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세계 최초의 신문으로 추정되는 '조보'로 보이는 문서가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1660년 독일에서 발행된 '라이프치거 차이퉁'이 세계 최초의 신문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발견된 조보는 이보다 83년 앞선 1577년 발행됐다.

▲17일자 SBS 보도 화면. (사진=SBS 보도 캡처)

18일 TBC 단독보도에 따르면 경북 영천에 위치한 용화사 주지 지봉 스님은 서지 관련 경매 사이트에서 조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봉 스님이 공개한 조보는 음력 1577년 11월 6일, 15일, 19일, 23일, 24일자 등 총 5일치 8장 분량으로 목활자 인쇄본으로 추정된다.

지봉 스님이 공개한 조보 1577년 11월 6일자에는 왕비의 안부를 묻는 내용, 경연이 열리지 않은 소식, 15일자에는 소 수백 마리가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는 소식, 23일자에는 날씨와 별자리를 기록한 내용 등이 실려있었다. 24일자에는 형조정랑 이정형 등 신하들의 인사 이동에 대한 내용도 적혀있다. 일간신문의 형식을 갖췄다는 평가다.

조보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조 10년인 1577년 음력 11월 28일 우연히 조보를 발견한 선조가 대신들 앞에서 분노하는 기록이 담겨있다. 선조는 발행 3달 만에 조보를 폐간시키고 조보를 발행한 30여 명에게 가혹한 형벌과 유배형을 내렸다.

TBC 보도에서 김영주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목판본, 활자본 그 다음에 일간 신문이 다 한국에서 최초로 발간되는 영광스러운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도 "역사적인 면에서 시대적인 것이라든지 내용이라든지 중요도가 확인될 것"이라면서 "세계 최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라는 평가가 다시 한 번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조보를 현대 개념의 신문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복 성균관대 사학과 강사는 "발견된 사료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조선시대 조보는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현대 신문 매체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강사는 "조보는 전·현직 고위관료, 사대부들에게 배포됐다"면서 "인쇄돼 발행됐기 때문에 신문 매체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곤란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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