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23. 정상명 검찰총장이 퇴임했다. 2년의 임기를 고스란히 마치면서 그는 후배 검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지금 검찰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한복판에 놓여있고 온 국민이 검찰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검찰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원하는 검찰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공명정대한 자세와 진실에 대한 열정이 검찰의 첫 번째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합니다 … ‘진실 추구’만이 가장 높이 존경받는 길임을 깊이 명심하고, 진실의 칼 하나로 승부를 걸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실의 칼은 깨끗한 손에 쥐어져 있을 때에만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 동아일보 11월24일자 15면.
자신이 청춘을 바치고 열정을 쏟은 직장을 떠나며 선배가 후배들에게 보내는 일반적인 덕담이자 원칙론적 충고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그리고 세상의 이목이 온통 검찰에 쏠려 있는 지금이니 개인적으론 총장의 퇴임사가 검찰의 현실과 그에 대한 국민의 시각을 염두에 둔 절박한 충고이자 고언(苦言)으로 여겨졌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벌어지는 BBK 관련 진실공방과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놓고, 그 중심에서 칼자루를 쥔 검찰이 느낄 딜레마와 진정한 국민의 검찰로 바로서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BBK 진실공방과 삼성 비자금 사건 그리고 검찰의 ‘딜레마’

두 번의 대선에 연거푸 검찰이 진실규명의 열쇠를 쥐고 후보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의 검찰은 경제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지를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를 수사대상으로 하는 특별수사본부까지 꾸린 상태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촘촘한 이해관계와 먹이사슬로 얽힌 우리 사회에서는 검찰이 평자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욕을 들어먹기 십상이다. 과거 검찰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심받고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나름대로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거듭하여 상당한 성과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특히 참여정부 아래에서는 더욱 그렇다. 언필칭 가장 힘센 기관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대체한 경제권력으로 부터는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비난어린 시선 외에, 조직 자체의 이해득실을 살피는 정치적 고려를 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쪽으로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이익집단으로 고착화 되고 있다는 일각의 깊은 우려에도 답해야 하는 2중의 고민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국민들이 검찰에 대하여 갖는 인상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약자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거악에 대하여 불굴의 투지로 돌진하는 정의의 수호자로 보는 시각보다, 뭔가 두렵고 비판하기 어려운, 힘센 권력기관으로 생각하는 편이 우세한 것이다. 이는 검찰의 원죄와도 같은 것으로 오늘날 가장 막강한 국가기관의 하나가 된 입장에서 가장 올바른 검찰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할 때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법무부 청사 2층에 걸려 있다는“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현판 속의 글귀를 ‘검찰 = 나라’라는 등식으로 이해하며 목에 힘을 주기 보다는, ‘바로 서라’는 주문에 몸가짐을 추스릴 때이다.

특정 정치세력으로부터 원치 않는 수사결과를 발표할 경우 ‘민란’에 직면할 것이라는 협박을 당하고, 삼성 비자금 특검 문제에 대하여 국가신인도와 기업신뢰도의 타격을 걱정하는 장관의 지휘아래 놓여 있다는 것도 검찰의 주위에 엄존하는 현실이다.

상당수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선후보에 대한 선호나 정치적 입장에 합치하는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 또한 검찰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즉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나 후보에게 불리한 결과는 곧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이분법적 사고와 그에 따른 피아식별 구도에 의해, 휴일도 반납한 채 고생 끝에 내 놓은 수사결과가 격렬한 비난에 직면하게 될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검찰, 정치적 고려나 이해득실에 따른 ‘계산’은 곤란

▲ 한국일보 11월24일자 3면.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검찰이 진실에 대한 탐구를 뒷전에 두고 정치적 고려나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을 하여서는 안된다는 점은 분명한 진리에 해당한다. 정치세력이 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하고 그 이해관계가 아무리 민감하더라도 결국 진실의 힘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여타의 사안에서 검찰이 보인 모습은 이러한 기대에 미흡하였던 적이 많았다. 어정쩡한 양비론 뒤에 숨거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도저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식의 말장난으로 일관하며, 진실을 규명하여 논란을 마무리하기 보다는 오히려 의혹과 논란을 증폭시킨 적이 많았고, 힘센 집단의 압력이나 검찰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진실을 왜곡하고 수사를 축소한다는 항의를 받기도 하였던 적이 다반사였기에 그렇다.

검찰이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진실을 명백히 규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그간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 및 검사동일체원칙 등을 편의적으로 활용하며 외부의 충고와 비판을 외면하고 조직의 이익을 위해 애써 진실을 외면한 적은 없었는지, 무리한 수사를 통해 검찰의 뜻에 거슬리는 반대자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는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도 검사의 길을 가고 싶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말처럼 정의를 추구하고 악을 응징하는 검사의 길을 택한 것을 평생의 명예와 자부심으로 알고, 묵묵히 자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검사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 한편에서는 일부 정치검사들이 곧은 검사의 기개를 꺾고 권력에 굴종하거나 결탁하여 자신의 영달을 도모하던 병폐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떨쳐내야 한다는 기대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정치권력을 골치 아프게 하는 민감한 수사를 고집하면 다음 날 수사서류가 캐비닛에서 사라졌다는 김 변호사의 증언과, 언론에도 보도된바 있는 검찰 내부의 스폰서 문화 등에 대한 어두운 기억이 완전히 불식되지 않았기에 검찰을 바라보는 심사는 복잡하다.

최근 개인적으로 만난 검사들 가운데엔 대선국면에서 벌어지는 BBK에 대한 현재의 수사가 선거 전에 결론을 내지 않고, 수사의 어려움을 과장하거나 진실규명을 위한 신중함을 가장한 시간끌기로 일관하다 선거 후 흐지부지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도 있었다. 즉, 국가의 장래나 사회정의의 구현을 위한 사명감 보다 애써 얻어낸 자리에 대한 임기보장이나 승진을 더 중시하는 검찰 수뇌부의 일부 인사들이 결코 유력한 대선후보들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을 것이며, 결국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범위 안에 드는 수사 결과를 유도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혹시라도 대통령이 될 사람을 건드려 미운털이 박히면,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 자연스럽게 인사 대상이 되어 한직으로 밀리거나 실업자가 될 수 있으므로 아예 권력자가 확실해지기 전엔 진실을 감추어두는 게 낫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진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또한 삼성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의 수장이 될 사람이 의혹의 핵심에 서 있는 현실을 개탄하기도 하였다. 인사청문회에 임하여 뇌물 전달자로 의심받는 동문과 함께 운동한 적은 전혀 없다고 당당하게 의혹을 반박하지는 못하고, 그저 피의자가 즐겨 사용하던 “기억이 안난다”는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하였던 점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일선 검사들의 대부분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검찰을 정화하고, 국민들 앞에 한점 의혹없이 떳떳한 직무 수행을 할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결국 퇴임하는 검찰총장도 이러한 우려와 속내를 알고, 후배들에게 “진실 추구만이 가장 높이 존경받는 길”이 될 것이니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는 동시에 청렴과 절제를 당부하지는 않았을까.

특별검사의 상설화·제도화 방안도 진지하게 논의 검토해야

삼성 비자금 사건 또한 검찰 스스로가 수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볼 때, 특검법의 통과를 바라보는 검찰의 심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검찰 내 특검이랄 수 있는 특별수사본부를 매머드급으로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하려는 마당에 검찰이 아닌 다른 수사 주체에 사건을 맡긴다고 하니 착잡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여겨진다. 특검이 가동되려면 아직도 꽤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 검찰의 특별수사본부는 스스로의 다짐처럼 모든 노력을 기울여 철저하고 당당하게 수사한 뒤 특별검사에게 관련 자료를 넘겨주면 된다. 그래서 특검이 새로이 손댈 곳이 별로 없을 만큼 충실한 수사가 이뤄진 사실을 확인한다면, 검찰은 그것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검찰에 지금 중요한 것은 정상명 검찰총장의 말처럼 “진실의 칼 하나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 경향신문 11월24일자 사설.
최근의 현안들을 떠나서도 과연 검찰만이 “자신들의 계좌를 보여주지 않는 유일한 조직”으로 남아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주의의 권한을 누려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그간 경험한 바로는 검찰의 원죄와 본질적 한계가 특검을 도입한 결과 상당부분 개선되고, 특검의 수사 또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매번 이루어지는 이전투구식 정치공방에 특별검사의 운명을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이를 상설화하고 제도화하는 방안에 대하여도 이제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것이다.

공수처인지 상설특검인지 하는 형식적 문제보다 부패척결이라는 실질적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사회적 합의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검찰의 진솔하고 성의 있는 자기고백과 반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기득권에 집착하는 검찰의 교묘한 방해로 인해 한때 매우 활발히 진행되던 고위공직자 부패 수사 전담기구에 대한 논의가 슬그머니 실종되었다는 의구심이 아직 많은 이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잘 할테니 우리를 믿어달라는 말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잘못할 수 있다는 말로 치환되는 것을 수도 없이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리의혹을 받은 다른 국가기관에서처럼, 무슨 일만 터지면 구성원들을 집합시켜 어깨띠를 두른채 어색한 구호를 제창하며 생경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진정한 의식개혁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질 수는 없다. 건강한 조직은 언제나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다는 투명성에 대한 자신감으로만 유지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으려면 검찰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 들이대야

검찰 특유의 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으려면, 먼저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진솔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가 진정 정의로운 검찰의 모습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을 비판하는 것이 개인적 불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기에 입을 다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검찰의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검찰이 스스로 권력기관의 자리에서 내려와 정의로운 봉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권하는 이유이다. 국가기관의 진정한 권위는 스스로 만들고 지키려 몸부림칠 때 확고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진정한 신뢰 속에서만 싹트고 뿌리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이 검찰에 거는 기대는 수사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확보함으로써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국민의 검찰’로 자리매김하라는 것이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적 질서와 원칙을 좇아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에 힘을 쏟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난관을 돌파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점도 수많은 성현들이 역설하는 진리이다. 상황논리에 빠져 좌고우면하는 검찰은 파사현정(破邪顯正)은 커녕, 결국 ‘정치 권력의 시녀’로 되거나 스스로 정치집단화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과거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지 않겠는가. 결국 검찰이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난제에 대한 가장 올바른 해법은, 총장의 퇴임사 말미에서 언급된 것처럼 “진실의 빛을 꺼내 세상을 밝히는 것이 검찰의 사명”이라는 점을 목숨 걸고 지켜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아내와 함께 네 아이를 키우며 시골 마을에 깃들어 있다. 가진 능력이라곤 번식력밖에 없다는 점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얼치기 법조인이기도 하다. 짧은 공직생활 중 여러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실과 정의의 소중함을 절감하였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으로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것을 목도하기도 하였다.

조직이라는 이름과 명분 아래 수 많은 사람들의 인격이 훼손되는 것에 분노하며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더욱 과격해지는 자아를 다독이기도 한다. 맑은 세상이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중받고 부패의 악취가 말끔히 사라진 세상을 선물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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