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북풍인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선제타격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가운데 미 항모가 서해에 등장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미 구체적인 공습 날짜까지 언급된 증권가 정보지가 등장했고 이에 대해 정부가 ‘가짜 뉴스’라는 이례적 발표를 하기도 했으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위기감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보수 세력이다. 국정원 출신으로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12일 미 항공모함 칼빈슨 호의 등장에 대해 “북한이 15일 전후에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하면 바로 격추, 격파하겠다는 의미”라면서 “유사시 선제타격도 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철우 의원은 “앞으로 만약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과의 정보 차단이 우려된다”면서 “미국은 벌써 우리나라를 멀리 하고 있다. 정보가 북한으로 갈까봐 우려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선제타격’의 가능성을 상당히 적극적으로 시사한 것이지만, 전문가들은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별로 크게 보지 않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강행하면 중국의 관계악화와 확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모험을 불사하는 무모함과 변덕이 뒤섞인 개인 성향 때문이다.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 도중 시리아에 대한 공습을 승인한 것에서도 드러났다. 시리아 공습의 명분은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는데, 북한 역시 김정남을 암살하면서 화학무기인 VX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면전에 놓고 시리아를 폭격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이 역할을 해줄 것을 강요하는 제스추어로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11일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이 돕기로 결심한다면 정말 훌륭한 일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도움 없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해 이런 해석을 뒷받침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성향 문제를 넘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차원에서 지금껏 언급해온 비개입주의에서 ‘전통적인’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무역정책과 국방정책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일방주의와 비개입주의가 언제나 유지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미국과의 무역 거래가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뉘앙스를 적극적으로 주고 있는 측면도 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의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정부의 행동에 따라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일본 정부에 통보했다. 일본은 이를 자신들의 무장 강화를 위한 명분으로 활용하면서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이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는 가운데 북한에 대한 뾰족한 대응책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뉴욕타임스의 보도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파탄을 무릅쓰고 세컨더리 보이콧 등 일방적 대북제재를 가하는 게 쉽지 않고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은 앞서 언급한 군사적 이유 때문에 여전히 주요한 선택지로 고려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일 오전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 70)가 부산항을 출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그럼에도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에 대한 시험 발사나 6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경우이다. 미국이 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최대치는 북한이 오는 15일 김일성의 생일을 맞아 미사일 발사 실험 등을 감행할 경우 이를 요격하는 것이다. 실제로 칼빈슨 항모전단에는 SM-3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는 순양함 등이 포함돼 있다. SM-3 미사일은 사드(THAAD)와 함께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어체계로 알려져 있다.

만일 이러한 일이 현실이 되면 국내 대권후보들의 입장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SM-3가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모습이 실제 중계되면 전쟁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국민 입장에선 사드 배치의 당위를 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강’으로 평가되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이미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북한이 6차 핵실험 등을 강행할 경우 사드 배치를 사실상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더 나아가 문재인 후보는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총을 들고 나가 싸우겠다고도 했다. ‘안보 정책이 불안한 후보’라는 보수세력의 공세를 정면돌파 하기 위한 행보로 비친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대권후보들의 입장변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특히 국가 안보에 대한 입장 변화는 보수정권 시절의 대북정책에 대한 면밀한 평가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과거 정권들의 정책적 파탄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보수언론인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분위기를 보면 이런 흐름이 명확하다. 조선일보는 12일 ‘선우정 칼럼’을 통해 “어느 대선 후보는 북폭설과 관련해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는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정상적 타협이 물 건너가고 굴종만 남는다”면서 “조롱을 당하는 처지이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도 평가할 만한 업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군사 충돌 위기에 굳건히 대처해 지뢰 만행에 대한 북의 유감 표명을 받아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선제타격은 결코 안 된다’는 메시지는 미국의 대북 억제전략에 김을 빼는 것인 데다 북한도 잘못된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옛 로마 격언을 어느 때보다 무겁게 되새겨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적 주요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대선 기간임에도 오직 미국의 대북 레버리지 강화를 위해 ‘전쟁불용’이란 원칙을 말하지도 말라는 거다.

북한에 대한 통제 수단이 단 하나도 남지 않는 상태에 이른 것은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시작된 일방적 대북정책의 책임도 크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이 그 점은 말하지 않고 오로지 전쟁 위기만을 고조시키는 것은 결국 대선 후보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적으로 견인하기 위함이 아닌가 의심된다. 더 문제인 것은 ‘양강’에 속하는 두 후보들이 이런 상황에서 속수무책이라는 거다. 유권자들이 상황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언론이 정도를 지켜야 할 이유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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