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준상 기자] SBS가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 보도로 거센 논란에 휩싸이자 해당 보도의 문제를 인정하고 보도본부장이 메인뉴스에서 직접 사과 방송까지 내보냈다. 그러나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SBS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가짜뉴스를 확인·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건 투표일이 불과 몇일 남지 않은 시점에 메인뉴스를 통해 방송했다. 게이트키핑 과정의 문제라고 뭉뚱그리기에는 석연치 않는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일반적인 방송사의 취재 보도 관행에서 많이 벗어났다.

SBS<8뉴스>는 지난 2일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 속도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의 눈치를 보며 조절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의혹 보도였다.

핵심 근거로 제시된 것은 해수부 공무원의 발언이었다. 해당 공무원은 “솔직히 말해서 이거(세월호 인양)는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을 지연하면 문 후보가 공식·비공식적으로 해수부 쪽에 특혜를 주겠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일 SBS<8뉴스> 보도 화면 갈무리.

SBS는 해당 기사를 두고 정치권 등에서 논란이 일자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방송까지 내보냈다. 김성준 SBS 보도본부장은 3일 저녁 <뉴스8>에서 "기사작성과 편집 과정에서 게이트키핑이 미흡해 발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식될 수 있는 뉴스가 방송됐다"며 “이로 인해 상처를 받으셨을 세월호 가족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하지만 SBS의 사과와 해명에도 논란은 여전하다. 해양수산부는 4일 해당 공무원이 공직 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인 해수부 소속 7급 공무원이라고 밝혔다. 해수부에 따르면 이 공무원은 지난 4월16일부터 일주일간 세월호 인양 현장에 근무하면서 SBS 기자와 통화했고, 인터넷 뉴스 등에 떠도는 이야기를 SBS 기자에게 언급했다. 이를 SBS에서 동의 없이 녹취 및 편집해 보도했다는 게 이 공무원의 진술이었다. 해수부는 이 직원은 세월호 인양 일정이나 정부 조직 개편 등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 3일 SBS<8뉴스> 보도 화면 갈무리.

해수부가 해당 공무원에 대한 조사 결과 일부를 밝힘에 따라 SBS 보도의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먼저, 해당 공무원이 취재원으로서 적합했는지 여부다. 그는 세월호 인양 일정 등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해줄 수 없는 하위직 공무원이었다.

그런데도 SBS 기자는 그를 취재원으로 선택했고, 그의 발언을 녹취했다. 하지만 ‘게이트 키핑’ 과정에서 보도 책임자가 이를 파악한 뒤 보도가 되는 것을 막았다면 이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보도 책임자는 취재원에 대한 사내 직원들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윤창현)는 3일 성명에서 “해당 취재원(해수부 관계자)이 제공한 정보 신뢰도에 대한 다른 기자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SBS는 해당 공무원과 인터뷰한 지 2주도 더 지난 시점에 기사를 보도했다. 취재원의 발언을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노력은 물론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 '문재인 세월호 인양 뒷거래설'이라는 메가톤급 녹취 내용을 확인 검증하지 않은 것은 언론사의 일반적인 취재 보도 관행과 많이 다르다.

▲해양수산부 브리핑(사진=연합뉴스)

이뿐만 아니라 보도 책임자는 해당 기사 초고 문장 일부를 삭제하고 제목도 자극적으로 바꿨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초고 때 담겼던 박근혜 정권 시절 인양 지연과 눈치 보기를 지적하는 문장과 인터뷰가 데스킹 과정에서 통째로 삭제됐고, 제목도 <’인양 고의 지연 의혹’..다음 달 본격조사>에서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라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변경됐다”고 했다.

또 “기사 가운데는 해당 공무원의 음성을 빌어 문재인 대선 후보 측과 해수부가 조직 확대에 관한 약속을 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대목도 포함됐다”고 했다. 초고의 내용이 수정 및 삭제 없이 그대로 보도됐다면 지금과 같은 파문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보도 책임자의 데스킹이 논란을 부추긴 꼴이 된 셈이다. 게이트키핑 과정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이번 사태를 ‘보도참사’로 규정하고 회사에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긴급 편성 위원회를 소집해 사태의 전말을 파악하고 모든 의혹을 검증해 결과를 국민들에게 가감 없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또 ”SBS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 보도본부 책임자들에게 물을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훈 SBS 사장도 4일 사내 전산망에 담화문을 올려 “이번 일과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 조사뿐 아니라 내부시스템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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