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 공식 등록 후 첫 번째 티비 토론이 19일 열렸다. 이번 토론은 특히 원고와 의자 없이 치르는 스탠딩 토론으로 미리부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스탠딩 토론이라는 특성은 전혀 보이질 않았고, 그 대신 특정후보 아니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문재인 후보에게 집중된 질문에 토론의 균형과 공정성이 완전히 무너진 최악의 토론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토론보다는 문재인 청문회 혹은 성토회라고 해야 맞을 상황이었다.

그런 심각한 불균형은 KBS의 의도대로 된 성공(?)적인 결과였을지는 모를 일이다. 사실상 KBS가 정한 규칙은 4명이 한 명에게 집중 공격을 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KBS가 그것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문재인 후보 혼자서 다른 4명의 일방적인 공격을 막아내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런 수세에 몰린 모습은 결코 토론을 잘했다고 평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화면 갈무리)

문재인 후보 입장에서 본다면 망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토론이었다. 아니 차라리 청문회라고 해도 무방할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다른 후보들의 일방적 공격에 답변만 하다가 결국은 자신이 준비해왔던 공격은 거의 써보지도 못한 불합리한 구도 속에서 그나마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위안 정도나 가능한 결과였다. 분명 문재인의 토론점수는 좋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토론점수보다 중요한 대선 영향에서는 평가를 좀 달리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일방적 모습이 역으로, 바뀐 대선구도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2강 1중 2약의 구도가 아니라 그저 1강 4약의 대결로 비쳐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문재인 후보로서는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토론이었지만 의외로 잠시 주춤했던 대세론의 부활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간다면 이번 토론에서 가장 많이 잃은 사람은 안철수 후보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토론의 현상과 효과가 다를 것이라 예측하는 이유는 이번 토론에 임하는 방송사나 후보들 모두가 알면서도 놓친 시대정신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서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이 아닌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기에 나선 모든 후보들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방어치 않은 안철수 후보 모두 소탐대실의 우를 범한 것이다. 오히려 답변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도 햇볕정책으로 공격당하는 안철수 후보를 거들고 나선 문재인 후보가 시대정신에 입각한 전술적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화면 갈무리)

이번 대선은 지난 9년의 적폐와 직접 몸으로 부딪혀 싸운 1600만의 촛불시민이 결코 놓지 않는 시대정신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폐청산이고 정권교체다. 이번 대선은 정확히 지난 이명박근혜 9년의 적폐에 대한 심판이다.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서면서 각 후보들의 슬로건이 민생이나 통합 등의 중도를 겨냥한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촛불시민은 그 시대정신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 토론에서도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 유승민, 심상정 두 후보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잃은 토론이었다. 심상정 후보는 첫 번째와 달리 이번에는 문재인 후보만을 노렸다. 그것은 문재인 후보 지지자 혹은 일반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분명 심 후보의 실책이었다. 한 번도 공식화된 적은 없지만 시민들이 민주당과 정의당을 보는 시선에는 ‘같은 편’이라는 심리가 작용한다.

심 후보 입장에서는 정의당 확장을 위해서는 그 구도를 깨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유난히 문재인 후보를 괴롭혔다. 의도와 팩트를 떠나 시청자들 보기에는 말리는 시누이였다. 또한 유승민 후보의 경우는 1차 토론에서 보였던 합리적 보수의 모습에서 색깔론을 몰아치는 수구의 모습 혹은 본색을 드러냈다. 몇 차례 홍준표 후보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주로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국보법, 송민순 회고록 관련한 내용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지난 토론에서의 좋은 평가가 지지율로 이어지지 않자 선택한 방법일 거라고는 짐작할 수는 있지만 너무 자학적 선택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2017 대선후보 KBS 초청 토론 (방송 화면 갈무리)

그렇게 문재인 후보가 모든 후보들의 집중공격을 받는 동안 그래도 2강의 한 축이면서도 무풍지대에서 두 시간을 무사히 보낸 안철수 후보는 안도의 한숨을 쉴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오히려 안철수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공격을 유도라도 했어야 했다. 그래야 누가 봐도 2강이라 공격을 받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끝까지 문재인 청문회였던 상황에서 안철수 후보에게는 2강으로서의 존재감이 상실된 모습이었다.

KBS에서 열린 두 번째 대선토론은 후보들 각자가 표를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겠지만 문재인 청문회였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일방 구도 속에서 치러졌다. 그러나 후보들의 동상이몽은 적중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차별성 없는 문재인 때리기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나저나 이럴 거면 문재인 혼자 서고 나머지 네 명은 앉는 편이 더 그림이 좋았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