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용산참사가 정확히 1년 전 오늘의 일이다. 1년이 어떻게 흘렀나 싶을 만큼, 딱 그 만큼 오늘도 뉴스가 어지럽고 세상은 평온하다.

조중동은 판사들의 복잡한 뇌구조를 '우리법연구회'라고 하는 하나의 명사 아래 굴복시켜 솎아내기 위한 패악을 계속하고 있고, 교과부는 전교조 교사가 많으면 수능 점수가 떨어진다는 유사 우생학적 결과를 통계랍시고 발표했다. 20대 여성 10명 가운데 7명이 성형을 꿈꾼다고 하고, 왜 그랬는지 이혁재는 술집에서 종업원을 때렸다고 한다. 옆자리에선 연말정산이 한창이고, 새로 나온 SM5의 전단지가 돌고 있다.

▲ 지난해 4월,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된 용산참사 100일 범국민 추모제의 모습. ⓒ미디어스
용산은 겨우겨우 합의란 것에 이뤘지만, 오늘도 왕십리에선 철거가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지구 온난화가 동아시아에 한파를 몰고 왔다는 나비효과적 인과관계를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추운 날 내동댕이쳐지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겠구나 정도는 어림짐작 되어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런, 날들이다. 별일 없는 날들. 지금 4대강 반대자들도 공사가 끝나면 열렬한 지지자가 될 거라는 복음이 있을 뿐이고, PD로서의 본분을 다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왕따를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선고가 내려질 뿐인 날. 진보대연합인지, 반MB전선인지, 선거연합인지 하여간 뭔지 모르지만 함께 하기 위해서 국민이 참여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하고, 그러기 위해선 "정파 사이에 갈등을 초래하는 이슈는 못 본 척 하고 놔두자"(유시민)는 뭐 그런 날.

아침에 그 글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이런 날은 그냥 뉴스도 검색하지 말고 어제 밤 홀짝거린 맥주에 지친 위장을 달랠 궁리나 하며 또 오늘 밤은 어디서 얼마나 마셔야 하는 것일까나 고민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이름만 봐도 가슴이 덜컥거리는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 그러니까 24년 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어느 여성 노동자 말이다.

하필이면, 이런 날씨에 궁상도 지지리지 '따뜻한 콩국 한 그릇'이 뭐람. 그녀는 굶고 있는 중이다. 할 게 없어 죄송하다며, 죽거나 병신돼가며 평생을 일했던 아저씨들이 죄인처럼 쫒겨 나는 걸 지켜보기가 어려워 굶고 있는 중이다. 2003년에도 천 여명에 가까운 이들을 잘라냈던 한진중공업이 다시 4천 명에 이르는 하청 노동자들을 잘라내겠다고 한다.

모진 일이다. 길거리로 나앉는 사람들이 한진에만 있는 것이 아니거늘, 굶으시려거든 소문이나 내지 마시지 아침나절부터 뭐 먹을까나 뭐 마실까를 궁리했던 사람을 이토록 한 칼에 밥버러지로 만들어 버리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이는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를 치룰 때, 그녀가 써 올린 글을 읽고 오랫동안 뭣도 하지 못했었다. 비슷한 낱말 별다를 것 없는 문장인데도 그녀의 가슴을 거쳐 토해진 글들은 어찌하여 매번 이렇게 사람을 무참하고 곤란하게 만드는지 기묘한 일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녀가 쓴 <소금꽃 나무>도 다 읽지 못하고 덮었다. 자꾸 울렁이는 가슴을 견디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사이 법원이 <PD수첩>의 보도가 허위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속보가 뜬다. 그 판사 누구인지 이제 또 곤죽이 날 일만 남았지 싶다.

김진숙의 글 위로, 용산참사 1주년이, 이름 없이 잘려나갈 숱한 이름들 사이로 또 한 명의 얼굴이 겹친다. 그래, 박래군도 지금 감옥에 있다. 서울구치소 어디 독방에 있다고 하는데, 난 꽤 오래 그 이름을 그 얼굴을 잊고 살았다. 웬만한 농부보다 더 검었던 얼굴로 그는 언제나 웃곤 했다. 언젠가부터 그의 이름 뒤로 '인권 운동의 상징', '우리 사회 정의의 척도'라는 범접하기 어려운 무게의 설명들이 붙곤 했지만 내게 그는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가진 선배였다.

그는 참여정부에서도 2번이나 구속됐었다. 그리고 그 2번 모두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그가 2번째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을 때, 나는 그이에게 뭔 빽이 있길래 구속적부심만 하면 버젓이 나오는 것이냐고 이러니 법치가 무너졌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농을 했던 것 같다. 그는 그때도 묵묵히 웃었다. 듣기로 이번에는 구속적부심조차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대는 딱 그만큼 탁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3년과 상관없이 여전히 24년 전 어느 날에 머물러 있는 김진숙의 시간 위로 지난 3년을 철저히 기억해야 한다는 박래군의 시간이 겹쳐 흐르고 있다. 용산은 그렇게 1년을 맞았고, 나는 그냥 별일 없이 살고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지랄맞게도 왜 하필이면 오늘 같이 흐린 날 김진숙의 글을 읽고, 용산은 1년을 맞고, 박래군이 보고 싶으냐 말이다. 저녁엔 오랜만에 마포에 가서 갈매기살을 먹으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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