못미 심상정' 등 비록 선거에서 심상정을 지지하지는 못했지만 심상정의 완주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성금들이었다. 2억 8천만 원이 모였다. 선거에 지면 '정계 은퇴'하라는 정치판에서 낙선 후보에게 성금이라니!

심상정 지지의 의미

SBS 스페셜 ‘꼴찌, 심상정이 남긴 것’ 편

그렇게 선거에서 지고도 여전한 인기를 누리는 심상정 후보에게는 별명도 많다. 심블리부터 2초 김고은, 심크러쉬까지. 그 별명의 면면에서도 느껴지듯 트렌디함이 심상정과 함께한다. 이런 '트렌디한 별명'에 대해 정치학자는, 별명의 시작은 정의당 홍보팀이었을지 모르나 그 별명이 대중적이 되는 과정에는 '대중의 적극적인 호응'이 뒤따랐을 것이라 분석한다. 일찍이 국회부터 적폐의 수구세력에게 '걸크러쉬'하기를 마다하지 않지만, 홍보 영상을 비롯한 평소 그 모습에서는 2초 김고은을 수긍하게 할 만큼 '심블리'한 심상정. 아마도 2초 김고은이란 별명에 '욕'이나 '어불성설'이 아닌 웃고 넘어갈 수 있게 만든 건, 심상정이 선거 기간 보인 노력의 결과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런데 똑같이 대선 토론 과정에서 혁혁한 성과를 보인 두 사람이지만, 유승민과 심상정이 보인 토론의 결은 달랐다. 유시민 작가와 100분 토론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경제학자이자 관료 출신의 유승민 후보가 논리적인 토론가였다면, 심상정 후보는 정의당 후보로서 입장과 자신의 살아온 삶이 일치된 실천가로서의 그 모습에 더 힘이 실린다. 선거 과정 여성과 관련한 실언을 한 홍준표 후보에게 따끔하게 짚고 넘어가는 모습이나, 굳이 나설 필요 없는 민주당 후보의 대북송금 문제에 나서서 언젯적 대북 송금이냐며 토론회 모든 후보들을 뜨끔하게 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SBS 스페셜 ‘꼴찌, 심상정이 남긴 것’ 편

거기에 우리 사회의 약자로서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 성소수자에 대한 그녀의 일관된 입장은 그저 군소 정당으로서 선거 결과를 의식하지 않는 '프로파간다'를 넘어, 선거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해준 사람으로 열렬한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물론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경기 고양 갑의 심상정 후보와 경남 창원 성산 노회찬 후보를 제외하고는 한 자릿수의 지지율을 넘지 못했다. 심상정이라는 개인이 보인 이번 성과가 정의당 혹은 진보 세력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명망성의 한계를 넘어, 그 지지에 숨겨진 의미를 짚고자 한다. 심상정의 입을 통해, 그녀가 살아온 삶을 통해 그녀가 주장해온, '노동'이 제 목소리를 내고 제대로 대접을 받는 사회에 대한 여전한 열망이 6.2%의 수치로 가늠할 수 없는 심상정에 대한 열렬한 여전한 인기 요인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를 상회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50%를 넘는 지금,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심상정의 지지율에 담겨있는 간절한 우리 사회 약자들의 제 목소리라는 것을 <SBS 스페셜>이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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