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여기저기에 이런저런 글을 많이 써왔지만 아마도 ‘항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신체의 일부이지만 왠지 드러내놓고 말하기 꺼려지는 ‘항문’에 대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바로 우리 군과 군검찰 그리고 군사법원까지 나서서 ‘항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국가법령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 현재 존재하는 5045건의 대한민국의 법령 중 ‘항문’이라는 단어를 조문에 포함하고 있는 법령들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형법 그리고 문제의 <군형법> 등 5개의 법령, 9개의 조문에서 ‘항문’을 특정하고 있었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서는 ‘성매매’를 정의하는 조문에서 ‘유사성행위’를 설명하면서 ‘항문’이 언급되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장애인과 13세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강제추행’을 범위를 설명하면서 역시 ‘항문’이 등장한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의 규정 중에 ‘항문’이 나온다.

국가의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형법> 제297조의2(유사강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형법에는 ‘항문이 여기 딱 한번만 나온다.

그런데 이 형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군형법>에서는 ‘항문’이 두 번이나 조문 중에 포함되어 있다. 먼저 군형법 제92조의2(유사강간)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제1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제1조 1항에서 3항까지 규정된 사람은 장교, 준사관, 부사관, 병, 군무원, 군적을 가진 군의 학교 학생‧생도, 사관후보생‧부사관후보생, 군적을 가지고 재영(在營) 중인 학생, 소집된 예비역‧보충역, 전시근로역 등 전환복무 중인 병을 제외한 모든 대한민국의 군인들 중 죄를 범한 이들을 말한다.

군인권센터, 동성애자 군인 불법수사 증거 공개 [연합뉴스 자료사진]

형법 297조 2항과 군형법 92조 2항 모두 ‘폭행 또는 협박’을 전제로 하고 있다. 폭행 또는 협박이 동반되면 무엇을 해도 죄가 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니 지극히 당연한 조문이다. 다만 형법은 징역 2년 이상, 군형법은 징역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군형법이 형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무거운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형법에 비해 군형법의 형량이 무겁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형법은 평시와 전시에 형량이 다르고 ‘적전’(적을 공격하거나 적의 공격을 받거나 전쟁 중에 최전선에서 대치한 상황) 중에는 그 형량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무거우며 사형집행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등 문제가 많은 법령이다. 또, ‘반란의 죄’ , ‘이적의 죄’ , ‘근무태만의 죄’ , ‘항명의 죄’ 등 군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며 많은 모순과 불평등을 야기하는 법령이기에 오래전부터 군형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인권운동진영의 목소리는 높았다.

그러나 군형법의 모든 조항에서 찾을 수 있는 수많은 문제점과 허술한 점 등을 다 합쳐도 단 한 개의 조문이 가지고 있는 부당함과 반인권성에는 미치지 못하는데, 그 조문이 바로 ‘군형법 92조 6항(추행)’이다. 그 문제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

군형법 제92조6(추행) 제1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대한민국 헌법과 형법을 비롯한 법령 어디를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항문성교’라는 단어가 굳이 군형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2013년 이 조문이 개정되기 전에는 ‘항문성교’ 대신 ‘계간’이라는 표현이 조문에 있었다. ‘계간’은 닭들끼리의 성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남성 동성애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법률적 용어도 아닌 모호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많은 문제제기와 조롱을 받았었다.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되고 유사강간죄 도입과 강간의 피해자를 ‘부녀자’에서 남성으로까지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형법이 개정되면서 ‘계간’이라는 개념 대신 ‘항문성교’가 법령 조문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 조문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법령의 성폭력 관련 조문에 항상 있는 ‘폭력과 협박’ 같은 전제들을 이 조문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조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대한민국 군인은 항문성교를 했을 때 최고 2년까지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항문성교’가 도대체 개인과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감옥에 가야한다는 것일까. 그것도 2년씩이나 말이다. ‘항문성교’는 그토록 정말 끔찍한 죄인 것인가.

그런데 ‘항문성교’를 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폭력이 아니라면 군인들 중 누군가가 ‘항문성교’를 했다는 것을 군 당국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군인은 자신이 어떤 방식의 섹스를 했는지 군에 보고해야 하는가. 그보다 먼저 법이 어떻게 각 개인의 섹스 방식에까지 개입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단 두 줄짜리 법조문 하나에서 수십 가지의 질문이 탄생하니 기가 막힐만한 법조문이 아닌가.

만약 어떤 군인이 거부하는 남성 또는 여성 군인을 상대로 계급 또는 직위를 이용하여 협박하거나 회유하거나 물리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항문성교 또는 그 밖의 추행’을 했다면 이는 당연히 형사처벌을 받고 감옥에 가야하는 범죄행위이다. 만약 군형법에 규정이 있지 않다고 해도 이는 형법상 그리고 사회적 통념상 용납될 수 없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그런데 저 군형법 92조 6항은 폭력이나 협박, 회유 등이 없어도, 그저 ‘항문성교’만 해도 2년이나 감옥에 가야하는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형법>에서는 공무상비밀누설죄, 폭행죄, 과실치사죄, 영아유기죄, 학대죄 등의 범죄들에 대해 징역 2년 이하의 형량을 규정하고 있으니 군에서는 ‘항문성교’가 사람이 죽은 ‘과실치사죄’와 비슷한 형량의 중범죄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세상 어느 국가에 이런 법이 존재할까. 간혹 종교적 규범이 나라 전체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국가에서 황당한 법령들이 있기는 하지만 흔히 말하는 OECD 가입 국가 중에 과연 이런 법령을 가진 나라가 있을까. 전시에 준하는 휴전상황 한반도의 군대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도대체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그리스도교신자이든, 불교신자이든, 이 어처구니없는 법령을 폐지하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군형법 92조 6항은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를 구분하고 있지 않고 그 해석의 범위가 넓기는 하지만 누가보아도 이 조문은 군대 내 ‘남성 동성애자들’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대체 군형법은 92조 6항으로 무엇을 통제하고 처벌하고 싶은 것일까. 아무리 군이라도 이성애자 군인 남과 여가 ‘항문성교’를 했다고 구속을 시킬 수 있을까. 만일 군대내의 ‘무분별한’ 섹스가 군의 기강을 흐리고 전투력을 저하시킨다면 모든 군인의 섹스 자체를 금지시켜야지 굳이 ‘항문성교’만을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항문성교’가 전투력을 저하시킨다는 연구보고서라도 있다는 말인가. ‘항문성교’를 한 군인만 처벌을 받고 군인이 아닌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는다면 이 역시 평등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이 아닌가.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공동행동이 연 '성소수자 혐오없는 나라를 바라는 시민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혐오없는 나라, 차별금지법 제정 등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어제(24일) 동성과 성관계를 맺은 한 육군 대위에게 군형법 제92조의6(추행) 위반에 대해 유죄를 판결하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앞서 군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한 바 있다. 상호 합의하에 맺은 성관계 때문에 징역형을 선고 받고 불명예스럽게 군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를 그 대위가 이 어이없는 선고 결과를 듣고서는 법정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예정대로라면 오는 25일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군검찰은 그 대위를 영내 부사관 숙소와 모텔 등에서 동성 군인 등과 성관계한 혐의로 구속 기소를 하면서 “장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적극적으로 추행행위를 했고, 게이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무분별하게 동성애자를 만나 군 기강을 저해했다”며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그가 장교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는 매우 소극적으로 섹스에 임했다면 괜찮았다는 것일까.

그가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섹스의 대가를 지불하여 성매매를 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이와의 섹스는 무분별하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을까. 채팅에서 알게 되어 얼굴도 모른 채 처음만난 날에 함께 밤을 보낸 후, 한동안 연애를 하다가 결혼하여 잘 살고 있는 내 중학교 동창 녀석도 무분별한 사람들 속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나는 평소에 한국의 보수를 자청하며 ‘종북과 동성애’를 척결의 대상으로 삼고 미군을 한국군의 가장 든든한 동맹군이라는 믿는 사람들, 특히 평소에 동성애자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악마이며 동성애는 참담한 범죄라고 주장하는 대형교회 목사님들 같은 분들이, 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차리고 무대에 올라 축하 인사말을 한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나 레즈비언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태미 스미스 현 주한미군 부사령관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오직 ‘한국 사람의 동성애’만 반대하는 것인가. 동성애라는 ‘악마적 존재’로부터 오직 한국 사람들만 구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종교인 셈인가. 아니, 민족종교들 역시, 모든 사람들, 전 세계 더 나아가 전우주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데, 유독 한국사람들만 지키려는 일부 기독교 세력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너무 편협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 나온 김에 미군의 상황을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클린턴 정부부터 유지되어 온 그 유명한 “Don’t Ask, Don’t Tell” 일명 “묻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는 정책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미리 고백하지 않아도 된다며 인권을 옹호하는 척 했지만 아웃팅이 되거나 커밍아웃을 하는 군인들은 강제전역을 시켰기 때문에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1993년부터 시작되어 이 정책이 폐지 된 20011년까지 1만 3천 5백여 명에 달하는 미군이 강제전역을 당했다고 하니, 미군들 중에 동성애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마바 정부 시절인 2011년 “Don’t Ask, Don’t Tell”정책은 폐기되었고 이후 미군에서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강제전역을 당한 군인은 한명도 없다. 미군은 2012년 군인들이 군복을 입고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렸고, “Don’t Ask, Don’t Tell” 정책이 차별적 정책이라 반대하며 학군단(ROTC)을 운영하지 않았던 하버드 대학도 이 정책의 폐지 이후에야 학군단을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장성들이 계속 탄생하고 있고 국방부 장관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나니 군이 더 강력해졌다고 공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군은 미군의 한마디에 국민들이 반대하도 사드 배치를 바로 강행하면서, 왜 미군의 반차별 정책은 왜 따라 배우지 못하는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고 알려져 있는 육군참모총장의 육군내 동성애자 색출 명령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일부 알려진 이번 ‘군형법 92조 6항’ 파문은 <군형법>, <군헌병>, <군검찰>, <군사법원> 등의 합작품이다.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인권운동진영은 오랫동안 군사법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 왔다.

군사법원과 군 검찰을 폐지하고 일반 법원과 검찰에서 수사를 맡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며 군형법을 대대적으로 개정 또는 폐지하고 군행형법을 폐지한 후 <형의 집행과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을 준용하게 하자는 개혁안을 17대 국회 때부터 매 국회에서 논의해 왔다. “군인에 대하여 군인이 수사하고, 군인이 기소하고, 군인이 판결”하는 구조가 진작 개혁되었다면 섹스를 했다고 징역형을 선고받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군은 ‘윤일병’사건처럼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일이 생겼을 때에만 잠깐 소란을 떨며 무언가 바꿀 것처럼 굴다가 몇 가지 대책만 발표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과거로 회귀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안보강국’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정부의 입장에서 군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일이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군의 대대적인 개혁 없이는 새 정부의 개혁은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단순한 ‘섹스’를 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육군 대위가 항소심에서는 꼭 무죄를 받을 수 있도록 ‘군형법 92조 6항’의 폐지를 시작으로 군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평등한 사회로 향하는 걸음에 ‘나중’이 있을 수 없듯이 군사법체계 개혁을 통한 군 인권 수준의 향상 역시 뒤로 미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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