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는 다른 방송들에 비해서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서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KBS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해서 다행한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누가 한 발언일지 한번 맞혀 보시라. 뉴라이트? 청와대? 아니다. 바로 손봉호 KBS시청자위원장의 2010년 신년사다.

이같은 발언을 한 이가 KBS에 대한 비판을 법적으로 보장받은 KBS시청자위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 보인다.

▲ 1월 5일자 KBS사보에 실린 손봉호 KBS시청자위원장의 신년사.
KBS시청자위는 △방송편성에 대한 의견제시 또는 시정요구 △자체심의규정 및 방송프로그램 내용에 관한 의견제시 또는 시정요구 △시청자평가원의 선임 등을 담당하며, 이들의 시정요구에 대해 KBS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수용해야 한다. 부당하게 거부할 시 KBS시청자위는 방통위에 시청자불만처리를 요청할 수 있기도 하다. 결코 작지 않은 권한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9월부터 임기가 시작된 제20기 KBS시청자위는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KBS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KBS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 KBS시청자위는 이같은 비판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을까?

위원장의 신년사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지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다수 포진된 KBS시청자위의 지난해 12월 회의록을 보면 방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뉴스, 프로그램의 공정성 문제는 '공'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높은 연예기사 비율, 기상캐스터의 의상, 보컬트레이닝 등에 대한 문제가 지적될 뿐이다.

"2TV <아침뉴스타임>의 꼭지 이름이 '경제척척' '싸다싸마트 아울렛' '타임스포츠' 처럼 젊은이 취향으로 돼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년이상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나 주부들에게 외면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고요. 연예인들 신변잡기 같은 연예가 소식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김상준 위원)

"라디오에서 앵커와 기자가 나올 때 앵커가 '어디어디에서 큰 불이나서 건물이 전소됐다면서요?'라고 하면 기자가 다시 또 그 이야기를 하는데 왜 그것을 반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식을 전해주십시오' 한다든지 '화재에 대해서 소식 전해주십시오'하면 좋을 텐데 그 내용을 앵커가 한참 얘기하면서 끝에 가서 '그랬다면서요?'이러면 듣기가 싫어요."(손봉호 위원장)

"기본적으로 방송기자들의 리포트가 한마디로 어색합니다. 방송언어에 대한 기자들의 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꼭 초임기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중견기자들도 가서 훈련을 받고 모니터링을 하면서 방송언어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이민규 위원)

"어제 9시뉴스의 기상캐스터를 보고 '저 아가씨 재벌 2세하고 약혼했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걸치고 나온 것이 몇백만원짜리로 내눈에는 보이더군요. 시청자들한테 위화감을 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입니다."(호천웅 위원)

"(KBS 역사스페셜에 대해) 역사는 영원한 진리라는 게 없을 수 있는데 단정적 멘트들이 계속 나오니까 좀 부담이 갑니다. 지나치게 힘찬 내레이션도 고답적이고 위압적으로 설득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김상준 위원)

이밖에 12월 회의에서는 여기가 시청자위 회의인지 김인규 사장 칭찬 자리인지 모를 지적(?)이 쏟아지기도 했다.

KBS사우회로부터 추천을 받은 호천웅 위원은 "(김 사장은) 1990년대에 MBC보다 뉴스 시청률이 뒤지고 있을 때 그것을 뒤짚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맨땅에 헤딩'이라는 아이템에 큰 몫을 하신 분"이라며 김인규 체제의 KBS뉴스를 '희망적이다'고 표현했다.

이민규 위원은 "사장님이 NHK의 사례도 얘기하셨지만 미국 PBS를 보면 앵커가 나와서 아주 조근조근 차분하게 중요 아이템에 대해서 30분 내지 20분을 서로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우리방송의 포맷이 읽고 보도하는 포맷에서 벗어나서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포맷으로 변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며 김 사장의 뉴스 포맷 변화 추진을 거들기도 했다.

KBS가 정권홍보기구로 전락해버렸다는 목소리가 높은 지금. 과연 KBS시청자위는 자신들의 존재 근거에 합당한 활동을 하고 있는가? KBS시청자위라고 불러야 할지 KBS들러리위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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