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늦둥이'라는 표현은 현재의 예능이 어떤 특정한 형태의 공동체성 위에서 구사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현재 예능의 대세라고 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보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대표주자 격이라고 할 <무한도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는 모두 일종의 멤버십 트레이닝 형태 그리고 노골적인 역할 놀이를 통한 유사 가족주의의 토대위에 서있다.

늦둥이는 가족 공동체에서 가장 사랑스런 막내를 일컫는 표현이다. 이렇듯, 현재의 예능을 하나의 공동체라고 가정하면, 이 유사 가족 공동체성의 근원을 이루는 DNA 혹은 어떤 공통된 기질의 추출도 가능해질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리얼'이라고 하는 뼈대에 '라인'이라고 하는 공통 감각이 흐르고, '멤버'가 살과 조직처럼 움직인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예능 늦둥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은 무수한 이들을 위한 호명이 결코 될 수 없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명, 일주일로 치자면 수백의 사람들이 예능에 출연하지만 '예능 늦둥이'라는 호칭을 언필칭 쓸 수 있는 이는 윤종신, 김태원 그리고 최근 무한도전의 길 정도 이다. 애초 한국적 발라드 감수성의 어느 상징으로 존재하던 윤종신의 예능 재림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었던 것이 예능 늦둥이였는데, 이게 2009년에 꼬리가 길어져 3명의 경합자가 생겨난 것이다. 윤종신이야 좀 됐지만, 김태원과 길의 경우 확실히 2009년이 낳은 늦둥이들이다. 맏이 같았던 늦둥이 최양락도 있기는 했지만, 그는 2009년 하반기 당체 찾아볼 수 없으니, 명백한 탈락이 아닐 수 없다.

▲ 윤종신
윤종신이 한국적 발라드의 감수성의 어느 상징이었다고 한다면, 김태원은 70년대 말 80년대 초 남자 아이들에게 신비한 히어로 그 자체였다. 같이 사는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가죽재킷에 기타를 치는 장발 형님의 모습에 로망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쯤 될 이들에게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3대 기타리스트'의 실존에 관한 것이 그것인데, 그 전설 속의 '3대 기타리스트' 중 1인 이었던 김태원의 존재감은 뭐랄까,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애달픈 깃발 같은 것이었다고나 한다. 2000년대 초 '네버엔딩스토리' 이전 김태원의 마지막 히트곡이었던 '사랑할수록'의 도입부처럼. "한참 동안을 찾아가지 않은..."

뭐 하여간, 그런 김태원을 2009년의 국민 할매를 만든 벼락같은 20분은 작년(2008년) 10월 <라디오스타> 김흥국 편이었다. 애초 누가 보더라도 그는 김흥국의 겉절이이자 라스의 여느 게스트들처럼 병풍일 듯 보였다. 그러나 그 20분 동안 김태원은 가히 범접하기 어려워 차라리 한 마리 머리카락 긴 고독한 야생동물의 내공을 보여주었다. 그 내공의 실체는 현실 부적응 또는 세월을 뜯어먹고 사는 병약한 누추함이었는데, 이는 곧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느 록커의 실제가 실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기러기 아빠의 4차원적 영면이라는 사실의 자백이었다. 그 순간 김태원의 인생의 극적으로 형질전환 되었다. 어떻게? 가장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리얼 버라이어티의 '빡셈'을 온 존재로 입증해내는 훌륭한 표본이자, 빅 웃음의 보장보험으로.

이에 반해 길의 등장은 김태원 만큼 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김태원의 등장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본인이 원하지 않던 바였고, 그래서 등장 이후에도 본인 특유의 정서적 동선을 놓지 않는 것으로 갈무리되는 것에 비해, 길의 경우 본인이 스스로 불나방처럼 예능 공동체로 뛰어들었다. <놀러와>에서 시작된 길의 예능 인생은 본인이 스스로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설왕설래를 남겼던 유재석 라인을 과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강남에서 부유한 10대를 보낸 오리지널 '강남 피플'의 경험을 적절한 양념으로 사용하며, 모든 연예인이 꿈꾸는 연예계 마당발 이미지를 각인했다.

▲ 김태원
이후 길은 현재 예능에서 가장 진입 장벽이 높은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좋을 <무한도전>에 스스로 안착하는 놀라움이다 못해 괴력을 보여주었다. 5년 넘게 호흡을 함께 한 리얼 버라이어티에, 완벽할 정도로 탄탄한 유재석 라인이 무결점의 멤버십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 길은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게시판에서 폭발한 이질감을 민머리의 육탄으로 막아서며 자리를 잡았다. 이제 그는 현재 예능계의 가장 빛나는 블루칩 가운데 하나이다.

올 해 역시, 가장 강력한 지배자로서의 '예능'과 그 밖의 것들로 구성된 대중문화의 큰 흐름은 유지되었다. 유재석vs강호동, 강호동vs유재석의 라이벌 구도는 이제 나훈아와 남진, 주윤발과 장국영에 버금가는 혹은 그 모두를 넘어서는 대중문화적 위상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년 째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박빙의 게임이 계속되는 동안 확실히 예능은 점점 고난스러워지고 있고, 모든 장르가 끓어오르는 용광로이자 교차로가 되어가고 있다.

2009년 등장한 예능 늦둥이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장르로서 예능의 위상이 내년에도 계속된다면,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더 새롭고 훨씬 어려워야 하는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운명이라면, 분명 언젠가 시청자들은 유재석과 강호동 다음의 웃음은 무엇이냐고 묻는 날이 올 것이다. '예능 늦둥이'들의 등장과 존재는 이 모든 것에 대한 확고한 답까지는 분명 아니더라도, 차세대 웃음에 대한 특정한 모색의 지점을 던진다. 누구에게? 다른 예능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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