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국민의당으로든 문재인과 민주당으로든 정권교체는 기정사실이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집권하면 적폐 세력 연장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건 ‘참주선동’이라고 해두자. 바른정당 후보 유승민이 얘기한 것처럼, 적폐 세력은 민주당 안에도, 국민의 당 안에도, 그리고 유승민은 부인했지만 바른정당 안에도 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자유한국당과 새누리당은 그 안에 적폐 세력이 많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적폐 세력이다.

이번 대선에서 내가 갖는 최대의 관심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 지형상 중도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중도 정당으로서(그것이 중도 좌파이든 중도 혁신이든 중도 보수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떤 면모를 보여주면서 대선을 마무리할 것인지 하는 점이다. 지금으로서는 집권하거나 2등에 머물거나 할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이 산소 호흡기를 단 채 몰락의 길을 갈 것이냐 나쁜 짓을 새로 꾸밀 정도로 탄력을 받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초청 대선 후보자 1차 토론회가 열리는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본관 앞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 선거운동원들이 안 후보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중도로서의 모습을 보이면 그들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적어도 안철수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밝히는 유권자를 100으로 놓고 볼 때 30 정도의 지지를 받아왔다. 광주․전남에서 스스로를 중도라고 밝히는 층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철수를 지지하는 진보층은 호남과 호남을 정신적 고향으로 하는 수도권의 진보층일 것으로 추정된다. 스스로를 중도층이라고 밝히는 층의 상당 부분이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지지한다고 하면, 나머지 안철수 지지층은 누구나 말하고 있듯이 보수, 특히 ‘샤이 보수’일 것이다. 이 샤이 보수층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보수층을 100으로 놓고 볼 때 40~60 정도로 보는 듯하다.

결국 이 샤이 보수층을 안철수가 데려오느냐, 아니면 홍준표가 데려오느냐에 따라 대선의 판도는 바뀐다. 아니, 대선의 판도가 바뀌기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의 향후 갈 길이 바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샤이 보수’가 문재인과 민주당에 갈 일은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서 현실화하기 어렵다. 이와 동시에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진보와 중도로부터 얻어온 지지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집권이 가능하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정치를 하고 있는 쪽은 문재인과 민주당이 아니라 안철수와 국민의당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따지기 좋아하는 분들은 한국사회에서 중도, ‘도대체 이게 뭐냐?’고 할 것이다. 실체가 없다는 말도 곁들일 것이다. 앤서니 기든스가 말한 제3의 길이 결국 시장 근본주의 쪽으로 견인되지 않았느냐는 글로벌 흐름을 지적하는 분들도 있을 테고, 한국사회에서 중도 정치세력이라고 불렀던(물론 이런 분류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여운형, 김규식, 조봉암 선생 등이 결국 좌파로 몰렸던 경험을 들어 ‘한국사회에서 중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중도 정치세력을 지향하는 실험이라고 본다. 근거를 대라는 요구가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으로서 ‘직무형 정규직’이라는 새로운 사고를 들고 나온 점을 높을 꼽을 수 있다. 근속연수에 따라 차근차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서열형 정규직 임금 형태가 노동시장 양극화 속에서 더 이상 지속할 수 있다는 정당성을 잃었음을 에둘러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공서열형 임금 형태의 지속 불가능성은 이 임금 형태를 주축으로 하는 조직화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지만, 노동시장 양극화가 창궐해온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사태 이후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임금체계도 없이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상당수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일정한 임금 인상을 위해서라도 ‘직무형 정규직’ 도입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어서다. 아마도 조직화한 노동계 안에서는 이런 흐름마저 신자유주의니 뭐니 하는 잣대를 들이댈 테지만 말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고의 차이가 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에서 문재인과 안철수에 대해 각각 큰 정부, 작은 정부 이런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건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저성장과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지속되는 뉴노멀 상황, 그리고 일자리에 어두운 전망을 드리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의 역할과 기능은 더 커지게 돼 있다. 특히, 노동시장과 복지 등에서 그렇다. 큰 정부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문재인과 더민주당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방식으로 맞는 것 같고,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좀 다른 접근을 취하는 것 같다. 한 언론에서 문재인은 앞에서 끄는 정부, 안철수는 뒤에서 미는 정부라는 수사적 표현을 썼는데, 이런 감을 느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에게 익숙한 국가 주도, 달리 말해 관료 주도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은 이미 빛바랜 지 오랜 낡은 접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중도의 냄새가 나는 또 다른 분야는 안보다. 과거의 누적인 현재의 안보 상황은 이전과는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 북한의 핵 개발 가속화가 미국이 페리 프로세스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든 뭐든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했고, 그 공격 대상에 남한이 배제되지 않는다고 했으며, 핵 미사일은 고체연료만이 아닌 액체연료로 발사될 수 있고, 심지어 잠수함에 탑재해 발사될 수 있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남쪽에 있는 기존의 무기체계, 앞으로 개발하겠다는 어떤 무기체계로도 전력의 비대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는 그 실효성 여부를 떠나 사드를 배치하는 길을 선택했다. 중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차원에서 실효성이 없더라도 배치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주저주저 하는 문재인의 태도는 수사가 통하지 않는 외교 무대에서 우유부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드 배치가 옳은 결정이냐 여부를 떠나 이건 전통적인 야당의 태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다만, 안철수는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다. 유승민처럼 전술핵 배치를 주장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전술 핵 배치를 주장한다고 해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방향을 상실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중도로서 확실한 비전을 보여야 한다. 뜬 구름 잡는 미래비전 선포와 같은 것은 통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 해야 할 것 등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밝혀야 한다. 증세가 필요하다면, 회피하지 말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양쪽을 모두 붙잡기 위해 어정쩡하고 모호한 태도를 취할 경우 모두를 놓치기 쉽다. 현재 빠지고 있는 지지율이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보수가 수구 주변으로 다시 뭉치지 못하게 한 힘,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그것만으로도 한국사회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것이 못마땅한 홍준표는 문재인만이 아니라 안철수를 향해서도 ‘저기가 주적’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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