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던 보수층 유권자들이 빠지면서 대선 판세에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안희정 충남지사를 거쳐 안철수 후보로 이동해온 이 유권자층은 본격적인 TV토론이 시작된 이후 부동층으로 돌아서거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로 향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홍준표 후보는 자신감이 배가된 모습이다. ‘4자필승론’을 강하게 밀고 나오는 게 그 증거다. 27일 천안 유세에서는 “2012년 박근혜 후보 지지한 사람들의 80%만 모아도 내가 이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준표 후보 측 셈법은 간단하다. 2012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표가 전체의 51.6%였다는 걸 감안하면 이번 대선에서 40% 가량의 득표로 승리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이 ‘산수’가 들어맞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영향력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거고 둘째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지지율이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준이 돼야 한다는 거다. 홍준표 후보의 계산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0% 득표를 넘기지 못한다는 점이 전제돼있다. 흔히 말하는 ‘확장력 부족’이다. 그렇다 해도 이런 가정이 실현되려면 안철수 후보가 구 야권 지지표를 분산시키는 상황이 상수가 돼야 한다. 홍준표 후보가 “안철수 후보는 내 페이스메이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얘기다.

그런데 구 야권 표는 일부 분열돼있는 게 사실이다. 남은 것은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을 의미없는 수준까지 만드는 것인데, 홍준표 후보 측이 바른정당을 흔드는 것은 이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른정당은 안철수 후보를 포함한 3자 단일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안철수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호응하지 않아 사실상 제안의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다. 이번 대선은 할 수 없이 이 상태로 치르더라도 2018년 지방선거 등을 전망하면 바른정당 내 기초조직이 흔들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미 유승민 후보의 지역조직은 사실상 붕괴하고 후보 혼자 선거를 치르는 형국이다. 홍준표 후보가 이 틈을 파고들면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이 ‘복당’을 타진하고 있다는 주장을 계속 언론에 흘리고 있다. 바른정당 소속 일부 의원들은 28일 오전 유승민 후보에게 3자단일화를 요구하는 내용의 입장문을 재차 제기하기로 합의했다. 홍준표 후보의 계산대로 실제 바른정당 조직이 ‘와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국면이 되고 있는 셈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역 앞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후보와 ‘제로섬 게임’을 벌여야 하는 안철수 후보 편에서 보면 이런 상황은 부담스럽다. TV토론이 시작된 이후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홍준표 후보는 구 여권의 전통적 지지자들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수단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여성표 이탈이다. 이는 교육부 해체와 학제개편으로 요약되는 안철수 후보의 교육공약이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는 육아 커뮤니티 등에서 “교육의 4대강 사업”이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서 비롯됐다. 이제와서 교육공약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는 일이므로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사태에 가깝다.

두 번째는 보수적 유권자층의 이탈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홍준표 후보의 ‘제로섬 게임’ 문제이기도 하지만 TV토론에서 안철수 후보가 보수적 유권자층의 선호를 확실히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 탓도 있다.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느냐는 물음에 정확히 답하지 못하거나 ‘박지원 상왕론’을 불식시킬 수 있는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이 상황이 지지율 하락의 세 번째 원인이 된다는 거다. 바로 중도층의 이탈인데, 지역으로 보자면 이들의 상당수는 이른바 ‘호남표’이다. 이들은 안철수 후보가 대구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수 후보들로부터 정체성을 묻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맥락 자체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게 단지 ‘색깔론’이라면 한 번 웃고 넘어가면 되는 문제일 수 있지만 보수 후보의 일원이 되기 위한 일종의 ‘압박 면접’으로 본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최근 여러 언론의 지역 르포 기사에서 나온 표현을 인용하자면 “저쪽 식구인가 싶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역순으로 풀어가야 한다. 안철수 후보와 국민의당 조직이 ‘백병전’을 통해 자력으로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역은 호남이다. 일단 호남에서 농성을 하면서 추가 지지율 하락을 막아야 한다. 홍준표 후보의 기세가 올라 있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지율만 유지하고 있으면 마지막 순간에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표심을 바꾸는 보수층 유권자들의 선택을 여전히 기대해볼 수 있다.

최근 안철수 후보는 선거기획에 능한 김한길 전 의원을 전면에 내세웠다. 통합정부 구성을 매개로 해서 국보위 참여 경력을 문제 삼았던 과거를 잊고 김종인 전 의원 영입도 추진하고 있다. 구상이 생각대로 실현된다면 문재인 후보를 제외하고 박근혜 정권에서 제1야당의 대표를 맡았던 인사가 전부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싶은 것은 ‘친문패권주의’는 당 대표도 버틸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는 것이다.

‘친문패권주의’는 호남 지역 정서의 시각으로 보면 ‘트라우마’다. 참여정부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사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호남 지역 정치가 주류에서 사실상 ‘분리’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이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40% 내외에 머무는 상태를 벗어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태에서 안철수 후보가 10% 정도의 지지율 격차를 유지하고 홍준표, 심상정,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 합계를 15% 정도 수준에 묶어 놓는다면 여전히 ‘막판 대역전’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게 안철수 후보 측 계산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국민대통합과 협치에 관한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말하자면, 홍준표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계산은 모두 문재인 후보의 득표가 40% 선에서 멈출 가능성을 전제한 것이다. 때문에 문재인 후보 입장에서는 45%를 넘기는 득표를 가능한 상태를 만들어야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여기서 걸림돌이 되는 게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존재다. 문재인 후보가 최대 45%의 지지율 확보하는 상황을 전제한다면 이 중 심상정 후보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어림잡아 3%에서 최대 5%에 이른다.

그런데 ‘동성애 발언’의 여파로 문재인 후보가 이들을 붙잡기는 쉽지 않게 됐다. 문재인 후보는 이념 구분으로 볼 때 좌클릭보다는 상대적인 우클릭으로 추가 지지율 확보에 나설 걸로 보인다. 27일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언급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의 전제를 ‘북핵 동결’로 명시한 것을 볼 때 그렇다. 좌측의 누수는 마지막에 ‘사표론’으로 막는다는 전략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문재인 후보의 ‘방패’는 결국 홍준표 후보의 추가 상승을 대비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홍준표 후보는 ‘영남-충청 정권’을 주장하면서 호남을 사실상 ‘버리는’ 전략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호남은 어차피 자신을 지지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여기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이전투구하는 동안 영남과 충청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걸 문재인 후보의 시각으로 보면 영남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면 사실상 선거구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의 ‘새누리당의 부활’이나 다를 게 없는 판국이 돼버린다. 심상정 후보를 향한 ‘사표론’은 바로 이 대목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게 심상정 후보가 최근의 지지율 상승 국면에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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