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 사회부, 정치부 기자 생활을 거쳐 <뉴스타임> 앵커를 지낸 KBS 엄경철 기자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준비위원장'으로 변신했다.

16년차 중견 기자인 그가 갑작스럽게 새로운 KBS노조의 초대 위원장이라는 험난한(?) 자리를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엄경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준비위원장. ⓒ곽상아
엄 위원장은 "사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노동조합에 대해 무관심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잘 하겠지'하고 생각한 것"이라며 "그런데 작년 8월 정연주 전 사장이 축출된 이후 KBS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KBS노동조합의 사회적 책무가 얼마나 큰지 절감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KBS노조 집행부 선거때 출마 권유를 받았으나 고사했던 엄 위원장은 "KBS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하는 선후배들을 보며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초대 노조 위원장직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이제는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실력을 보여주고 신뢰를 얻겠다"

엄 위원장은 "이병순 체제에서 KBS가 많이 퇴행했고, 이를 노조가 전혀 견제하지 못했다. 조합원들 사이에 체념과 냉소의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는데, 그만큼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도 강했다"며 "공영방송 KBS가 살아나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다. 조합원들의 참여를 제도화해 '함께가는 노조'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KBS노조가 가장 주력할 것은 김인규 체제의 뉴스와 프로그램을 견제·감시하는 것.

엄 위원장은 "이병순 체제에서 현재의 정치권력이 '문제있다'고 지적한 프로그램들이 모두 폐지됐는데 그 사이에 KBS노조가 한 일이 하나도 없다.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실망과 분노가 너무 크다"며 "노보 발행, 세미나 개최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김인규 체제의 KBS에 대해 비판하고 논쟁하겠다. 실력을 보여주고 신뢰를 얻겠다"고 주장했다.

엄 위원장은 "첫 노보 특보를 준비하고 있는데, 'KBS뉴스의 NHK화'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담을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다음은 16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새로운 노조를 만들게 된 배경을 말해달라.

"이병순 체제에서 KBS가 많이 퇴행했고, 이를 노조가 전혀 견제하지 못했다. 조합원들 사이에 체념과 냉소의 기류가 강하게 형성됐는데, 그만큼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도 강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구심체가 필요한 상황이다. 준조세인 수신료를 월급으로 받고 있는데 공영방송 KBS가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구성원은 없다. 최소한의 자존심 아니겠느냐."

- 초대 위원장으로서 포부가 궁금하다.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힘든 상황이지만 이 길밖에 없다.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어떻게 화답할 것인지, 조합원들의 참여를 어떻게 제도화할지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다.

현재 KBS노조 집행부의 구심력이 너무 약하다. 이병순 체제와 총파업 투표 부결 이후 집행부가 보여줬던 행태 때문에 다수의 조합원들이 현 노조에 이미 등을 돌렸다. '불신임되면 또다른 형국이 되지 않느냐. 일단 16일 대의원대회까지는 지켜보자'는 조합원들이 굉장히 많았다.

앞으로도 현 노조 탈퇴행렬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KBS구성원들이 신중하기도 하고, 노조가 갈라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기도 한다. 이 역시 조합원들의 뜻과 의지라고 본다. 그분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함께가는 노조'를 만들어보겠다."

▲ 지난 2일, KBS노동조합의 총파업 찬반투표 개표 장면 ⓒ KBS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참여 제도화해 '함께가는 노조' 만들 것"

- 뉴스 앵커 등을 역임한 16년차 중견기자가 노조 위원장으로 변신한 배경이 궁금하다.

"사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노동조합에 대해 무관심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잘 하겠지'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작년 8월 정연주 전 사장이 축출된 이후 KBS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KBS노동조합의 사회적 책무가 얼마나 큰지 절감했다.

지난해 노조 선거에서 출마 권유를 받았는데 고사했다. KBS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하는 선후배들을 보며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초대 노조 위원장직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이제는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KBS노조는 사측과 공정방송 강화방안을 합의했다. 언론노조 KBS본부 준비위는 '낙하산 저지 투쟁'을 어떻게 할 계획인가?

"당장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의 퇴진운동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에 부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추후에 집행부를 구성한 뒤 조합원의 뜻을 물어서 결정하겠다.

현실적으로 활동가능한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경영진이 만들려는 KBS가 과연 공영방송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인지에 대한 분석과 이에 대한 비판 등 견제작업을 병행할 것이다."

- 새 노조는 무엇에 가장 주력할 계획인가?

"우리가 새 노조 출범을 결심하게 된 근본적 이유는 현재의 노조가 저널리즘적 측면에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금이나 복지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지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노보 발행, 세미나 개최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김인규 체제의 공영방송에 대해 비판하고 논쟁하겠다. 공방위 감시단을 꾸려서 지속적 문제제기를 하겠다."

"현 정부가 지적한 '문제있는' KBS프로 다 폐지…현 노조 한 게 없다"

- 현 노조에도 공방위가 있는데 어떤 차별성이 있는 것인가?

"이병순 체제에서 현 노조 집행부가 공방위를 통해 얻어낸 게 사실상 하나도 없다. '라디오PD들이 대통령 주례연설 폐지를 위해 투쟁하는 현장에 현 집행부가 동참한 것을 거의 본적이 없다'고 PD들이 이구동성으로 분노한다.

그 외에 현재의 정치권력이 '문제있다'고 지적한 KBS프로그램들이 모두 폐지됐는데 그 사이에 KBS노조가 한 일이 하나도 없다. 조합원들의 실망과 분노가 너무 크다. 우리의 싸움은 이 부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실력을 보여주고 신뢰를 얻겠다."

- 사측이 "새로운 노조는 단체교섭권이 없고, 단체협약 체결도 불가능하다"고 밝힌 만큼, 교섭 대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텐데.

"활동을 시작하려면 일단 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사측이 조합비 공제에 대해 협조 안해줄 것이다. 당장은 개별동의를 받아서 조합비를 걷고, 그 돈으로 노보를 만들고 세미나를 개최하려고 한다. 사무실도 외부에서 얻어서 조합원들이 자원봉사하는 형식으로 일을 해나갈 것이다.

나 역시 회사 일을 하면서 위원장직을 수행해야 하는지라 출발여건이 매우 열악하다.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PD저널리즘에 대한 공개적인 논쟁 필요"

▲ 엄경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준비위원장. ⓒ곽상아
- 'KBS뉴스의 NHK화'를 밝히는 등 김인규 사장이 "KBS의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앵커 중심으로 심층 뉴스를 전달하겠다며 '형식의 변화'를 말했는데, 경영진이 통제하기 쉬운 구조가 될 수 있다. 심층화 자체의 장점은 있겠지만 그 전제는 뉴스를 제작하는 기자들의 자율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할지 우려가 크다.

기계적 중립에 치우쳐, 현실 비판이나 사회적 논쟁 활성화와 같은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 지금 첫 노보 특보를 준비하고 있는데 'KBS뉴스의 NHK화'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담을 예정이다."

- 올해 초 김인규 사장은 서울대 동문회보와의 인터뷰에서 "KBS PD 300명 들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과거에 밝힌 내용이기 때문에 현재의 구상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PD저널리즘에 대한 평가작업이 선행되지 않고서, 사장의 개인적 생각에 따라 'PD가 잉여인력이기 때문에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익 추구'와 어긋난다. PD에 대해 그런식의 편견을 가진 사람이 과연 공영방송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PD저널리즘에 대한 공개적인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공익이란 사장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열린토론을 통해 수정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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