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여론조사라는 ‘유령’이 대선 선거판을 혼탁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는 선거 때면 늘 논란거리고. 선거가 끝나고 보면 늘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또 선거가 다가오면 ‘각설이’가 되어 선량한 시민을 유혹합니다.

거짓말의 ‘끝판왕', 여론조사

여론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괴벨스는 후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찌되었건 가장 완벽하게 여론 ‘조작’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영국 수상을 지낸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는 이 세상에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여론조사입니다. 거짓말은 그냥 그럴듯한 말이고 새빨간 거짓말은 날조된 말입니다. 여론조사는 조작된 ‘허구’를 사람들이 믿게 하기 위해 온갖 단편 사실들로 포장한 ‘정보’라는 거죠. 그래서 거짓말의 ‘끝판왕’입니다. 통상 거짓말을 하면 사회적으로 응징됩니다. 하지만 언론사가 조사라는 이름으로 ‘조작’을 일삼으며 허위를 유포해도 문제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통계적 오류라거나 여론조사회사의 실수로 떠넘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의수준이니 오차범위니 하는 자체 면피수단도 있습니다.

여론조사는 전체(모집단)에서 일부(표본)를 뽑아 전체 의견을 추정/해석하는 일입니다. 아주 단순한 일이지만 수십, 수백 가지의 오류가능성이 있습니다. 크게 조사방법, 응답자의 성향, 조사자의 의도가 문제가 됩니다. 달리 말하면 표본이 ‘작위’로 추출되고, 사람들은 진심을 말하지 않으며 조사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작전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론조사는 ‘조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세 가지 혹은 ‘쓰리가지’ 오류

먼저, 조사방법 문제입니다. 이번 대선의 전국의 유권자 수는 3,765만 명입니다. 언론사들은 1~2천명 내외를 조사하여 결과를 발표합니다. 2-3만 명 중 한 명쯤 뽑아서 조사하는 셈입니다. 일단 샘플수가 너무 적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전체의 시군구는 200곳 정도입니다. 여기에 남녀(2)X세대(5)X계층(3)을 고려하면, 최소 표본수가 6,000명은 되어야 합니다. 그래 봐야 한 도시에서 30명 조사하는 셈입니다.(통계학자들은 1000샘플만 넘으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표본 수를 늘리려면 돈과 시간이 더 들어가겠죠. 이러니 오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표본 추출방법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표본추출의 임의성에 있습니다. 모든 유권자가 샘플로 추출될 확률이 동일해야 한다는 거죠. 대면 조사해야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휴대전화, 유선전화를 이용합니다. 모두 한계가 많아 섞어서 합니다. 부패한 고기를 섞어서 요리한다고 신선한 음식이 될 수 있겠습니까? 가령 유선전화의 경우 조사시간에 집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으로 한정됩니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주부나 노년층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특정한 정치성향을 갖습니다. 태극기 집회나 노인정에 가서 조사하는 셈입니다. 유권자를 대표할 수 없겠죠. 응답률도 3%-20% 내외입니다. 십중팔구는 답변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여론조사 최첨단국입니다. 2016년 11월 8일 대선 직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최소 4%에서 11%, 평균 7.5%를 앞섰습니다. 이를 근거로 한 승리확률도 71%에 달했습니다. 결과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

여론조사회사의 전화나 ‘보이스피싱’ 전화나 바쁜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프라이버시 침해를 싫어합니다. 게다가 전화나 이메일이 언제라도 도청, 감청될 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레드컴플렉스도 건재합니다. 수구 언론사도 짱짱합니다.

세계여론조사학회 회장을 지낸 바 있는 독일의 언론학자 노엘레 노이만(Noelle-Neumann, 1916-2010)은 여론조사와 관련하여 ‘침묵의 소용돌이 이론’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수 의견’과 자신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침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대중매체에서 주장하는 ‘다수 의견’에 영향을 받습니다. 왕따 공포증에는 애 어른이 없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소수후보의 지지율은 더 낮게 나오고 미디어가 띄우는 후보의 지지율은 실제보다 더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론조사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모든 조사회사/언론사는 ‘저비용’으로 남보다 먼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싶어 합니다. 표본수 확대, 표본의 대표성강화, 응답률 제고, 과학적 보정 등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합니다. 언론사에 상대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조사회사들은 ‘주어진 비용’(혹은 스스로 조달한 비용)과 시간 범위에서 ‘가능한’ 여론을 ‘창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레기 고객이 왕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언론사가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해 ‘성향’과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의뢰자/언론사는 자신의 ‘요망사항’을 더 잘 반영해주는 조사회사와 손을 잡습니다. ‘여론조사에 작전세력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여론조사 결과는 언론사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기도 합니다. 그 상품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언론사니까 비용은 당연히 언론사에서 부담해야 합니다. 하지만 누가 부담하는 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2016년 4월 총선 관련 여론조사 보도 장면(KBS 뉴스9 화면 캡처)

언론사들이 관심이 많고, 개입하려하고,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성향이 높을수록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떨어집니다. 이는 과거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세균-오세훈 후보가 대결한 지난 2016년 4월 13일 총선 종로구의 경우입니다. 여권 대권주자 오세훈 후보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보겠습니다.

-3월20일 중앙일보, 오세훈 45.1% / 정세균 32.6%(12.5% 오세훈 승)
-3월23일 KBS/연합, 오세훈 45.8% / 정세균 28.5%(17.3% 오세훈 승)
-3월29일 SBS, 오세훈 48.6% / 정세균 37.3%(11.3% 오세훈 승)
-4월13일 투표결과 정세균 52.6% / 오세훈 39.7%(12.9% 정세균 승)

여론조사결과와 크게 30.1%까지 차이가 납니다. 기레기/언론의 ‘장난’ 이외에 대체 무슨 논리로 어떤 알고리듬으로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사례입니다. 박원순 후보와 나경원 후보가 격돌한 지난 2011년 10월 26일 있었던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입니다.

그 해 박원순씨가 야권통합 후보가 된 이후 9월말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는 7~18% 앞섭니다. 그런데, 10월 13일 서울신문조사에서 갑자기 나후보가 3.1% 앞선 것으로 나옵니다. TV토론 효과니 ‘초박빙’이니 하면서 언론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합니다. 이후 여론조사보도 금지기간인 전날인 10월 20일까지 8개 언론사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두 후보가 각각 네 곳 조사에서 우세했고, 두 후보의 지지율 평균이 놀랍게도 42.625%를 동일했습니다.

결과는 박원순 53.4% 나경원 46.2%. 7.1% 차 박원순 승이었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부재자투표에서는 나 후보가 12%나 앞섰다는 겁니다. 감안해보면 9월까지 각 조사기관에서 ‘자유롭게’ ‘작전없이’ 조사 발표했던 박 후보 평균지지율이 실제득표율이었습니다. 2017년 대선 여론조사 판도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장미대선 文-安 양강구도(PG) (사진=연합뉴스)

없는 ‘강시’도 만든다(三人成虎)

여론조사는 이렇듯 별 신빙성 없는 것이지만 투표에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고 잔 매에 골병 든다고 했습니다. 세 사람이 외쳐대면 없는 호랑이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세역전’, ‘문 확장력의 한계’, ‘안 신드롬’, ‘문 왜 정체하나’ 등등. 엉터리 조사로 만든 유령과 도깨비가 알고리듬의 주례로 결혼해서 ‘강시’를 낳았는데, 그 강시가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는 셈입니다. 이 신문 저 방송, 기레기와 폴리널리스트가 이구동성으로 ‘강시’를 외쳐대면 관계자뿐만 아니라 유권자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기레기를 앞세운 기득권 세력이 노리는 바일 겁니다.

여론조사의 이런 위험성, ‘조작가능성’ 때문에 공직선거법에서 일정하게 규제하고 있기도 합니다. 공직선거법 108조 5항을 보면 조사의뢰자와 조사기관, 피조사자 선정방법, 표본 크기, 조사지역ㆍ일시ㆍ방법, 표본오차율, 응답률, 질문내용, 표본 오차 보정 방법 등을 함께 공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습니다.(공직선거법 256조)

단지 게시 의무만 적시하고 있는 관계로 규정 위반으로 처벌받은 조사 회사나 언론사는 별로 없습니다. 처벌도 너무 약합니다. 의도적으로(혹은 의도가 없어도 태만한 일처리로) 선거 여론조사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것은 중대범죄입니다.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내란죄나 ‘민심혹란죄’에 준하여 강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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