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내가 선택한 나의 왕이시다. 무엇하느냐. 다들 왕께 예를 갖추거라”. 유신은 자기가 선택한 왕 덕만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니, 신과 선왕이 아닌 담에야 세상에 어디 일개 장수가 왕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 부분에서 어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감동이 밀려온다. 왜? 굳이 시대착오적인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군주제에서 민주정치를 소리치니까 더 감동스러운 것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과 민주정치의 본질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김수정 교수의 발제문 중>

▲ 김수정 교수ⓒ권순택
지난 18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한 ‘TV사극의 서사성과 재현의 미학:<선덕여왕>을 중심으로’ 토론회에서 김수정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MBC드마라 <선덕여왕>은 정치가 배경이 아니라 정치를 주제로 한 드라마로 근대적 ‘민주정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덕만이 미실을 향해 ‘미실이 주인의식이 없었기에 진흥대제 이후로 발전이 없었으며’, ‘주인의식이 없기에 백성을 살피기보다는 공포로 정치한다’는 비수와 같은 지적을 한다”며 “이것은 권력이란 책임이 뒤따른다는 민주정치의 책임성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덕만과 미실 두 정적이 서로 존대하며 토론을 벌여나가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며 “‘미실이 없었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덕만의 생각이 ‘오래 사시라’는 덕담으로 미실에게 표현되고, 미실은 그러는 덕만을 ‘그만 안아 줄 뻔 했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멋있는 인간에 미묘한 흥분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덕만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게 미실이든, 복야회 산채에 있는 월야이든 개의치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찾아가 대화하고 설득한다”면서 “이는 합의정치로의 민주주의를 시사한다”며 ‘조건없이 만나 대화하겠다’고 하면 이를 대서특필하는 오늘날의 정치현실와 비교했다.

이 밖에도 김 교수는 “<선덕여왕>이 보여준 것은 혈통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가야족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고 자발적 참여를 유발시켜 운명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시민적 민족주의”라면서 “이렇게 이민족을 통합시키는 <선덕여왕>은 10%의 국제결혼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한 <선덕여왕>의 근대적 개인주의, (정치라는) 공적영역에서의 복합적 여성상 등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발제에 이어진 토론에서도 <선덕여왕>이 그린 긍정적 요인들이 주되게 논의됐다.

▲ 1월 18일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한 'TV사극의 서사성과 재현의 미학:'선덕여왕'을 중심으로' 토론회 ⓒ권순택

“선덕여왕, 여성성에 기반을 둔 정치를 보여줬다”

이동후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장금>과 ‘정형적 여성성이 아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 ‘멜로라인을 부차적으로 하며 개인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등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성별의 차와 상관없이 사람들을 보듬어 안고 관계를 중시하는 등 여성성에 기반을 둔 정치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KBS드라마 <천추태후>는 사실 잘못하면 남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면서 “그런 점에서 MBC드라마 <선덕여왕>은 여성성에 바탕한 정치가 있고 그 점에서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서병기 헤럴드미디어 대중문화전문기자는 “<선덕여왕>은 선악구도가 희미하다. 미실이 착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덕만도 현실정치를 강화시키면서 미실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도 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 <선덕여왕>이란 사극은 선악구도가 희미해지면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정치)실력대결로 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선덕여왕> 이창섭 CP는 “미실을 두고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하는데, 그 보다는 <대장금>에서 장금에게 방해자로서 최상궁과 금영이 있었다면 스승으로 한상궁이 존재했듯 기존 사극에서 나뉘어져 있던 방해자와 멘토로서의 스승의 역할을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에서 동시에 털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 기자는 “사극이 2~3년 동안 엄청난 발전을 하는 가운데 여성 사극작가들이 많이 등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서 “그 속에서 현대적인 요소를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여성을 최고의 반열에서 유능한 리더와 리더의 대결로 가져가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새로웠다”면서 “또 일부다처나 일처다부가 혼재돼 있는 독특한 역사라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지붕뚫고 하이킥>과 <선덕여왕>은 MBC를 지켜주는 지지대라는 측면에서 더할 나의 없는 애착과 감동이 있었다”고 밝혔다.

“캐릭터는 매력적이었지만 서사구조는….”

그러나 이남표 MBC 전문위원은 “<선덕여왕>은 일부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는 점에서 성공했지만 서사구조에서까지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한 김헌식 평론가는 “자칫 미실의 보수적(?) 정치이데올로기를 합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기득권을 가졌던 미실이 자체 모순을 통해 붕괴되는 것에 방점을 잘 찍어줘야 했지만 자살로 마감하는 등 스토리의 엉성함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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