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건전한 토론을 보았다.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로 25일 진행된 대선 후보 초청토론회는 ‘이전투구’에 가까웠던 이전의 토론회보다는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 안도감을 준다.

이전과 비교해 가장 나아진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이다. 안철수 후보는 정치적으로 노림수가 필요한 사안에 뛰어들기 보다는 원래의 장점인 소박한 캐릭터를 살리는 전략을 택했다. 그간 모색해온 ‘미래 대 과거’ 구도를 잡기 위해 계속 애를 쓰고 있는 것인데, 차라리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긍정적 측면에서 ‘안철수 답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논란 등이 이어질 걸로 예상됐던 외교안보 주제에서 안철수 후보가 미세먼지 대책을 언급한 것은 상당히 신선한 선택이었다. 과거 정부에 대한 평가나 진실게임의 입씨름으로부터 완전히 선을 그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더라도 중국의 미세먼지 배출량을 단기간에 감소시킬 수 있는 외교적 카드가 사실상 부재하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여전히 미세먼지는 에너지 또는 산업정책의 영역에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는 있다.

안철수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향해 대기업 위주 정책을 비판하면서 영화산업을 예로 든 것도 신선했다. 기획 투자 제작 배급 상영을 모두 대기업이 독점한 현실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언급한 것인데, 세부적인 정책의 디테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만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제기한 배우자의 보좌진 사적 업무 지시 등에 대해 안철수 후보가 자신의 의정활동을 돕느라 한 일이라는 등 변명조의 답변을 한 것은 좋지 않은 장면이었다. 기성 정치의 구태와 확실히 선을 긋는 후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이 대목에서도 분명한 입장 표명을 했어야 했다.

한편, 대다수 언론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토론을 잘했다고 평가할 것인데 이 부분 관련해선 다소 고약한 부분이 있다는 걸 지적할 수밖에 없다. 우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일자리 대책의 재원에 대한 질문이다. 유승민 후보는 “81만개 공공일자리를 만드는데 5년 동안 21조원을 투입하겠다지만 계산해보면 월 40만원이다. 월급 40만원 짜리 일자리를 81만개 만든다는 거냐”고 물었고, 이에 문재인 후보가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정확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소방관 등 당장 필요한 공무원은 17만 명 가량을 채용하고 나머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30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교육 보건 의료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공무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인건비 일부에만 재정이 투입된다. 이러한 내용은 문재인 후보 측이 그간 여러 경로를 통해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심지어 문재인 캠프에서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40만원 짜리 일자리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마타도어”라고까지 얘기했다. 이 점을 보면 문재인 후보 측이 이미 언론을 통해 지적한 잘못된 주장을 유승민 후보가 다시 재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승민 후보가 신의성실하게 문재인 후보의 공약을 비판하려 했다면 “40만원 짜리 일자리”라고 말할 게 아니라 “81만개 일자리 창출 공약은 부풀려져 있다”고 했어야 한다.

중앙일보-JTBC-한국정치학회 공동주최 대선 후보 초청토론회에 참석한 각 당 후보들 (연합뉴스)

유승민 후보가 불성실한 토론을 하고 있다는 점은 특히 북핵 등 안보 문제에서 드러난다. 유승민 후보는 이날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07년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기권 결정이 정당했다는 취지였다. 유승민 후보의 이러한 사실왜곡은 심상정 후보의 반발을 불러왔다. 당연한 일이다. 유승민 후보의 이런 식의 토론 태도는 두 번째 TV토론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왔다. 토론이 거듭될수록 논리는 성실해지고 쟁점은 좁혀져야 하는데 제자리 걸음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이번에는 후한 점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토론 시간 내내 무언가 조급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해 포용적인 이미지를 보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일자리 정책 재원 문제의 경우 유승민 후보의 질문이 불성실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니라 정책본부장과 토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할 일은 아니었다.

TV토론은 상대 후보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권자들이 궁금해 할 만 한 대목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공약의 재원 문제는 실제로 많은 유권자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이다. 유승민 후보의 질문을 기회로 해서 큰 줄기라도 설명을 했어야 했다. 시간 등 현실적 문제로 정 어려웠다면 대략의 핵심만 얘기하고 세부적인 부분은 토론 이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정도라도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불안감을 키우는 대목도 있었다. ‘코리아패싱’이란 단어를 모른다고 답한 것이다. ‘코리아패싱’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언급하는 상황에서 당사자로 볼 수 있는 남한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최근 신문 지상에 꾸준히 오르내렸기 때문에 이 단어를 보른다고 답한 것은 현안 특히 안보문제에 대해 파악이 늦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관련 발언도 지지자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 있다. 문재인 후보가 60대 남성이고 천주교인이며 그 밖에 이 주제에 대해 다소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 있다는 점을 백보 양보해 이해한다 하더라도, 또 질문과 답변의 맥락을 헌법재판소가 합헌 판결한 군 내의 이른바 '계간' 처벌 규정에 국한해 해석한다 하더라도 정확한 정답을 말할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재차 내놓은 질문에 “차별에 반대한다”고 답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전반적으로 소수자인권에 대한 무감각을 보여준 답변이라는 평가를 피해갈 수 없다. 이 대목은 유권자들이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 국방개혁이나 규제프리존법 등을 놓고 안철수 후보를 향해 “사장님 마인드”라는 비판을 제기해 철학의 차이를 드러낸 걸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문재인 후보에게 일침을 놓은 것 역시 자기 정체성을 잘 드러난 대목이었다. 다만 좀 더 팩트를 정확히 파악하고 섬세한 반론 포인트를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홍준표 후보는 목표가 명확해보였지만 방식은 저열하고 천박했다. 이런 대통령 후보는 앞으로 다시 탄생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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