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파격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는 등의 인사 조치와 청와대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검찰 수사 지휘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매우 단호하게 “민정수석은 수사를 지휘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론적 답변을 해 화제가 됐다. 조국 수석의 기용 자체가 정권 초기에 검찰 개혁에 힘을 쏟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조국 수석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다 해야 한다. 선거가 시작되면 개혁에 아무 관심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이 될 거라는 전망이 다수다. 검찰 입장에서는 기소 독점이 깨지고 손발이 묶일 수 있는 그야말로 중대한 사태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사표를 냈고 이는 12일 수리됐다. 사방에서 칼날이 날아들지만 이를 막아줄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도 없는 검찰 조직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 나름대로의 총력전이 펼칠 가능성이 크다. ‘개혁’을 둘러싼 힘겨루기 국면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개혁’의 분위기는 박승춘 전 보훈처장의 사표 수리에서도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황교안 국무총리의 사표를 함께 수리하였는데, 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박승춘 전 보훈처장 사표 수리는 사실상 주요 기관장 중 1순위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박승춘 전 보훈처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임명됐는데 5·18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해 그간 지속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이를 문제 삼는 국회에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여 숱한 비난을 받았다. 2013년에는 안보교육을 위해 제작된 DVD 속 영상의 내용이 편향적이라는 또 다른 논란에도 휩싸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산하고 싶어 하는 ‘적폐’의 대표적 인물이 아니었을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오는 5월 18일의 기념식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될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까지 단행한 일련의 인사 조치 중 가장 파격적인 대목은 이정도 총무비서관 임명으로 볼 수 있다. 원래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집사’, ‘문고리’로 불릴 정도의 위상을 갖추고 있어 대통령의 최측근이 맡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이유로 역대 총무비서관들은 정권 후반기의 여러 논란에 휘말리는 운명을 피해가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상문 전 비서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김백준 전 비서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재만 전 비서관이 다들 그랬다.

그런데 이정도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과는 아무런 사적 인연이 없다. 이정도 비서관은 지방대 출신이고 심지어 행정고시 출신도 아니다. 7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언론은 이정도 비서관의 임명에 변양균 전 정책실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변양균 전 정책실장이 참여정부 시절 이정도 비서관에 대해 고시 출신이 아님에도 특출 난 업무능력을 갖췄다는 점을 인정하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변양균 전 실장의 ‘입김’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임명에서도 느껴진다. 홍남기 실장은 경제기획원, 예산청 등을 거쳤고 박근혜 정부에선 청와대 비서관과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을 맡은 이력을 갖고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일부 언론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경제기획원 출신들이 좌우하게 될 것이란 추측을 보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오찬을 갖은 후 청와대 소공원에서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기획원 출신 인사들은 이전 정부에서도 주요 경제정책의 방향을 좌우했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조원동 전 경제수석, 현정택 전 정책조정수석, 현오석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등이 모두 경제기획원 출신이다. 경제기획원 출신 인사들은 참여정부에서도 활약했다. 앞서 언급한 변양균 전 실장이 경제기획원 출신이다. 재무부 출신으로 경제 관료의 ‘양대 천재(나머지 한 명은 조원동 전 수석)’로 불렸던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은 대선 기간 안철수 후보의 경제특보를 맡은 바 있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도 경제기획원의 시대가 이어질 거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있다.

경제기획원 출신들은 ‘큰 그림’에 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단행한 청와대 조직개편에선 앞으로 부처 업무 장악보다는 국가적 어젠다의 발굴과 제시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정책실장의 부활이나 사회혁신수석의 신설, 국가안보실 개편 등의 내용을 보면 그렇다. 특히 국가안보실은 공식적으로 외교 안보 통일 관련 정책을 총괄하게 돼 힘이 막강해졌다.

청와대는 큰 그림에 집중하고 각 부처의 자율성을 증대시키는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의 형태로 정부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는 바람직하다. 청와대의 어젠다 세팅 과정에 시민사회나 일반 국민들로부터의 다양한 의견수렴이 가능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과거 참여정부의 청와대에 몸 담았던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들도 역시 어젠다 세팅에 집중했다. 이때 나온 구상으로 유명한 게 동북아 금융 허브, 비전 2030 등이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아직도 이를 높이 평가하지만 일부에서는 비판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는 금융산업의 발전을 통한 성장전략과 세계화 및 개방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통하는 시대였다.

2017년의 우리는 당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다행인 것은 경제 관료들도 이를 모르지 않는 걸로 보인다는 거다. ‘큰 그림’에 능한 청와대가 문재인 시대에 필요하고 어울리는 비전을 내놓기를 기대해본다. 이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낼 수 있어야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도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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