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알게 되었다. 1930년대 자신들이 함께 어울린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세주는 당혹스러웠다. 누군가 나타나 나의 전생을 이야기한다면 누구도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 나에게만 보이는 유령이 전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기억을 잃은 유령;
1930년대 우린 연인이었다, 80여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운명의 시간들

세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회견까지 해서 유령 작가를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영상 속에 등장하는 것은 자신이 전부다.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제 유령 작가는 존재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유진오는 정말 유령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유령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유령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진오를 피하고 싶지만 유령은 물리적으로 막을 수가 없다. 어느 곳에서나 등장하는 그는 그렇게 두려운 존재처럼 다가오기만 했다.

tvN 금토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유령 작가인 진오로 인해 설이와 관계는 더욱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유령이 한눈에 반해버린 설이. 그런 설이를 위해서라도 그는 기억을 되찾고 싶다고 했다. 유령은 80여 년 전 함께했는데 왜 자신만 마지막 기억을 잃은 채 인간이 아닌 유령이어야 했는지 알고 싶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을 위하는 세주의 모습에 너무 기쁜 설이는 단숨에 그의 집으로 향했다. 고급스러운 도시락까지 준비해 찾아갔지만 썩 반갑지가 않아 보인다.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고함은 단 둘이 있는 그 공간에서 나를 위해 쏟아내는 세주의 분노로 다가올 뿐이다.

설이에게는 진오가 보이지 않는다. 진오를 볼 수 있는 존재는 세주와 무당 왕방울의 딸 마방진이 유이하다. 엄마에 이어 신기를 내려 받아버린 방진이 볼 수 있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세주가 진오를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건 과거 그들이 함께했던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30년대 친구였고 같은 문인이었던 둘은 세상 그 누구보다 친했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함께였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태어나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들이 운명처럼 다시 만났다. 홀로 유령으로 떠돌던 진오는 그렇게 세주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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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유령과의 동거로 정신병자처럼 보이는 존재가 된 세주는 설이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런 틈을 놓치지 않은 백태민은 설이 곁으로 다가서기 위해 여념이 없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세주와 태민은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어머니의 첫사랑이었던 백도하 작가를 만나는 순간 세주의 운명은 위태로웠다.

도하의 과거를 의심하던 아내는 세주를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라 확신했다. 그렇게 세주는 부모의 사망 후 다시 새로운 가족을 찾았다고 확신했지만 그 공간이 지독한 고통을 만들어준 곳이라는 것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첫 만남에서 백도하의 부인 홍소희는 웃으며 함께 사는 것은 상관없지만 유령과 같은 존재로 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태민이 설이에게 접근한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자신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천재인 세주에 대한 분노가 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태민은 느꼈다.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절대 세주를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그렇다면 세주를 망가트리고 싶었다. 그렇게 세주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설이 곁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틈은 갈등을 만들고 그렇게 그곳을 차지하면 균열을 만들어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재능을 차지할 수 없다면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빼앗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태민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스스로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 이유가 될 수밖에는 없다.

지키지 못한 것은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로 자기합리화에 나선 것은 태민이 그만큼 망가졌다는 의미다. 절망의 끝에서 자신을 부정하고 그렇게 반박하는 것이 마지막 발악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세주가 쓴 소설 '인연'을 빼앗아 데뷔했던 태민. 그렇게 세상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자신은 결코 쓸 수 없는 글은 그렇게 발목을 잡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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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과 동거를 피하고 싶어 타자기를 파괴해 버리고 싶었던 세주는 자신은 절대 그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타자기를 드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온전히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황소 한 마리 값이었던 한글 타자기, 그걸 사주었던 유령. 그리고 그 타자기로 쓰던 소설이 바로 현재 연재되고 있는 '시카고 타자기'였다.

장난스럽게 세주의 원고를 빼앗아 읽은 설이는 모두에게 공표했다. 진정 위대한 작가가 탄생했다고 말이다. 30년대 세주는 희영이었고, 설이는 수연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어울렸고 사랑했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총으로 하고 펜으로 하던 그들은 그렇게 일제와 맞서 싸워왔다.

망각의 강을 건너다 희영과 수연은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기억의 찌꺼기를 남긴 채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왜 유령 작가만은 그럴 수 없었을까? 그 이유는 명확하게 존재할 것이다. 설이가 10살 때 했다는 "죽여서는 안 되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 속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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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제 강점기에 맞서 싸우던 이들은 왜 그렇게 서로 다르게 마주쳐야 했을까? 그 의문을 풀어가기 위한 여정은 이제 다시 시작되었다. 과거의 수연이 인정했던 걸작은 미완성인 채로 세상에 등장하지 못했다. 유령 작가는 그렇게 세주가 못다 이룬 꿈을 완성해주기 바랐다. 그래야만 자신은 왜 마지막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유령 작가는 왜 기억을 잃고 유령 작가가 되었을까? 세주와 같은 작가였지만 카르페디엠을 운영하며 그를 지원해주는 존재였다. 거대한 술집을 운영하며 얻은 수익은 독립군 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일제 강점기 독립을 위해 싸우던 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게 궁금하다. 그리고 세주와 설과 다르게 왜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했는지 그 의문을 캐고 싶다.

유령의 마지막 기억을 되찾기 위해 다시 시작된 글쓰기. 그렇게 과거와 현재는 하나가 된다. 그렇게 되찾게 되는 기억의 끝에서 그들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유령 작가가 되어 세주를 찾은 그의 기억은 결국 수연이 죽인 존재였을까?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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