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사태’.

오늘자(27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최근 삼성 관련 파문을 그렇게 규정했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 단계로 접어든 이후에도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혹은 민중항쟁)을 한동안 ‘광주사태’라고 표기했던 조선일보가 삼성과 사태란 단어를 함께 사용한 것 자체가 ‘흥미롭다’.

그런데 사설을 보면 조선이 나름 최근 정국을 심각하게 판단하고 있는 근거가 읽힌다.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조선, ‘삼성, 자기 혁신과 결단의 모습 보여야’

▲ 조선일보 11월27일 사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는 하나하나가 충격적이다. 국내 대기업 성장 과정에 적지 않은 흠이 있으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하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도의적 윤리적 책임은 물론 당장 법적 책임을 져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한편으론 이번 ‘삼성사태’가 어떻게 어디까지 번지게 될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조선의 사설은 여러 가지로 관심을 모은다. 특히 결론 부분은 같은 날짜 동아일보의 사설과 중앙일보의 사실상의 ‘1면 사설’과 차이점이 많다. 삼성의 자기혁신과 특검 도입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조선 사설의 결론 부분을 살펴보자.

“이렇게 양측이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펴서는 이번 사태를 합리적으로 풀 수 없다. 우선 검찰이 나서서 단기간에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특검이 하면 되는 것이다. 수사와는 다른 차원에서 삼성이 오늘의 문제를 딛고 또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멍에를 스스로 벗어던지는 자기 혁신과 결단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반면 동아일보는 지금까지의 매뉴얼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식상한 감이 있는 사설을 선보였다. 제목부터다 그렇다. <삼성 비자금 폭로, 진위 확인이 우선이다>. 실망이다.

▲ 동아일보 11월27일자 사설.
동아는 사설 서두에서 “현재로서는 어느 쪽이, 그리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종잡기 어렵다”고 언급했지만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다.

동아 “진위 확인이 우선” … 중앙 “명예훼손, 법적 대응”

“김 변호사가 하필이면 삼성 특검법이 통과된 시점에 단독으로 이런 사실을 추가폭로 했는지 그 배경도 의문이다. 청와대가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잇단 폭로로 기업과 경제를 불안하게 하기보다는 이미 수사에 착수한 검찰에 협조하는 것이 더 당당했다고 본다.”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는지’ 동아는 사설 말미에 이런 부분을 추가하는 ‘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 모든 의혹과 공방은 수사를 통해 진위를 가릴 수밖에 없다. 김 변호사의 주장이 허위로 드러난다면 엄중한 민형사 책임이 따라야 할 것이다. 삼성 역시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가 사실로 드러나면 사회적 지탄과 함께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 중앙일보 11월27일자 1면.
중앙일보는 김용철 변호사의 기자회견 내용 가운데 중앙일보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는 사실상의 ‘1면 사설’을 게재했다. 중앙은 1면 <중앙일보 관련 김용철씨 주장은 사실무근>에서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찬 김씨의 주장으로 본지(중앙일보)와 본지 임직원의 명예와 자존심은 크게 훼손됐다. 중앙일보는 이와 관련한 민·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설’에서는 조선과 동아 중앙이 조금 차이를 보였지만 26일 김용철 변호사 기자회견과 검찰의 이건희 회장 출국금지를 전하는 보도태도는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삼성 이건희 회장 출국금지’ 제목 찾기의 어려움

사실 오늘자(27일)에서 나름 ‘신선한’ 뉴스는 검찰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출국금지 조치다. 검찰수사에 따라 이 회장이 출금조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데다 삼성 전략기획실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등 사건 관련자 8∼9명이 함께 출금조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11월27일자 1면.
경향신문과 세계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등이 1면에서 이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한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자(27일) 아침신문에서 이건희 회장 출국금지라는 말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대표적인 게 중앙일보다. 중앙은 1면에서 <삼성 5∼6명 출금…압수수색 검토>라는 다소 특이한 제목을 선보였다. 보통 출국금지나 누군가를 소환할 때 대표적인 인물을 제목에서 표기하는 관행을 과감히(?) 따르지 않고 독창적인 기법을 선보인 건 이해하겠는데 너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제목달기’다.

동아 조선 역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조중동’으로 카테고리 분류가 가능하다. 1면에서 철저히 공방위주의 제목을 선보이더니 삼성 이건희 회장 출국금지라는 말은 본문 깊이 ‘숨겨’ 버렸다. 찾기가 영 쉽지 않다. 검찰 수사에 따라 이 회장이 출국금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도 동아 조선에겐 큰 변수가 되지 못한 것 같다.

삼성 관련 소식을 다루는 오늘자(27일) 아침신문들의 지면배정과 비중 또한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룬 곳은 경향과 조선일보 한겨레. 경향과 한겨레는 지면의 상당부분을 이 문제에 할애해 쟁점별로 분석해 들어가는 ‘적극적 태도’를 보였지만 조선일보는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의 입장을 나란히 1면에 배치하는 공방위주의 편집을 선보이면서 지면배정에 있어서도 3·4면 두 개면만 삼성 관련 의혹에 할애했다.

▲ 중앙일보 11월27일자 1면.
사설에서 ‘삼성사태’란 표현을 쓴 점을 감안하면, 그 표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지면배치다. 동아와 중앙? 짐작한 그대로다. 오히려 국민과 서울 세계일보와 상대적으로 ‘작은 신문’들이 이들에 비해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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