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공통적으로 공약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다.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려면 선거제도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고 있다. 2015년 2월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한다는 것은 민심을 그대로 의석으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렇지 않았느냐? 고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이제까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국회는 물론이고 지방의회에서도 민심은 왜곡되게 반영되어 왔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역대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결과를 보면, 38.3%(2004년 열린우리당), 37.5%(2008년 한나라당), 42.8%(2012년 새누리당) 정도를 얻은 정당들이 국회에서는 과반수를 차지해 왔다. 작년 4월 총선에서도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득표율에 비해 과도한 의석을 차지했다.

이런 왜곡현상은 지역구에서 253명을 뽑고 47명만 비례대표로 뽑는 선거방식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역구에서는 30%를 얻든 40%를 얻은 1등만 하면 당선된다. 그리고 1등을 찍지 않은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그러면서 정당들이 유권자들로부터 얻은 득표율과 차지하는 의석비율간에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선거제도는 지역구 중심이기 때문에 힘없고 돈없는 사람, 연줄없는 사람, 청년, 여성들은 국회에 들어가기 힘들다. 지역구에서 당선되려면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 사회에서 기득권이 없는 사람들은 공천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회에는 20대와 30대를 합쳐서 3명(300명중 1%)의 청년들만 존재하는 이유이다. 또한 선거제도 탓에,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잘못되게 된다. 지역구에서 대부분 국회의원을 뽑다보니, 국회의원들은 국가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역구 관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지방의회는 더 심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경기도의회에서 58.9%의 득표율로 119석 중 115석을 차지했다. 한 정당이 96.7%의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광역지방의원의 90%를 소선거구제(지역구 1위대표제)로 뽑는데, 당시에 한나라당이 지역구를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회 선거는 표심을 왜곡시키는 선거제도이다. 전혀 공정하지 못하다. 잘못된 선거제도가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의 행태도 왜곡시키고 있다.

그래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독일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에 가까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것이다. 그 이후에, 이런 방향의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는 유력한 야당후보들은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세 후보는 개헌문제와 관련해서도, 개헌보다 선행해서(또는 동시에)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에는, 올해 1월 17일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내각제 개헌이 되려면 지역구도를 허물 수 있는 선거제도 도입과 재벌개혁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히고, 각 정당의 지지율이 그대로 국회 의석으로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 역시 여러 차례 개헌에 선행해서(또는 동시에)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안철수 후보는 작년 10월 24일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그대로 두고 개헌으로 가자는 것은 양당이 나눠먹자, 다선의원들이 다 해먹자는 말 밖에 안 된다"며 "선거제도 개편부터 먼저 하는 것이 순서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빠른 시일 내 가능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안철수 후보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발언을 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서도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심상정 후보는 대통령 후보 TV토론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며, 이에 대한 의지를 밝힐 것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국회 개헌특위에 출석하여 “선거제도 개혁, 특히 비례성을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전제된다면, 권력구조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거제도 개혁이 개헌에 선행해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얻은 득표는 68.66%에 달했다. 물론 유권자들이 정치개혁에 관한 입장만을 보고 투표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득표를 한 후보들이 주장한 개혁공약이라면 실현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유승민 후보의 경우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국회다. 선거법 등 정치관련법은 결국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선거제도는 법률만 고치면 되는 것이므로 개헌보다는 절차는 쉽다. 그러나 많은 국회의원들은 이해관계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주권자인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물론 대선 이후에 개혁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선거제도 개혁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은 모든 개혁의 첫 단추이다.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는 각 정당들이 개혁과제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지역구 선거로 대부분의 국회의원을 뽑기 때문에 개혁에 대한 입장이나 정책에 대한 입장이 선거 때에 아주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 그때그때의 정치적 상황이 어떤 지에 따라, 그리고 지역구 관리를 얼마나 잘 했는지에 따라 지역구 당선자가 결정되고, 그 결과 어느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지가 결정된다. 그래서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재벌개혁, 검찰개혁 등 각종 개혁과제들이 제대로 논의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동자들, 영세자영업자들, 농민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삶을 위한 정책들도 책임 있게 논의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벌써부터 국회에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토론보다는 여야의 소모적인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모양새이다.

▲19일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이 '대선이후 정치개혁운동 전국 워크숍'을 개최한다.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을 포함한 정치개혁을 시민들이 요구할 필요가 있다. 전국 200여개의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공동행동>은 5월 19일(금) 오후 2시 서울 용산 철도회관에서 ‘대선이후 정치개혁운동 전국 워크숍’을 갖고 본격적인 운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앞으로는 광화문에 모였던 촛불이 여의도에 모여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지금의 핵심은 국회다.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큰 변화가 불가능하다. 국회를 바꿔야 변화가 가능하고, 국회를 바꾸는 길은 국회를 구성하는 규칙(선거제도)를 바꾸는 길 뿐이다. 이 일에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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