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올해도 어김없었다. 한해를 결산하는 시상식에서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올해도 봐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마다 창피한 모습이 반복될 수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KBS 연기대상에서 인기상을 받은 김소연은 묘기대행진을 벌였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거의 아웃사이더 랩 수준으로 수상소감을 말했던 것이다. 그렇게 높은 RPM의 수상소감을 본 적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 잠깐 봤으면 조증환자라고 오해할 만도 한 장면이었다.

김소연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일반적인 수상자처럼 ‘정상적으로’ 말했었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말을 빨리 하라는 신호를 앞에서 보낸 것 같았다. 김소연은 갑자기 당황하더니, ‘빨리 하라고 하는데요 죄송해요’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녀의 수상소감은 예능 개인기 수준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대체로 오랜 무명, 혹은 슬럼프, 굴곡을 겪은 사람들은 상을 받은 후 벅찬 감격을 표현한다. 그렇게 감격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며 보는 이도 함께 감동을 느끼는 것이 시상식의 미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김소연은 오랜 기간 슬럼프를 겪었던 사람으로서 이번 수상에 상당히 감격한 듯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그렇게 감동적인 성취를 이룬 배우에게 보상하고 격려하는 행사가 바로 연기대상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김소연에게 벅찬 감격을 표현할 여유가 주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시상식은 그런 김소연을 다그쳤고 덕분에 그녀는 쫓기듯이 수상소감을 말하고 밀려 사라졌던 것이다. 김소연은 연신 ‘죄송해요’를 말해야 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그녀에게나, 시청자에게나, <아이리스> 팬들에게나 상당히 감동적인 장면이 되었을 김소연의 수상장면은 결국 코미디로 전락했다. 김소연이 뭘 잘못했길래 상 받고 죄송해해야 하나? 연기대상에서 왜 수상배우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연줄을 탄 것도 아니고, 본인이 이룬 탁월한 성취로 상을 받은 사람에게 왜 그렇게 감사표시조차 제대로 못하고 쫓기듯이 허겁지겁 소감을 말하도록 다그쳤는가?

그 이유가 정말로 황당하다. KBS 연기대상은 김소연 수상 전에 2010년에 방영될 자사 드라마를 홍보하는, 어처구니없는 이벤트를 벌였다. 2009년을 결산하며 그해에 성취를 이룬 배우들에게 시상하기 위해 배우들을 모아놓고, 또 그런 모습을 보려는 시청자들을 모아 놓고 앞으로 방영될 드라마를 홍보하는데 시간을 썼던 것이다.

심지어 그 작품들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무대에 올려 세워놓고 별 의미도 없는 내용으로 시시콜콜히 한담을 나누기도 했다. 얼마나 오래 대화를 나눴던지 마치 그들이 대상이라도 수상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그래놓고 정작 상을 받은 사람에겐 어서 내려가라고 다그쳤던 것이다.

이야말로 올 연기대상에서 부끄러웠던 모습 중 백미라고 할 만한 장면이었다. 한해 방영됐던 작품 중에 가장 연기를 잘 했던, 혹은 가장 큰 성취를 이뤘던 배우들로 후보를 선정해 우수상, 최우수상, 대상을 시상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이것만 잘 하면 아무도 시상식을 개탄할 사람이 없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 헝클어져 해마다 시상식을 개탄하는 일이 반복된다. 이것이 나름 문화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질 일인가?

홍보 때문에 정작 그날의 주인공인 수상자를 다그치는 시상식 풍경은 가히 상상초월이었다. 본의 아니게 ‘죄송해요’를 연발하며 개인기를 펼쳐야 했던 김소연에게 위로를 보낸다.

역시 상나눔 상조회

이제는 더 이상 반복해 말하는 것도 괴롭다. 지나친 상의 남발이 시상식의 권위를 무너뜨린다는 사실. 시상식은 그 나라 해당분야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데, ‘자폭’하는 부끄러운 시상식이 한국 대중문화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한류시대에 나라망신까지 초래한다는 사실. 우리도 미국처럼 깔끔한 시상식 좀 해보자는 한탄. 도대체 이 얘기를 얼마나 더 해야 하나.

KBS 연기대상은 연기상을 단막극, 일일극, 미니드라마, 중편극, 장편극, 이런 식으로 무려 다섯 개 부문으로 쪼개 시상했다. 이런 건 우리 대중문화 시상식 일반의 문제이므로 당연히 타 방송사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나타난다.

SBS 연기대상은 특별기획드라마, 드라마스페셜, 연속극 등으로 부문을 쪼개 상 나눔 파티를 벌이는 기상천외한 창의성을 지난해에 이어 과시했다. 정말 반갑지 않은 창의성이었다. 뉴스타상이란 것으로 10명에게 상을 바겐세일하고, 다시 10대 스타상이란 것으로 또 10명에서 상을 나눠주는 인심을 쓰기도 했다.

그나마 베스트커플상이라는 기이한 이름의 상을 SBS에서는 이승기, 한효주에게만 주며 나름 정돈된 모습을 보였으나, KBS는 8명을 올려 세워 낯 뜨거운 광경을 연출했다. 이런 정체불명의 상을 주며 무대 위에 배우들을 우르르 올려 세우는 이벤트에 젊은 신인급도 아닌 이병헌까지 동원한 것은 해도 너무한 처사였다.

연기상이 시청률상, 공로상, 출석상적 성격으로 일탈하는 것도 일정 정도 여전했다. 거기에 해마다 지적되던 상 나눔 상조회의 문제도 여전했고, 게다가 홍보 이벤트를 위해 수상 배우를 다그치는 추태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정상적인 시상식이지 김소연의 당황한 모습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시상식을 보고 싶다는 바람이 그렇게도 어려운 주문이란 말인가? 부디 2010년엔 다른 모습이길 바라며 새해를 맞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