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지상파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문재인 후보는 41.4%로 2위 홍준표 23.3%, 3위 안철수 21.8%를 압도하는 득표를 예상하는 결과였다. 양자 구도가 아니라 5자 구도라는 점에서 득표율에서는 작은 차이가 생길 수는 있어도 순위 자체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방송사들은 서둘러 당선 유력을 발표하였고, 거의 지체 없이 당선 확실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2시 38분 당선이 확정되었다.

이후부터는 방송사들이 꽤나 공들여 준비한 개표현황 콘텐츠가 의미를 잃고 말았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미 시청자들로부터 관심을 끌 수는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대신 당선이 확실해진 문재인 후보를 쫓는 일에 치중할 수밖에는 없었다. 방송사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문재인 후보의 자택으로부터 상황실, 광화문 광장까지의 두 차례 행차를 바싹 따르는 민첩함을 보였다.

SBS 개표방송 갈무리

그토록 원하던 정권교체, 촛불대선의 임무가 완성된 것이다. 문재인 후보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것은 문재인의 승리도, 민주당의 승리도 아닌 시민의 승리고, 촛불의 승리다. 이번 문재인 후보의 유세 전략 중 가장 칭찬하고픈 것이 마지막 세리모니인 휴대폰 후레쉬 켜기였다. 그렇게 휴대폰 불빛이 켜지면 그곳은 선거 유세장에서 촛불광장으로 변하였다. 문재인 후보가 촛불 후보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한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후보 스스로 촛불대선의 의미를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을 문재인 후보와 함께 찾은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감격스럽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그것이 어디 추미애만의 감격이고, 더민주만의 것이겠는가. 8시 정각,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될 때 많은 사람들이 감격했고 환호했고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모두 문재인의 지지자라서, 더민주가 좋아서는 아니다. 적어도 문재인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2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총파업 총력투쟁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성과퇴출제 중단과 박근혜 대통령 하야 등을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촛불은 문재인의 깊은 상처들을 모두 감싸주었고, 보호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친구 노무현이 국민후보였듯이 문재인은 촛불후보로서 유세무대에 섰고, 그런 문재인을 향한 여전한 색깔론은 촛불 앞에 힘을 쓰지 못하고 사그라들었고, 그의 아픈 상처였던 호남의 냉대도 촛불로 인해 녹아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역구도가 완전하지는 않아도 밑동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 역시 촛불의 힘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문재인은 촛불의 시대정신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고, 시민들 역시 다른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새 대통령을 맞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추운 겨울 광장에서 외친 적폐청산의 의미 때문에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과 통합이라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아젠다를 성공시켜야 한다. 사실 말로써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여소야대이며, 오히려 노무현 때보다 언론환경은 훨씬 더 비우호적이다. 오로지 촛불의 시대정신으로 대통령이 되었을 뿐 모든 조건과 환경은 어떤 대통령도 겪어본 적이 없는 험난한 길을 가야만 한다. 탄핵과 대선을 치른 우리들에게는 필연적으로 통합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탄핵으로 권력을 빼앗긴 쪽에서 순순히 협조할 리가 없다. 물론 쉬우면 국가적 과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해야 될 일이 너무도 많다.

2007년 5월 비서실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적폐세력은 협치를 거부할 것이고, 언론은 통합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것이다. 장담해도 좋다. 통합이 싫어서가 아니라 적폐청산으로 가는 길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적폐란 다른 말로 기득권이다. 특정 정치세력이 적폐가 되는 동안 주변에 부역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필연이다. 정치세력과 주변세력은 합작해서 문재인을 공격해올 것이다. 그들은 부패한 권력은 두려워하지만 깨끗한 권력과는 목숨 걸고 싸우려 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대통령, 광화문대통령 문재인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시민들이 다시 촛불 때처럼 정치와 싸워야 하고, 언론과도 싸워야 할 것이다.

대통령만 만들면 끝이 아니라,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우리들에게는 또 하나의 의무가 생긴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유시민이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유시민은 어용지식인이 되겠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제 촛불시민에서 어용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 문재인이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촛불 들고 싸운 겨울보다 더 힘겹고 지루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도저히 못하겠다면 대신 싸워줄 언론 하나쯤 만들던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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