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출근 길 눈이 많이 내렸다. 단 4일 전인 12월 31일 예산안 등 여당 단독의 강행통과 이후 눈 내리는 국회는 더욱 싸늘했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7월 언론법 강행통과 이후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 한 번의 예산안 강행통과란 무리수를 쉽게 던질까란 예상을 깨고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일을 저질렀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훌륭한 지원 아래.

강행통과를 부축인 데는 갈지자 모습을 보인 민주당도 한 몫을 했다. 이강래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의 타협노선과 이낙연, 추미애 등 민주당 출신의 상임위원장들의 해당행위는 한나라당에게 예산안 등 강행통과 이후 불어 닥칠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을 반감해 줬다.

이런 국회 상황에 대해 국민이 모를 리가 없다. 지난 연말 국회의 추태에 대해 다수의 국민은 상당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당도 야당도 얻은 것이 없다. 이는 결국 야당이 집권당의 국정운영을 견제한다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국민에게 인식시킬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 지난 2009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해 표결처리하는 모습 ⓒ미디어스
언론악법 폐기를 주장하며 의원직까지 던져 버린 민주당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사퇴3인방'은 더욱 난감하게 됐다. 언론법 재논의를 촉구하며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한 달을 꼬박 농성했던 이들은 누구보다도 큰 무기력감에 빠져 있다. 현재 무기한 휴지기에 들어 간 의원실 관계자들은 국회에서의 언론법 재논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언론법 재논의를 거론조차 하지 않는 김형오 국회의장에 대한 대응을 명백한 답이 나올리 만무한 헌재에 '부작위 소송'만을 제기한 민주당 지도부의 모습에서 언론법 재논의는 이미 물건너 간 의제가 되어 버렸다는 평이다.

그럼에도 헌재 판결에 한가닥 희망을 거는 이들도 물론 있다. 언론법 강행 통과에 대한 절차적 위법성은 결정돼 있기 때문에, 국회의장이 이를 치유하지 않는 것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명백하다는 이유이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헌재의 판결을 필요에 따라 모르쇠로 일관하는 김 의장과 한나라당, 청와대, 방통위는 또 한번의 헌재 판결에도 어떤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지난해 국회에 출석해 종편 허가 등은 현실적으로 올해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강행통과 된 언론법이 실행되는 시점을 고려해 언론법 재논의가 가능한 것은 국회법에 따라 열리게 되어 있는 짝수달인 2월, 4월, 6월의 국회이다. 6월 지자체 선거로 인해 4월과 6월 국회는 개점휴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나마 언론법 재논의가 가능한 것은 2월 국회이다. 그러나 2월 국회는 정부가 오는 1월 11일 세종시 최종 수정안을 발표할 예정임으로 이에 대한 공방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지자체 선거 이전에는 언론법 재논의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달리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미디어렙 법안은 2월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문방위 여야 간사인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6월 이후에 새로운 미디어렙 관련 법이 시행되어야 한다는데 충분한 공감이 있다고 한다. 지난 연말 4대강예산과 관련해 여야 간 치열한 갈등이 있음에도 미디어렙 법안 심의를 위해 문방위 법안심사소위는 진행됐다. 구체적 쟁점은 많이 남아 있지만 방통위와 여당이 급선회 한 듯한 '1공영 1민영' 안과 위탁 대상에 있어 '종편과 보도전문채널의 포함 문제만 정리되면 법안이 쉽게 통과될 것'이란게 문방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해에 이어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법 문제의 핵심에는 정치권력의 문제라고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언론법 재논의도 정치권력이 재편되어야지만 가능하다며 2010년 6월에 있을 지자체 선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치권력을 재편하기 위해서라도 언론의 독립이 필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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