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선거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징검다리 연휴에 걸려 많은 이들이 투표율을 걱정했다. 그나마 그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전투표제도. 각 정당들 중에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사전투표에 공을 더 들이는 모습이었다. 역대 본 적 없는 높은 민주당 지지율이지만 이 황금연휴 기간에도 유효한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5월 4일과 5일에 치러진 사전투표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기대했던 사람도 놀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도 놀라게 한 투표율이다. 이는 전체 투표율이 100%가 아닌 이상 전체 유권자의 1/3 정도가 미리 투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6%의 투표가 그렇다고 어느 한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렇게 보는 경향이 큰 것 같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그렇다면 이번에 사전투표에 이토록 많은 시민들이 몰린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를 거르자면 이번처럼 좋은 조건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열흘 이상의 장기 휴가도 가능한 징검다리 연휴에다가 심지어 9일의 경우 직장에 나가야 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누구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도 핑계대기가 좋다.

또한 불행하게도 투표를 꼭 하겠다는, 해야 된다는 사람에게도 5월의 달력은 매우 불리했다. 연휴 특히 8일엔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미 긴 연휴를 보냈기에 9일까지도 쉬기는 어려운 중소기업 노동자 및 자영업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 이들에게 사전투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황금연휴 기간 중간에 놓인 4일과 5일에 놀러가지 않고 투표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무려 1100만이 이 사전투표 행렬에 동참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정조정에 애를 먹으면서도, 공항에서 긴 시간을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투표를 해야 했던 이유는 사실 너무도 간단하다.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여행객들이 4일 오전 인천공항 사전투표소에서 제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겨울 촛불광장을 찾은 숫자가 1600만. 그 정도라면 사전투표 1100만은 가능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전투표를 한 유권자가 1100만이라는 것은 이번 대선이 장미 어쩌구가 아니라 여전히 촛불대선임을 힘주어 말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는 또 한편 언론에 대한 엄중한 경계이기도 하다. 언론들은 애써 이번 대선의 의미를 줄이려 한다. 장미대선이라니. 이번 대선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고, 희망적이지도 않다. 어쨌든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상징되는, 무너진 국가를 다시 세워야 하는 절박한 선거라는 사실을 호도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촛불광장이 전하는 적폐청산, 정권교체의 의미를 은폐하기도 했다. 심지어 지상파 뉴스에서 가짜뉴스가 보도되는 상황까지도 목격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인 2월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다른 선거 때와 달리 이상하게도 가짜뉴스, 흑색선전이 잘 먹히지 않는다. 아마도 이 지점이 적폐세력들이 가장 당황스러워 하는 대목일 것이다. 언제나 통했던 북풍이 막히고, 가짜뉴스가 금세 들통이 나는 상황. 이 역시도 사실은 추운 겨울날씨에도 광장을 지켜야 했던 그 간절함의 작용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누군가는 떠날 날을 늦추기도 하고, 도착날짜를 당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투표소로 향했다. 혼자 가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갔다. 사전투표는 주소지가 아닌 곳에서도 가능하기에 친구, 애인, 선후배 등과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사진 한 장은 사전투표에 대한 시민들의 간절함을 잘 대변해주기도 했다. 정당이 아닌 한 시민이 만들어 길가에 내건 현수막이었다. 특별한 문구가 적힌 것은 아니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평범한 것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그 마음이 크게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렇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각자의 심정들은 촛불의 연장이 아니면 무엇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대선은 장미가 아니라 촛불이다. 사전투표 1100만의 의미는 그 ‘촛불’의 명령을 다시 들려준 것 아닐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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