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히로시는 매력적인 배우다. 일본 드라마 <트릭>을 본 사람이라면 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남자 배우들이 2년 연속으로 그와 경합을 벌이고 있어서 재밌다.

2009년에 아베 히로시와 경합을 벌인 국내 배우는 지진희였다.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아베 히로시의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일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의 팬들은 한국판 드라마에 냉소를 보냈다. 일본판의 ‘찌질’한 정서를 살리지 못하고, 그저 별다른 개성이 없는 평범하고 화사한 로맨틱 코미디로 만들어놨다는 비판이었다.

그 속에서 지진희에 대한 평가도 별로 좋지 못했다. 아베 히로시가 보여준 존재감, 그가 결혼을 못할 수밖에 없는 찌질남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한 캐릭터 표현력 등과 비교됐기 때문이다. 아베 히로시가 창조해낸 찌질남에 비해 지진희가 만들어낸 캐릭터는 개성이나 매력 등이 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 KBS 홈페이지
그리고 2010년에 아베 히로시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국내 배우는 김수로다. 일본 드라마 <드래곤 자쿠라>의 한국판인 <공부의 신>에서 아베 히로시가 맡았던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도, 김수로도 일본 원작과의 비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려 4편의 작품이 동시에 시작된 지난 주 월화 드라마 대전은 혼조세를 보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면서 <공부의 신>이 홀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다른 드라마들이 모두 10퍼센트 대 초반의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데, 혼자서 20%를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원톱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게시판 분위기를 보면 <공부의 신>을 보며 통쾌하거나, 후련했다는 반응들이 많다. <결혼 못하는 남자>가 받았던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 주연인 김수로에 대한 평가도 다르다. 김수로의 카리스마가 작품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들이 나온다.(물론 비판적인 시선들도 여전히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김수로가 아베 히로시의 카리스마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긴 힘들다. <공부의 신>에서도 점차 자연스러워지고는 있지만 처음엔 어색해보이기도 했다. 지진희보다 김수로가 딱히 더 잘 한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왜 지진희는 비판을 더 많이 받았는데, 김수로는 찬사를 더 많이 받을까?

여기서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배우는 배역이다! 어떤 작품의 어떤 배역이냐가 해당 배우의 평판을 좌우하게 된다. 김수로는 배역 대박을 맞았다. 그것이 김수로가 <공부의 신>에서 최대 수혜자가 된 이유다.

대박을 맞은 김수로

한국에서 동네북인 존재가 바로 학교와 교사다. 그만큼 국민들의 학교·교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크다. 특히 교사에 대한 원망은 폭발 직전인 상황이다. 대선 때마다 나오는 것이 학교와 교직사회를 개혁하겠다는 공약이다. 학교를 때려야 국민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아는 것이다.

<공부의 신>에서 김수로가 맡은 역할은 바로 이런 국민들의 민심을 대변하는 역할이다. 김수로는 안일한 일선 교사, 교감 등 관리자, 학교 소유자들에게 질타를 가한다. ‘니들이 그 따위로 하니까 학교가 똥통 되고 애들이 공부를 못하지!’답답한 교육 수요자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배역인 것이다.

김수로가 하는 말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한국인의 심정을 대변한다. 왜 학교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느냐! 공부를 제대로 안 시키는 교사는 교사 자격이 없다! 애들에겐 시험 보라고 하면서 왜 교사는 시험 안 보나!

학생에게 온갖 핑계로 낮은 성적을 정당화하는 것도 찌질한 변명이라고 일갈한다. 어차피 사회는 일류대 학벌 중심으로 운영되니, 너희들도 먹히기 싫으면 일류대에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런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독설은 요즘 예능에서도 먹히는 화법이다. 네티즌은 김수로가 통쾌하다고 말한다.

김수로가 맡은 배역, 그에게 주어진 대사가 김수로의 연기에 황금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수로의 대사는 편견이고, 대단히 위험한 헛소리들이다. 학교나 교사는 입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학생도 입시를 위해 인권을 유린당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김수로가 하는 말들은 교육적 가치를 말살하자는 망언에 불과하다.

그것과 별개로 김수로가 현재 대중의 마음을 대변하는 배역을 맡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수로는 최근 위기를 맞고 있었다. 과거에 코믹한 배역으로 뜨고, 꼭지점 댄스를 비롯한 예능에서의 입담으로 절정기를 맞은 김수로는 최근 전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연기는 연기대로, 예능은 예능대로 김수로의 존재감이 점점 축소되고 있었던 것이다. <패밀리가 떴다>에선 병풍으로 전락했을 정도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한다고 해도 성공에 대한 전망은 극히 희박했다.

하지만 <공부의 신>에서 황금같은 배역을 맡아, 배역 자체의 존재감이 김수로의 카리스마로 전화되고 있으니 배우로서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게다가 점차 배역과의 싱크로율을 높여가 연기력도 재평가 받고 정극의 주역으로 거듭나는 계기도 맞을 수 있었다. 기성사회인들의 잘못을 통쾌하게 꾸짖으며 동시에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책임감과 능력까지 선보이는 대호감형 배역으로 그는, <공부의 신>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고 하겠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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