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1. 오늘

"요즘 종편이라고 그래요. 종일 편파방송한다고 그래서 내가 집권하면 이 종편 두 개는 없애버려야겠어요."

"SBS는 내가 키운 방송... 내 집권하면 SBS 8시 뉴스 싹 없애버리겠다."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목을 다 잘라야 한다... SBS 8시뉴스 보지 마라. 드라마는 보시고 뉴스는 MBC 뉴스 봐라."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홍준표가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4.26)와 공개된 유세 현장(5.3~4)에서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일국의 대통령, 더구나 자유민주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차마 믿기 힘든 위험천만하고도 놀라운 발언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 Ⓒ연합뉴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입만 열면 언론자유를 부르짖는 조중동이 홍 후보의 언론탄압 막말에 대해 침묵하고 있어 놀라움을 넘어 기이할 정도다.

조선일보 지면에 홍준표의 발언이 등장한 것은 지난 4일자 6면 기사 'SBS '세월호 인양시점 거래의혹' 보도에 정치권 발칵'이 전부다. 그나마 홍준표의 발언을 SBS보도와 연관된 각 당들의 정치공세에 버무려 "허위 방송을 했으니까 사장도, 보도본부장도 물러나야 한다"는 식으로 전했을 뿐, "SBS 8시 뉴스 싹 없애버리겠다"거나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목을 다 잘라야 한다"는 말들은 내보내지도 않았다.

동아일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송평인 논설위원이 작성한 5일자 '횡설수설' 코너에서 홍준표의 막말을 문재인 후보 측의 SBS 압력(?)과 병행시켜 보도한 게 다다. 언론 막발 발언을 실재하지도 않은 압력과 억지로 쌍을 맞춘 것이다. 그러면서 글 말미에 "언론이 권력과 당당히 맞서려면 방법은 하나다. 최선을 다한 진실 보도만이 펜을 검보다 강하게 만든다"고 썼다.

중앙일보도 5일자 'SBS 세월호 보도, 3년차 7급 공무원 발언 동의없이 편집' 기사에서, 홍준표의 언론탄압 막말을 SBS와 관련한 정치권 공방으로 한데 묶어 처리했다는 점에서 조선·동아와 다를 바가 없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충주 유세현장에서 나온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목을 다 잘라야한다"는 막말을 전했다는 건데, 그런 말을 소개하고도 이후 아무런 추가대응이 없었다는 것이 외려 더 기괴할 따름이다.

풍경2. 어제

이제 시곗바늘을 15년 전으로 돌려보자. 그러면 홍준표의 언론탄압 막말에 이렇듯 너그럽고 관대한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살벌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을 게다.

16대 대선을 8개월 앞둔 2002년 4월 8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노무현 후보의 언론탄압을 비판하는 만화가 각각 올라왔다.

2002년 4월 8일자 중앙 만평(좌)과 동아 나대로선생 만화(우)

먼저 김상택 화백의 중앙일보 만평. "만약 노가 잡으면"이란 제목을 붙인 만화를 통해 김 화백은 "만약 노무현이 집권하게 되면, C일보(조선)와 D일보(동아)는 대통령 취임식장에 접근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 사주들도 강압적으로 쫓겨나는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냉소했다.

동아일보 나대로선생은 또 이렇게 야유했다. "동아일보가 DJ에게 호되게 얻어맞고 만신창이의 몸으로 신문의 날에 겨우 참석했는데 만약 노무현이 집권하게 되면 아예 '폐간'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2003년 신문의 날에는 참석조차 못하는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겠군."

왜 이런 만화가 올라오게 됐을까? 단초를 제공한 건 4월 초 국민경선 와중에 이인제 의원이 터트린 '노무현 언론관련 발언'이었다. 이 의원의 폭로내용은 이러했다. 노무현 후보가 작년 8월 초 기자들과의 저녁자리에서 언론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가운데 "내가 집권하면 메이저 신문들을 국유화하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폐간시키겠다. 신문사주들의 퇴진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는 것.

평소 노무현을 경원하던 조중동은 이 의원의 입에서 이러한 메가톤급 폭로가 나오기가 무섭게 '얼씨구나' 반색하면서 그것을 고성능스피커에 담아 연일 확대재생산하기에 바빴다. 나아가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를 빌미로 노무현을 완전 매장시키고자 했다. 당시의 기록들이다.

- 동아, [사설] 盧후보 언론관 무엇인가(4.5)
- 동아, [사설] '자유민주 원리' 깨자는 것인가(4.6)
- 동아, [사설] 노무현 후보, 정말 왜 이러는가(4.8)
- 동아, [사설] 노무현후보 도덕성 문제있다(4.9)

"국유화든 사원지주제든 소유지분제한이든 권력의 입맛대로 언론사의 소유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을 거부하는 것이다.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그런 발상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일이다..."(동아, 4.6)

- 중앙, [사설] "집권하면 메이져 신문 국유화"(4.5)
- 중앙, [사설] 기자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4.6)
- 중앙, [사설] 노무현 후보의 말바꾸기(4.8)

"이인제 후보측에서 제기한 노무현 후보의 언론 관련 발언이 너무 충격적이다...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온 사람의 발언으로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반민주적이고 군사독재 이상의 폭력적인 언론 국유화론이다..."(중앙, 4.5)

- 조선, [사설] ‘노무현 언론발언’ 사실여부 밝혀야 (4.5)
- 조선, [사설] 盧武鉉씨의 말 말 말바꿈 (4.8)
- 조선, [사설] "「朝鮮」에는 「폐간」얘기 했을 수…"? (4.9)

"내가 집권하면 메이저 신문들을 국유화하겠다. 동아일보는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집권하면 그 신문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거부할 경우에 폐간시키겠다." 이러한 발언이 만일 사실이라면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사실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말이다. 과거의 스탈린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입에 담기도 힘든 발언이다..."(조선, 4.5)

각설하고, 누구는 "메이저 신문 국유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폐간" 운운한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경쟁상대가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반대로 누구는 종편 2개를 없애버리고 지상파 방송사 사장과 보도본부장 목을 자르겠다고 공개리에 발언했음에도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먼 산만 보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 무엇이 달라졌기에 이처럼 극과 극의 대비가 생긴 것일까? 조중동은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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