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5·9 촛불대선에서 대권 못지 않게 보수 적통 경쟁도 치열하다. 여론조사 공표 기간 전까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상승세가 완연했지만, 바른정당 탈당 사태와 마지막 TV토론 이후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유세에 많은 인파가 몰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두 후보의 경쟁은 앞으로 한국 보수 정치가 나아갈 길을 재정립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평가다.

먼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바른정당 탈당파 복당과 함께 친박 복권을 실시해 '보수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결국 '친박당', '도로 새누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왼쪽)와 '강성 친박' 김진태 의원.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과거 행적을 따져보면 '보수'의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이었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여러 사례들이 있지만, 지난해 8월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1호 당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은 새누리당이 보수를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란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보수는 일반적으로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고 법과 원칙에 의한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박근혜 게이트에서 드러난 박 전 대통령의 행태는 기업 경영의 자유를 대폭 침해하고, 국민에게 이양 받은 대통령 권한을 사인 최순실 씨에게 임의 부여 하는 등 보수의 가치와는 상반된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사실이 폭로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에서도 새누리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측근 의원들, 이른바 '친박'은 보수 가치 부정에 분노하기는커녕 박 전 대통령을 감싸기 바빴다. 친박계 김진태, 김문수, 박대출, 조원진 의원 등은 탄핵 정국 속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친박 단체'의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했다.

지난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박 전 대통령 자택이 위치한 서울 강남 삼성동에 집결해 '삼성동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선국면 속에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을 자극하고 있다. 사실상 보수의 가치는 뒷전이고,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새누리당은 바른정당이 분당해 나간 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구성하고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인 위원장 체제에서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고, 박근혜 탄핵에 책임이 있는 친박 세력에 대한 처벌의 일환으로 친박 좌장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에게 당원권 정지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대선이 눈앞에 닥치자 본색을 드러냈다. 후보로 선출된 홍준표 후보는 "박근혜 탄핵은 잘못됐다"는 발언을 밥먹듯이 했고,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박근혜 동정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당장의 선거에 눈이 멀어 보수 가치를 부정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또 다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홍준표 후보는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사를 밝힌 비박계 의원들의 복당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친박계 의원들에게 내려진 징계를 모두 해제했다. 홍 후보는 "우리 모두 용서하고 하나가 돼서 대선을 치르기 위해 친박들 당원권 정지된 거 다 용서하고, 바른정당으로 나갔다가 복당하려는 분들 다 용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보수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대선 결과에만 목을 메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8일 고려대 앞 유세에서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연합뉴스)

반면 역시 보수를 표방하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행보는 홍준표 후보와는 차별화 돼 있다. 유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적극 동참했고, 대선 초반 자유한국당과의 보수 단일화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성완종 리스트 의혹을 받고 있는 홍 후보의 후보 선출과 친박 청산 미비 등을 이유로 대선 완주를 결정했다.

유승민 후보는 지난 3월 28일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수락연설에서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라면서 "정의, 자유, 평등, 공정, 법치, 공공선이라는 헌법 정신이 살아 숨쉬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목 메는 자유한국당과는 분명히 다른 행보다.

유승민 후보는 '개혁 보수', '따뜻한 보수'를 강조하며 대선 행보를 이어갔다. 유 후보는 '박근혜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지지율 정체를 겪기도 했고, 바른정당 의원 10여 명이 집단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는 과정에서 사퇴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유승민 후보는 "우리가 새누리당을 뛰쳐나와 바른정당이라는 새로운 보수정당을 만들 때의 그 각오, 결심을 생각한다"면서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옳았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가는 길이 아무리 험하더라도 언젠가는 국민들께서 마음을 열어주실 거라 믿고 있다"며 묵묵히 완주 의지를 표명했다. 그 결과 최근 유 후보의 유세에는 2040세대를 중심으로 지지층이 몰리는 추세다.

물론 유승민 후보도 철저한 반공을 강조하는 색깔론을 펼치면서 '냉전 보수'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를 강조하고 민생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은 기존의 친박으로 대표되는 수구패권 세력과는 분명히 차별화 된 모습이다.

이번 대선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 청산'을 위한 대선이기도 하지만, 박근혜 게이트로 무너져 내린 보수 정치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 짓는 선거이기도 하다.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든지 보수는 우리 정치의 한쪽 날개다. 보수가 바로 서야 한국 정치도 건강한 발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보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는 정치적 권력 남용을 반대하고 원칙 없는 정치적 행위를 비판하며 보편적 원리에 의거한 정치철학을 제시했다. 그는 전통과 질서, 제도 보존 등의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점진적 개혁에 가치를 부여했다. 이에 비춰보면 앞으로 한국 보수를 이끌어야 할 정당이 어디인지는 명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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