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 주의 Best: 가장 리얼한 육아 다큐 <MBC 스페셜> (4월 17일 방송)

지난해 초 <SBS 스페셜- 엄마의 전쟁>을 기억하는가. 한 마디로, 일하는 엄마를 죄인으로 만든 이상한 다큐멘터리였다. 어린이집 혹은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를 굉장히 안쓰럽게 비추고,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어 하는 아내의 꿈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나왔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고스란히 여자, 아니 엄마에게 돌리는 듯했다.

MBC 스페셜 - 인구절벽 원년 보고서

지난 17일 방송된 <MBC 스페셜 - 인구절벽 원년 보고서 2부 1.17 기적의 출산율>(이하 <MBC 스페셜>)은 저출산 문제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저출산 시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를 따지지 않았다. 낳으라고 할 땐 언제고 막상 낳으니 키우기 힘든 현실을 다뤘다.

여느 다큐멘터리처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저출산 문제의 원인 및 해법을 모색하는 탁상공론식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엄마들의 목소리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다큐멘터리였다. 전문가 의견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대신, 유치원 추첨 현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 손녀의 유치원 추첨을 위해 대전에서 상경한 할머니의 모습을 담아냈다.

육아 전쟁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집-유치원 입소 전쟁을 도입부로 삼은 것 자체가, <MBC 스페셜>이 얼마나 제대로 보육현실을 인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운 좋게 유치원 입소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일명 ‘학원 돌리기’ 전쟁이 시작된다. 워킹맘의 경우, 낮에 하교하는 자녀를 픽업할 수 없기 때문에 퇴근 시간까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철저하게 스케줄을 짜야 한다.

MBC 스페셜 - 인구절벽 원년 보고서

초등학생 딸에게 “동생 낳으면 학원을 못 가”라고 말해야 하는 워킹맘의 말에는 사교육 문제가, “서울 살았으면 둘째 안 가졌을 것 같아요”라는 엄마의 말에는 주거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교육과 주거, 보육, 여성 경력단절 문제까지, 인터뷰이의 말 한마디에 모든 사회적 문제가 압축적으로 녹아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 한 편만 봐도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인터뷰이 선정부터 최종 편집까지 제작진의 고민이 잘 묻어난 방송이었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건, 엄마들의 이야기를 왜곡하지 않고 온전히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아이의 시선에서 일하는 엄마를 죄인으로 만들거나, 남편의 입장에서 일하는 아내를 가정에 소홀한 불량엄마로 만들지 않았다. 오롯이 여자의 시선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한눈을 팔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다큐멘터리였다.

이 주의 Worst: 홍준표를 <개콘>으로!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 (4월 19일 방송)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

첫 소개부터 터졌다. “서민대통령 후보 홍준표입니다”라니. 무려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인 자유한국당이 언제부터 서민을 대표하는 정당이었나.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은 ‘스탠딩 토론’이 아니라 ‘스탠딩 코미디’였다. 적어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에게는.

일단, 언행일치와 언행불일치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관객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재주가 매우 뛰어났다. 홍준표 후보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거짓말을 안 하는 겁니다. 막말이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을 안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 그래서 “서민대통령 후보 홍준표입니다” 같은 막말을 하셨던 거군요. 잠시 후 “대통령은 경제철학이나 사상, 철학을 가지고 덤벼야지, 수치 하나 가지고 따지는 건 대통령 역할이 아닙니다”라고도 말했다. 그런데 왜 문재인 후보에게 “지난번 보궐선거에서 우리 당은 23곳에 출마해서 12석을 얻어냈습니다.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1석, 저희는 3석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민주당은 몇 석 얻었습니까?”라며 굉장히 구체적인 수치를 물고 늘어지셨습니까?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

베테랑 개그맨도 해내기 어렵다는 유행어를 무려 두 개나 탄생시켰다. 유승민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원권은 정지시키면서 홍준표 후보는 정지된 당원권을 회복해 대선 출마까지 하느냐’면서 모순을 지적하자, 홍준표 후보는 이렇게 받아쳤다. “내가 꼭 이정희 보는 것 같아가지고. 주적은 저기에요”라고 유행어까지 터뜨렸다. “설거지는 여성의 몫”이라는 여성 비하 발언에 대한 변명도 어마어마했다. “내가 스트롱맨이라고 해서 한 번 세게 보이려고 한 말이에요. 실제로 집에 가면 설거지 다 해요”라고. 주적과 스트롱맨. 토론이 끝난 직후부터 한동안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차지했다. 그 어떤 개그맨이 단 두 시간 만에 이런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을까.

하다못해 안철수 후보도 청와대는 몰라도, <개그콘서트>에 입성할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어떤 후보가 어떤 질문을 해도 “평화로운 한반도와 평화 통일을 위해”, “모든 일에는 공과 과가 있습니다”, “100% 다 그대로 옳거나 100% 다 그르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같은 뜬구름 잡는 발언만 쏟아냈다. 단 두 시간 만에 뚜렷한 캐릭터가 완성됐다. 정체성 없는 신인 개그맨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다.

<개그콘서트>가 아무리 코너 회의를 며칠 밤새서 해도 이렇게 강한 캐릭터와 주옥같은 명대사가 나올 수 있을까. 이러니 <개그콘서트>가 재미없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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