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국민화합과 관련한 공익 프로그램을 편성할 경우 가점을 부여하는 것을 포함한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권위주의적 규제로, 방송통제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BS, MBC, SBS 등 방송3사와 한국방송협회는 방통위의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하 개정안)을 ‘지상파 옥죄기’ ‘언론통제’에 비유, “언론 자유와 같은 기본권이 과도하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방송평가는 방송사업자가 공적 임무 수행을 적절하게 하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제도이다. 방송평가는 “위원회는 방송사업자의 방송프로그램의 내용 및 편성과 운영 등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명시된 방송법 제31조 제1항에 의해 실시되고 있으며, 결과는 방송사 재허가 또는 재승인 심사 자료로 활용된다.

국민화합 공익 프로그램 편성 시 가점 부여

▲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스
방통위는 지난해 11월26일 회의에서 △향후 방송, 통신 융합 등 매체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방송평가에 대한 실효성을 제고하며 △방송법상 제시된 공적 책임을 강화한다는 이유를 들어 개정안을 보고했다.

개정안은 방송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의견제시 및 권고와 같은 행정조치도 앞으로는 감점 요인이 된다. 또 국민화합과 관련한 공익 프로그램 평가항목을 신설, 양극화·다문화 등 국민화합과 관련된 소재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편성할 경우 가점을 부여한다. 또한 방송프로그램 질에 대한 시청자의 직접 평가와 함께 방송사들의 프로그램 질 개선 노력을 평가 결과에 반영한다.

방송3사는 방통위에 제출한 검토 의견서를 통해 이번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민 화합과 관련한 공익 프로그램을 평가한다는 것과 관련해, ‘국민화합 공익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방통위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프로그램을 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MBC는 이에 대해 “국민화합 프로그램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개념 정의를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방통위의 자의적 평가가 우려된다”며 “방통위가 평가규정 신설 근거로 제시하는 방송법 제6조 2항은 특정 성, 연령, 직업, 종교 등에 대한 차별적 편성을 하지 말라는 금지 규정이지, 국민화합을 증진하는 프로그램을 능동적으로 편성하라는 요구는 아니다”라고 반대했다.

KBS도 “‘국민화합 프로그램’이라는 항목자체가 추상적이어서 평가척도로 맞지 않고 형식적 비율이 아니라 내용 규제의 성격”이라며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프로그램 질 평가에 대해 국기기관이 개입할 경우, 정치 평가 가능성”

프로그램 질 평가에 대한 방송사 자체 개선 노력 부분에 대해 KBS는 “지상파 방송이 품질을 높이려는 것은 일상적 행위인데 주관적인 지수조사를 근거로 자체 개선 노력을 하거나 이를 평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MBC도 “방송사업자의 프로그램 개선 노력을, 그것도 ‘정성적인 방법’으로 평가하려는 것으로 객관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며 “프로그램 질 평가는 기본적으로 시청취자의 몫이며, 학문적 차원에서는 할 수 있으나 국가기관이 개입돼서는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평가로 흐를 개연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방송심의 규정과 관련해 ‘의견제시’및 ‘권고’에 대해 감점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KBS는 “현재 주의, 경고, 사과 등으로 세분해 감점하고 있는 바, ‘권고’, ‘의견제시’까지 감점하는 것은 방송내용의 지나친 제약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MBC도 “방송심의 자체에 대한 위헌 논란이 있고, 정치적 의도를 지닌 시민단체들이 무더기로 제기한 민원으로 인한 정치적 심의가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이와 관련한 항목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BS 또한 “심의규정이 명확치 않은 의견제시나 그 사유가 경미한 ‘권고’마저 평가점수에 반영할 경우 프로그램 제작자의 창작의도나 자율성을 크게 위축할 수 있다”며 “방통위나 방통심의위에 접수되는 개인적 불만을 토로한 민원마저 심의 안건으로 상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권고, 의견제시까지 평가점수에 반영한다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방송협회도 방통위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방송평가 개정안 뿐 아니라 방통위의 방송평가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방송평가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률적 근거도 없이 방송사업자의 경영까지 평가하고 있는 것”이라며 “방송내용 영역 평가에서도 자의적 기준을 적용하고 있고, 법률적 근거가 없는 편성규제를 강제하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대로 된 평가보다는 방송통제 우려”

방송에 대한 평가는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일련의 행보로 ‘언론 탄압’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은 방통위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에 대한 통제를 더욱 노골화 할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나오고 있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국민 화합 프로그램에 가점을 주는 개정안의 내용은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는 식으로 방송이 흐를 수 있다”며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언론 환경이 더 나빠질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방송평가는 실제 방송들이 공공의 역할을 잘 수행했는지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도 “방통위가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 보다는 정파적 이익 목적을 위해 방송을 줄 세우려 하는 것은 아닌지 방송통제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편, 일각에서는 방통위가 이르면 이달 안으로 방송평가 개정안을 전체회의에서 상정해 의결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으나 방통위 쪽은 ‘아직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 개정안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라며 “방송사들의 의견을 감안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평가 개정안은, 막말, 막장 방송이 가급적이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도 있고 변한 매체 환경을 반영한 부분도 있다”며 “방송사들의 주장 가운데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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