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올해 2월 16일, 문재인 후보는 한 포럼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한 레즈비언 참석자는 문 후보에게 왜 성소수자 정책이 없냐고 항의했다. 문 후보는 ‘나중에’ 말할 기회를 준다고 이를 제지했고, 이후 주위의 수많은 청중들이 “나중에”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많은 성소수자에게 이 ‘나중에’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나중에 발언 순서를 준다는 것 그 이상으로 다가왔다. 성소수자들은 ‘나중에’라는 말에 이미 질리도록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 걸까?

장면 2. 4월 13일, 군인권센터가 육군에서 동성애자 병사 색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군이 동성애자 병사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군은 게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앱에 접속하는 방식으로 함정수사를 했고, 강압적 진술요구와 디지털 포렌식 기법 등을 사용했다. 당장 장교 시험을 앞두고 있던 나뿐만 아니라 군대에 있는 친구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 이성애자 친구는 내게 군대 가기 전에 자기 명의로 새로 핸드폰을 개통해준다는 진지한 제안을 건넸다. 솔깃했다. 정말 그래야 하나?

장면3. 4월 25일, 4차 대선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 관련 질문을 던졌다. 몇 번의 문답이 오고가면서 홍 후보는 문 후보로부터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대답,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대답,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대답을 이끌어냈다. 홍 후보는 만족했는지 이내 다른 주제를 꺼냈다. 하지만 토론을 지켜보던 나는 그 순간에 붙잡혀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존재를 두고 왜 저들은 찬반을 논하는 걸까?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6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천군만마 국방안보 1천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 참석, 인사말 도중 성소수자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2017.4.26 jeong@yna.co.kr(끝)

이 같은 장면들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동성애 이슈는 모든 성소수자 이슈를 포괄하지 않는다)가 사회적 주목을 받은 몇몇 장면과 그것이 게이인 내게 어떤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쓴 것이다. 장면의 번호들은 성적 지향이나 성별정체성에 따라 더 늘어날 수 있다. 여기서는 위 장면들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다뤄지는 방식과 그 방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금껏 성소수자 이슈는 언제나 ‘나중에’ 이야기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번만 넘기면, 이번에만 조용히 있으면 다음에는 네 차례가 온다는 약속을 우리(성소수자, 성소수자와 함께 싸워 온 사람들)는 수도 없이 들어왔다. 한 마디로 우리는 속을 만큼 속아왔다. ‘문재인 나중에’ 영상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여기에 분노했다. 이 분노는 수없이 반복되어 왔던 거짓말에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의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나중에'를 약속했던 자들이 침묵의 대가로 제시한 ‘대의’에는 애초에 성소수자의 자리가 없었음을 폭로하고 더 이상 거짓 대의를 눈감아주지 않겠다는 선언 말이다.

이 분노는 성소수자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불안으로 인해 배가 된다. 성소수자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불안은 핵심적이다. 우리 사회는 남들과 ‘다름’을 인지하는 것을 곧바로 ‘틀림’의 문제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육군의 동성애자 병사 색출은 국가가 이러한 불안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문도 모른 채 강압적인 수사관 앞에서 ‘너의 성 정체성을 알고 있다’, ‘네가 누구랑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식의 협박을 마주해야 했던 병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찔한 일이다. 이미 위헌 논란이 거센 군형법 92조 6항은 동성애 병사를 색출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를 정당한 수사 행위로 포장하는 빌미가 되어 거대한 일상적인 폭력을 은폐해 버린다. 이미 군대에 다녀온 성소수자는 그저 다행이라고 안도할 수밖에 없고,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성소수자는 어떻게 하면 군 생활을 ‘안전’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국방력 약화는 핑계다. 이들이 약해질까 두려워하는 것은 국방력이 아닌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편견이다. 이미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등의 국가가 군대 내 동성애 차별 금지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4차 대선토론은 대선 이후에도 성소수자의 불안을 다루는 국가의 방식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토론과 토론 이후 인터뷰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만 성소수자가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지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동성애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면서도 법제화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역시 자신의 편견 없음을 말한 후 법제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5인의 유력 대선후보 중 심 후보 말고는 그 누구도 성소수자의 사회적 고통에 관심이 없음을 의미한다. 문 후보는 토론 이후 논란이 일자 사과를 했지만, 성희롱, 성추행 등을 이유로 군대 내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은 굽히지 않았다. 이 말은 틀렸다. 대부분의 군대 내 동성 간 성희롱, 성추행은 동성애 행위를 놀림거리, 수치스러움과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 후보가 언급한 사회적 합의도 사실상 동성애 반대다. 사회적 합의가 현재의 혐오를 방관할 것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권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합의 이후에나 도달 가능한 것이 인권이었다면, 인권은 애초에 약자의 언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군대 내 동성애 반대, 사회적 합의를 언급하는 것은 허울 좋은 핑계이다.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젊음의 거리에서 열린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의 유세 때 성소수자 단체 회원들이 메시지가 담긴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7.4.28 hihong@yna.co.kr(끝)

4차 대선토론 이후 몇몇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문 후보를 향한 기습시위를 벌였고, 경찰에 연행되었다. 누군가는 왜 성소수자 혐오를 선동의 기재로 삼는 홍 후보가 아닌 ‘합법화는 반대하지만 차별은 안 된다’고 말한 문 후보를 공격하나며 연행된 활동가들을 비판·조롱했다. 이는 성소수자 단체들이 오랜 세월 혐오세력에 대항해 싸워 온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고 비가시화하는 점에서도 문제적이지만, 활동가들이 울부짖으며 기습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연행된 활동가들이 기습시위를 벌인 것은 문 후보의 지지자들이 말하듯 “만만한 게 문재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문 후보는 지난 대선 때부터 인권, 평등, 정의를 강조해왔다. 문 후보와 민주당에게 성소수자 이슈는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나중’은 언제 '지금'이 될 수 있는지, 성소수자가 없는 인권을 과연 인권이라 할 수 있는지,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이 ‘합법’으로 둔갑하는 상황에서 인권의 의미는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동성애가 찬반 논의의 대상이 될 때 이미 존재하는 우리들을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말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질문이 있다.

민주당의 진선미 의원은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알아달라’는 말로 이 질문에 대답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진 의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많은 법을 발의해왔고,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진 의원은 자신이 지난 총선에서는 동성결혼 옹호로 낙선운동을 당한 사람이고, 호주제 운동에서는 오적(五賊) 중 한 명으로 지명되기도 했다고 하소연했다. 보수 세력보다 자신을 잘 알고 뜻을 같이 해왔던 사람에게 듣는 비판이 더 아프다고 했다.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나는 진 의원의 대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문 후보도 사과를 하며 ‘현실 정치인’의 고충을 토로했다). 우리가 문 후보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그가 인권을 강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지난 대선 때 차별금지법을 약속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고 그나마 보수 세력보다는 자신들이 낫지 않느냐는 진 의원의 말, 문 후보는 최소한 차별 금지 원칙에라도 찬성하지 않았냐는 말은 다시금 성소수자에게 '나중'을 의미한다. 미래의 어느 구석에 내팽개쳐진 그 나중의 시간까지 감내해야 할 차별과 폭력, 삶의 부정은 우리가 더 이상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나중이 아닌 지금을 말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당신들의 인권과 평등이 거짓이라 말하는 이유다. 아픔의 감각은 ‘현실 정치의 냉혹함’을 살아가는 그들이 아닌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성소수자에게 더 예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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