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각종 대선 여론조사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낮게 측정되면서 불안감을 느낀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이 유 후보의 사퇴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바른정당 내부의 '유승민 흔들기'는 명분도, 시기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당 대선후보 팀킬하는 바른정당 의원들

언론보도에 따르면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서 조찬 회동을 열었다. 회동에는 당 소속 의원 33명 중 20명이 넘는 의원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자리에서 몇몇 의원들을 중심으로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과의 연대 가능성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들은 "지금이라도 후보를 내지 않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국민에 보여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고, 일부 의원들은 선거자금 마련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구 바른정당 정책위원회 의장. (연합뉴스)

16일 바른정당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종구 정책위의장은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후보에게 사퇴를 건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의장은 "사퇴 건의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총을 열어 후보 사퇴를 포함한 당의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면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국민의 요구가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종구 의장은 "정치공학적 논리가 아니라 국민의 요구를 받드는 차원에서 당 대 당 통합은 아니더라도 바른정당 의원들이 안철수 후보 지지 선언을 해야 한다"면서 "유 후보가 사퇴하지 않고 당의 후보로 남는다 해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종구 의장은 "다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의원들 간의 지지만으로 안 후보가 당선되기 어렵다"면서 "자유당 내 비박계까지 국회의원 100여 명 정도가 안 후보 지지에 나서야 국민에게 향후 국정에 대한 안정감을 줄 것이고, 그렇게 돼야 여론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자신의 발언을 '사견'이라고 전제했지만, 유승민 후보 선대위 부위원장이 이러한 발언을 했다는 점은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유승민 후보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유 후보는 "많은 분이 이번 대선 판이 결정된 것처럼 얘기하는데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최대한 추격해서 5월 9일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완주 의지를 드러냈다. 지상욱 공보단장은 16일 오후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유 후보는 국민과 당원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은 정당성 있는 바른정당의 대선후보"라면서 "어제 후보 등록을 하고 오늘 공식 선거운동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사퇴 운운하는 것은 부도덕하고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언동"이라고 이종구 의장을 비난했다.

유승민 흔들기에 바른정당 '공중분해' 될 수도

바른정당 내부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정당 대선후보를 흔드는 것은 결국 낮은 지지율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2~4%대로 집계되고 있다.

리얼미터 주간집계 기준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 추이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유 후보의 지지율은 단 한 차례도 5%를 넘지 못했다. 4월 2주차 리얼미터 주중집계(MBN·매일경제 의뢰로 10~12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525명 대상으로 무선 전화면접, 유·무선 자동응답 혼용, 응답률 9.8%, 신뢰수준 95%에서 표본오차 ±2.5%p)에서도 유 후보의 지지율은 1.7%에 그쳤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보다도 낮은 수치다.

▲13일 SBS-한국기자협회 대선TV토론에서 발언하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연합뉴스)

하지만 아직 반등의 여지는 있다. 지난 13일 열린 SBS-한국기자협회 대선TV토론에서 유승민 후보가 뛰어난 토론 능력으로 각광받았기 때문이다. 토론 직후 진행된 리얼미터 긴급여론조사(MBN·매일경제 의뢰로 14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진행, 유·무선 ARS 방식 혼용, 신뢰수준 95%에서 표본오차 ±3.1%p)에서 누가 토론을 잘했느냐고 묻는 질문에 11.8%가 유 후보를 선택했다. 지지율도 1.7%에서 2.1%p 상승한 3.8%로 집계됐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에 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유승민 후보는 TV토론 후 다음날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자리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SNS 여론도 유승민 후보에게 호의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또한 이번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바른정당이 외쳐온 '대의'를 위해서라도 유승민 후보가 대선 레이스를 완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바른정당은 '깨끗하고 따뜻한 보수'를 전면에 내걸고, 창당 당시에는 무릎까지 꿇으며 보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자당 대선후보가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내부에서부터 자당의 대선을 후보를 흔드는 모습에 보수 가치를 세우기는커녕 '철새 정당'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종구 의장의 말처럼 안철수 지지 선언이라도 하는 날에는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배신자' 프레임만 강화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바른정당 자체가 공중분해 돼 버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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