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특보 출신 김인규 KBS 사장에 대해 KBS노동조합이 "해고와 구속을 결의하며 퇴진투쟁을 가열차게 진행할 것"이라고 선언했을 당시 시민사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어느 시민단체도 직접적으로 연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노조의 낙하산 저지 투쟁에 시민단체가 이토록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연주 KBS사장 해임→관제사장인 이병순 사장 선임' 과정과 이후 미디어악법 저지 국면에서 KBS노조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최영묵 교수는 "현 KBS노조는 노사 문제 외에 공영방송 수호를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KBS노조 조합원 200여명은 김인규 KBS사장의 출근 첫날인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MB특보 김인규는 물러나라"고 외쳤다. ⓒ곽상아
한 언론계 인사는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언론인으로서의 소명 의식이 쇠퇴했다.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많이 사라졌다"며 "특히 KBS노조는 공영방송으로서의 가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막강한 권력에 중독돼 마비현상이 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KBS노조는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를 한 것인데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새로운 KBS노조 설립에 대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누가 사장이 되는지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부에서 강력한 견제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스>는 새로운 KBS노조 출범을 앞두고 과거 KBS노조가 돌아온 길을 짚어봤다. 각 언론사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했던 전현직 중견언론인들의 모임인 '새언론포럼'이 펴낸 '현장기록, 방송노조 민주화운동 20년'을 참고했다.

◇1988년 5월 28일, KBS노조 출범

민주화열기가 뜨거웠던 1987년. MBC가 방송사 가운데 최초로 노조를 결성하자 KBS도 이에 자극받아 1988년 5월 28일 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과거 KBS가 박정희의 유신 독재정권을 옹호하고,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하는 등 독재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해왔다는 반성에 따른 것이다.

직종별 갈등, 전국에 분산된 5천여명의 사원, 오랜 세월동안 길들여진 관영방송의 무기력한 분위기 등 악조건 속에서 출범된 KBS노동조합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구태의연한 타성과 관행, 그리고 무사안일의 껍질을 깨고 새로운 방송문화창조의 주역임을 자임한다"고 밝혔다.

◇1990년 4월, 서기원 사장 퇴진 투쟁

1990년 공보처가 당시 KBS 사장이었던 서영훈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퇴를 종용한 이후, 서 사장이 사퇴하고 후임으로 청와대 대변인, 국무총리 공보비서관 등을 역임한 친정부적 인물인 서기원씨가 사장으로 선임됐다. 이에 KBS노조는 서씨를 '관제사장'으로 규정하고 36일간 퇴진투쟁을 진행했다.

경찰병력이 KBS내에 투입돼 노조원이 100명 넘게 연행되고 이중 10여명이 구속기소된 이 운동은 결국 서 사장의 퇴진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으나 정권의 폭력적인 방송장악에 타격을 주고 침체된 민주화운동에 국면전환의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 각계 인사 70여명으로 구성된 'KBS지키기 시민모임'이 꾸려지는 등 평범한 시민과 학생들이 KBS노조의 투쟁을 지지하기도 했다.

▲ 2008년 8월 27일 오전 KBS본관 앞에서 이병순 KBS 사장(원 안)이 취임식장에 가기 위해 청원경찰을 동원해 'KBS사원행동'의 출근 저지를 뚫고 본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KBS노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디어스
당시 관제사장이 선임된 과정은 지난해 정연주 KBS사장이 해임되고 이병순씨가 사장으로 선임된 것과 닮은꼴이지만 18년이 지난 2008년, KBS노조는 이병순 당시 사장에 대해 "낙하산 사장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인 바 있다.

◇2003년 3월, 서동구 사장 퇴진 투쟁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인 서동구씨가 KBS 사장으로 선임된 2003년. KBS노조는 출근저지에 이어 총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당시 서동구 사장은 찬반 투표가 끝나기도 전에 전격적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언론계는 그의 갑작스런 사표 제출을 놓고 △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의 거센 반발 △파업찬반투표로까지 심화된 노사갈등 △강제 출근 이후 악화된 사내외 여론 등에 서 사장이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후임 사장으로는 KBS노조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KBS 사장 공동추천위원회'가 추천한 3인 중 한명이었던 정연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이 선임됐다.

서동구 퇴진 투쟁의 승리는 △KBS역사상 처음으로 정치권력과의 연결고리 일정부분 단절 △노조와 시민단체가 KBS경영과 진로에 참여하는 계기 마련 △'KBS사장추천위원회' 등으로 KBS사장 선임이 구성원, 시청자단체, 범시민사회의 영역으로 확장 △언론노조 운동의 자신감 회복 등이 성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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