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가 얼마 전 논란이 된 전두환 회고록을 검증하고 나섰다. 이미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그가 세월이 흘렀다고, 감히 피해자 운운하며 사람에 이어 역사까지 살상하러 나선 것에 대한 언론의 당연한 그리고 최소한의 반응일 것이다. 그런 전두환의 후안무치한 회고록에 분노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 외에 세상은 의외로 잠잠하다.

당사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아마 가장 클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흘러서, 또 이제는 알 만큼 알고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른 뒤 가해자들은 뻔뻔하게도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려 든다는 것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화려한 휴가, 그리고 각하의 회고록’ 편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 회고록과 그의 측근들이 새삼스럽게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도 존재한다. 국민에 대해 범죄를 저지른 권력자들에 대한 사면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된 후 사면이 됐다. 전두환이 사면되지 않고 무기징역의 형량을 다 치르고 있었더라면 감히 이런 회고록 따위를 쓰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37년. 절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되지만 광주 민주화운동은 지금 막 난 상처처럼 아파하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는 없다. 그러기에는 당장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신음하게 하는 상처가 너무도 크다. 바로 세월호. 이제 만 3년이 지났고,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헌법재판에서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 파면의 직접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시민들이 그 길고 질긴 투쟁을 벌인 이유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최순실 때문에 일어났지만 그 싸움을 지속시킨 진짜 원동력은 바로 세월호 참사였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 것은 대통령 탄핵 하나밖에 없다는 것도 엄중한 현실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 스틸이미지

<그것이 알고 싶다>가 많은 사실들로 전두환 회고록을 반박했지만 그보다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당시 신군부들과의 짧았던 인터뷰였다. 아직도 광주시민들에 대해서 국민이 아니라 폭도이라고 하는 당시 보안사령관. 지나간 역사다. 관심 없다고 말하는 어떤 장군의 부인. 그렇다 그들에게는 단지 지난 역사고, 어떻게 왜곡해도 우리는 그저 분노하며 쓴 소주잔이나 기울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 말미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시그널>을 언급하며 만약 1980년 5월 광주도청에서 한 시민군이 무전을 해와 37년, 일제 36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그때의 대한민국은 좋은 사회 됐냐고 묻는다면, 전두환은 어떻게 됐냐고 묻는다면, 우린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말을 얼버무렸던 박해영 경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수습자인 단원고 남학생 박영인군의 교복이 발견된 27일 오후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 앞에서 한 시민이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는 과연 37년 전 광주와 얼마나 또 어떻게 다를까는 질문을 다시 현재의 우리들 자신에게 던지게 된다. 무려 304명이 희생된 참사였다. 그럼에도 유족들과 희생자들이 모욕당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물론 전두환 회고록을 비롯해서 광주를 왜곡하는 모든 무리들의 언행들 역시 민간인 학살을 왜곡하기 위한 의도적인 모욕행위지만 처벌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유럽의 홀로코스트법 같은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세월이 더 흐르게 된다면 세월호 참사 역시 마찬가지 경우를 반복할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전두환 회고록은 말도 안 되게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다시 37년 전 광주도청에서 무전이 온다면 광주는 아직 다 못했어도 세월호만은 그 진실을 다 밝히고, 엄중히 처벌도 하고, 사면 따위는 없다고 당당히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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