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언론관계법) 국회 본회의 처리에 항의해 장외투쟁을 선언했던 천정배·최문순·장세환 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국회로 돌아갔다.

이를 두고 11일자 신문들은 ‘일단’ 깎아내리기부터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반년 만에 막 내린 의원직 사퇴 쇼’라는 기사에서 ‘쇼’라고 규정했고, <동아일보> 역시 ‘“밖에서 싸우겠다”던 사퇴 3인방 “안에서 싸우겠다”며 국회 돌아와’ 기사에서도 “이들은 ‘처음부터 정치적 쇼였다’는 비난이 나올 것을 의식했다”고 했다. 이 밖에도 <세계일보>는 ‘사과없이 돌아왔다’, <국민일보>는 ‘머쓱한 컴백’, <매일경제>는 ‘슬쩍 원내 복귀’ <문화일보>도 ‘성과없는 쇼쇼쇼’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9일자 신문에서 “7일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의원이 모여 국회 논의 방안을 논의했다”면서 “국회의원의 정치 쇼 사표 제출은 즉각 수리해야”라며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 지난 1월 9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의원 영감님’의 특권의식일 뿐…정치적 ‘쇼’

지금 하는 걸 보면 세 사람 모두 애초부터 의원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던 게 확실하다. 속생각은 그런 사람들이 지난달 초 일반인은 근처에 갈 수도 없는 의사당 내 국회의장실을 쳐들어가 의장에게 “미디어법을 재논의하든지 사퇴서를 처리하든지 하라”고 억지 사퇴 쇼를 벌였다. 본회의장 출입문에 커다란 플래카드를 내걸고 며칠씩 눌러앉아 있기도 했다. ‘의원 영감님’이라는 특권의식이 뼈에까지 스민 사람들이 아니면 벌일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비례대표인 최 의원은 선거법상 탈당만 하면 언제든지 의원직이 소멸되는 쉬운 길을 외면했다. <1월 9일자 조선일보 사설 중>

‘의원 영감님’의 특권의식일 뿐, 사퇴 ‘쇼’란다.

이는 천정배·최문순·장세환 의원이 사퇴를 결심하게 된 ‘원인’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다. 그들이 ‘사퇴서’를 제출한 것은 7월 22일 한나라당에 의해 처리된 미디어법과 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였다.

최문순 의원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내려놓는다”고 했고, 천정배 의원도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수호할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었다. 언론악법을 막아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의원직을 사퇴함으로써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한다”고 했다. 뒤 늦게 결합한 장세환 의원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결국에는 이들이 ‘사퇴’를 결심한 것은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항의의 뜻이었으며, 이를 되돌리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었다는 뜻이다.

더더군다나 <조선일보>는 비례대표인 ‘최문순’ 의원의 경우 탈당만 하면 자동 사퇴라는 것을 강조하고 나섰는데, 최 의원이 사퇴를 결심한 것은 소속당인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한나라당에 대한 ‘대항’의 의미였다. 목적이 ‘사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퇴할 방법이 있었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중앙일보>, “사퇴할 때와 달라진 것은 없는데…”

▲ 지난 1월 11일 중앙일보 8면 기사
<중앙일보>는 11일자 ‘반년 만에 막 내린 의원직 사퇴 쇼’ 기사에서 “사퇴 선언을 할 당시와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들은 결국 사퇴의사를 접었다”면서 국회의장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의원직 사퇴쇼가 반년 만에 마무리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사퇴 선언 당시와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지난 10월 29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중앙일보> 식 해석이 고스란히 대입된 주장이다.

헌재 판결 다음 날인 10월 30일 <중앙일보>는 ‘헌재 “미디어법 유효” 새 방송채널 선정 속도’라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 이들은 ‘헌재 결정 요지’를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의결된 법률안이 규정된 절차를 위반했다 하더라도 다수결 원칙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대로 헌재는 미디어법을 ‘유효’라고 판결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헌재 하철용 사무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번 결정 어디에도 유효라고 한 적은 없다”며 “헌재가 그런 절차적 위법을 지적했다면 입법 형성권을 가진 입법부가 해결할 문제”라고 ‘국회 재논의의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중앙일보>는 큰 따옴표를 통해 ‘유효’라고 말한 주체를 헌재인양 보도하며 “헌재의 방송법 유효 결정으로 정부의 후속작업도 속도를 내게 됐다”고 보도했다. 결국 하철용 사무처장이 이야기한 “신문들이 ‘권한침해는 인정했지만 유효’라고 보도,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는데…”라는 발언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미지수다.

2010년 국회로 돌아간 사퇴 3인방의 역할은?

현재 미디어법에 대한 국회 재논의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여타의 세종시, 4대강, 예산안 등의 사안들이 겹치면서 미디어법에 대한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국회다. 또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역시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 도입을 둘러싼 논의에 집중돼 있기도 하다. 더 이상 원내와 원외의 동시 투쟁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을 맞이했다.

2010년에는 지난해 7월 본회의에서 처리된 미디어법 후속조치가 이뤄질 전망이다. 방통위는 이미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을 하반기에 할 것이라고 선언한 상황이다. 현재 조선, 중앙, 동아는 종편에 진출하고자 벌써부터 지면을 통해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으며,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조중동이 종편 사업 선정권을 쥐고 있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세종시’, ‘4대강’ 기사들만을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현재 정부여당은 종편 사업자에 대한 다양한 특혜들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추진 중인 KBS 수신료 인상도 종편 특혜에서 나온 것이란 비판에 직면해 있고, 미디어렙의 사업대상에서 종편을 포함시킬 것인지 아닌지도 2010년 국회에서 처리해야할 대상이기도 하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1월 26일 ‘사퇴 의원 5인, 조속히 국회로 복귀하라’는 사설을 통해 “의원직 사퇴를 철회하고 국회로 돌아와 성실히 의정활동을 해야 한다”면서 “투쟁을 하거나 결백을 주장하는 일도 모두 국회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정치쇼’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들 3명의 의원이 국회로 돌아와 자신들의 종편 진출에 ‘태클’을 걸 것이라는 판단이 뒷받침된 것이지 않을까?

2010년 국회로 돌아간 천정배·최문순·장세환 의원이 가장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란 반증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