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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그리스’- 가장 로맨틱한 사랑을 통해, 현실을 적확하게 설명해낸 영화[블로그와]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7.04.25 13:37

<나의 사랑, 그리스>의 제목 속 '사랑'이라는 단어에 낚여, 혹시나 풍광 좋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한 옴니버스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지만 <위플래쉬>의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던(?) J.K. 시몬스의 '로맨틱한 사랑'이 기대되었다면 그 기대는 충족하고도 남을 듯하다. 로맨틱하지 않은데 로맨틱하다? 바로 그런 영화가 <나의 사랑, 그리스>다. 

사랑 영화답게 <나의 사랑, 그리스>는 사랑의 신 에로스에 대한, 극중 은퇴한 독일 교수이자 그리스가 좋아서 현재 그리스 도서관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세바스찬 역의 J.K. 시몬스의 긴 서언으로 시작된다. 

에로스, 다 알다시피 사랑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때론 짓궂게 사랑의 화살로 사랑해서는 안 될 사이를 연결하여 운명에 휘말리도록 만드는, 하지만 정작 그 자신도 그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연히 찔린 자신의 화살로 인해 프쉬케를 사랑하게 된다. 영화는 그런 에로스의 운명 같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랑 그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사랑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는 사랑의 아이러니한 운명을 짚는 것으로 '프롤로그'를 대신한다. 그렇게 인간사를 뜻하지 않는 '운명'에 빠뜨릴 에로스의 화살이 그리스의 한 가족에게 세 발이나 쏘아진다.

그리스의 한 평범한 가족에게 날아든 화살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스틸 이미지

이제는 말년의 평화로움을 즐겨야 할 나이의 가장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란 나라는 그에게서 그 '말년의 휴식'을 빼앗아 갔다. 그는 오늘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재산인 차를 팔러가는 길이다. 한때 가게를 세 개나 운영하던 잘나가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한 대 남은 차마저 넘기러 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행상, 바다 건너 온 이방인이다. 불같이 화를 쏟아 붓는 그. 불현듯 자신에게, 그리고 그리스의 모든 가장들에게 벌어진 불행이 바로 이들 '이방인' 때문이란 생각에 멈춘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긴다. 우유부단한 국가를 대신하여 이 나라를 야금야금 좀 먹어 오는 저들 이방인을 '응징'하고자 나선다. 

에게해와 지중해, 이오니아 해,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리스. 덕분에 일찍이 그 바다를 통해 고대 세계의 절대적 강자로 군림하였으며, 그 바다를 통해 유입된 동양의 문물을 통해 서양 고전 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21세기의 그리스는 그 열려진 바다를 통해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의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고 있다. 그 예전 화려한 그리스 문명의 통로였던 곳에 기근과 전쟁을 피해 찾아든 '이방인'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넌다. 

문제는 21세기의 그리스가 유럽연합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를 연명하기에도 버거운 상태라는 것. 그 국가적 채무의 부담은 고스란히 그리스 국민들에게 전가되어, 이미 그리스인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는 여러 다큐와 뉴스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황이다. 그런데 쏟아져 들어오는 이방인이라니! 내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그리스의 아버지가 보인 결단은 그들을 향해 곤봉과 총을 드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의 문제, 자신의 세대가 일군 국가적 실패를 자신들이 아닌 그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려세우는 방식이 낯설지 않다. 촛불이 불타오르던 그 광장의 또 다른 한편에서 '종교집단'처럼 자신들의 지나간 역사를 붙들고 강력하게 저항하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의 모습과 공교롭게도 오버랩된다. 지난 4월 OECD가 발표한 소비자 심리 지수에서 나란히 꼴찌에서 둘째, 셋째를 차지한 건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아버지 세대가 결국 거리에서 그 '아들, 딸' 세대와 맞부딪치듯, 그리스의 아버지 역시 딸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세대 충돌 사이엔 ‘경찰’이라는 방패가 있었다. 하지만 공권력이 무기력해지고 그 공권력의 빈틈을 '파시스트'가 된 아버지가 판을 치고 다니는 사이, 아버지의 적을 사랑했던 딸 다프네는 아버지가 우려하듯 이방인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의 동지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시대 또 한 편의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죽음'을 먹고 마무리된다. 

이렇게 그리스 한 가정에 쏘아진 첫 번째 화살은 그 제목처럼 '부메랑'이 되어 아버지가 토해낸 적개심의 추진력으로 딸의 가슴을 향하고 만다. 그렇게 영화의 첫 번째는 아버지와 딸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그리스 인과 그리스가 배척하고 있는 시리아로 대표되는 이방인의 관계를 '비극적 사랑'을 통해 그려낸다. 

그리스인과 이방인, 엇갈린 갑을의 사랑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스틸 이미지

이방인과의 금지된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 번째에서 '시리아'와 '그리스'의 관계에서 그리스가 갑이었다면, 이번엔 그 관계가 역전이 되어 그리스가 '을'인 처지의 사랑이다. 

우연히 바에서 만나 원나잇을 하게 된,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와 그리스의 지오르고. 그리고 그리스의 슈퍼마켓에서 만난 그리스 주부 마리아와 독일에서 온 은퇴한 학자 세바스찬. 엘리제와 지오르고의 접점이 된 건 지오르고의 우울증 약 로세프트 50mg이고, 마리아와 세바스찬의 교각이 된 건 토마토 한 팩이다. 한 알의 약과 한 팩의 토마토보다, 더 절묘하게 현재 그리스 중년과 노년들이 겪는 고통을 설명할 대상은 없다. 

감봉과 감원의 위협 속에 파산지경에 몰린 그리스 경제에서 빚에 허덕이며 가정불화까지 겪는 지오르고가 버텨가는 방법은 우울증 약,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는 그런 지오르고를 '우유부단' 혹은 '자기 도피'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유럽의 보다 잘 사는 나라들이 그리스를 바라보는 시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지오르고의 회사 상사로 등장하여 살인적인 감원을 실행해야 하는 엘리제. 그런 엘리제와 동료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부유하는 지오르고의 운명은, 결국 마지막 엘리제가 털어넣는 로세프트 한 말 말고는 달리 도망칠 곳이 없다.

마리아는 어떤가? 허리가 안 좋아서 도움을 청한 이방인에게 마리아는 토마토 한 봉지조차 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퍼붓는다. 하지만 그리스가 좋아 은퇴 후 그리스를 찾은 세바스찬에게 그런 솔직한 마리아가 매력적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슈퍼마켓을 판타스틱한 공간으로 바꾸어가며 이어지는 그들의 두 번째 사랑. 그건 그저 늦바람이 아니라 이제 가족을 위해 더는 할 일이 없어 좌절해 가는 주부 마리아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두 번째 인생의 기회는 뜻하지 않은 마리아네 가족의 비극사로 인해 물 건너가고 만다. 

이방인이라는 방점이 찍히지 않는다면, 성폭행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남성과의 플라토닉한 사랑, 원나잇이 무색하게 한없이 빠져든 40대의 늦지만 솔직한 사랑, 그리고 인생의 말미에 다시 한번 꿈꾸고 싶은 두 번째 사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들이 그리스라는 사회 속에 깃들여지면, 그리고 그 대상들이 그리스의 이방인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물며, 그 세 개의 파편적인 사랑이 '가족'을 중시하는 그리스의 한 가족의 식탁에서 맞닥뜨려진다면. 정작 세 가지 사랑을 하는 주인공들을 모르지만, 관객들은 아는 그 가족의 저녁 식사 장면은 그 어떤 대사보다 강렬하게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설명한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스틸 이미지

가장 로맨틱한 사랑을 통해, 현실을 적확하게 설명해낸 드라마. 에로스라는 신이 그의 화살을 통해 그리스 신화 속 수많은 분쟁과 비극의 도화선을 만들듯, 이 세 편의 사랑 이야기는 오늘날 그리스가 그 지정학적 위치답게 바다를 통해, 그리고 육지와의 관계에서 처하고 있는 입지를 정확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아내 마리아는 저들에 대해 적개심을 쏟아내는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것이라고. 그렇다. 사랑을 통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그리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원제는 <Enas Allos Kosmos, Worlds Apart>. Enas Allos Kosmos는 그리스어로 Ένας Άλλος Κόσμος 또 다른 세계라는 의미이다. 즉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얽혀진 관계 그 이상의 그리스라는 국가가 담은 관계들. 하지만 그런 설명보다 번역된 '나의 사랑, 그리스'가 더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리스'에 대한 영화다. 그리스란 공동체를 구성하는 세대별 구성원들이 처한 오늘날의 이야기, 그들의 사랑,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 대한 애증이 듬뿍 묻어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잃은 딸의 이름은 다프네. 다프네는 나무의 요정,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그녀는 월계수가 되었다. 나무의 요정이 사라진 숲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월계수는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나무이다. 그 월계수가 사라진 그리스는? 그렇게 영화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사적인 감정도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보편적 정의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나의 사랑, 그리스>. 이 이방의 영화를 통해 OECD 꼴찌 국가인 우리의 현실을 짚어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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