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문재인. 그토록 바란 글자라서 더 낯설고 어색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보궐선거로 인해 당선과 함께 대통령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그래서 동장도 한다는 취임식도 없이 취임선서식만 하고 서둘러 빈 대통령의 자리에 서야 하는 문재인이었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은 전에 볼 수 없는 모습들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또 행복하게 했다.

현충원 참배에 이어 여의도로 발길을 돌린 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을 가장 먼저 들렀고, 이어 국회로 이동해 차례로 국민의당, 바른정당 그리고 정의당을 찾아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난 후 치러진 취임선서식은 정말 간단하게 끝나서 지지자들과 시민들에게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아 섭섭한 상황이었다.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실망은 일렀다. 대통령 내외가 국회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후 대통령과 시민들은 멀리서나마 큰 인사와 손인사로 화답했다. 누가 초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은 것도 아니어서 국회 앞마당은 어느새 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대통령은 차에 올랐고, 대통령 전용차량은 무게만큼이나 느릿하고 묵직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 전용차는 느리게 국회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상황을 전하는 앵커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다”는 말을 아껴야만 했다. 국회를 빠져나온 문대통령은 길가에 나서 손을 흔드는 시민들을 보자 차량 속도를 더욱 늦췄고, 처음에는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더니 이내 차량 지붕을 열고 상반신을 노출했다. 현장 소리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환호성이 터졌을 것이다.

상황을 설명하는 어떤 이는 ‘아직 유세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과의 스킨십이 자연스러워 생긴 현상이라고 해석을 했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인 대통령의 생각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은 후보 때부터 좋아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신임대통령의 카퍼레이드. 중계하는 사람들은 또 틀렸다. 마포대교를 건너면서 속도를 낼 것이고, 청와대까지 금세 도착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카페레이드는 마포대교를 건너서도 계속되었고, 마포, 공덕, 아현, 서소문을 거쳐 시청광장, 광화문광장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아참, 어떤 대통령은 일부러 광화문을 피해갔지만 문대통령은 반대로 광화문을 지나기 위해서 서강대교가 아닌 마포대교를 건넜다. 광화문대통령다운 디테일이다.

10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환영나온 청운 효자 통인동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하기로 했던 청운동 주민과의 환영행사는 시간이 많이 늦춰졌다. 그러나 주민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청와대에 도착한 대통령 내외는 준비된 사람들에게 꽃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온 모든 주민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인사를 했다. 그것도 모자라 길 건너편에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서 경호팀 심지어 김경수 의원의 제지에도 아랑곳 않고 다가가 기어이 폴더인사를 하고야 만다.

그 장면은 종일 화제가 됐다. 바뀐 대통령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예고에 불과했다. 잠시 후 청와대 춘추관에서의 첫 번째 기자회견에 대통령이 등장했다. 직접 국무총리 지명자, 국정원장, 비서실장 등을 소개하고 앞으로도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처럼 직접 국민들에게 보고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비서진과 국무위원들과의 대면이 너무 없다는 말에 “그런 게 필요하나요?”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믿지 못할 반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문 대통령 오른쪽부터)와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비서실장 후보자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이어진 후보자들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시간. 그러나 원활하지는 않았다. 이낙연, 서훈, 임종석 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적었던지 아니면 그들의 이력 속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자 서훈 국정원장 내정자가 입을 열었다. "제가 이렇게 기자분들 앞에 설 기회가 별로 없을 텐데요. 질문들 하시지요"

사실 기자들로서는 망신스러운 장면이었다. 초등학교 수업도 아니고 질문하는 게 업인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못하는, 그러나 사실은 너무도 익숙한 장면이기도 했다. 탄핵 국면에서 청와대출입기자단은 몇 차례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질문을 하지 않는 기자라는 점이 컸다. 그때는 그나마 질문을 받지 않는 대통령의 태도로 다소나마 비판을 피해갈 수 있었다.

단 하루였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바뀐 대통령 아니 바뀐 권력의 상징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받아쓰기에 바빴던 언론들은 그 바뀐 권력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속기사만큼 빠른 타이핑 솜씨가 아니라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그 상황에서 보여줘야 했던 것은 치열하게 질문하고 답변하는 영화 같은 장면이 아니었을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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