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갈등에는 선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결과적으로 책임이 따른다. 갈등과 선택이 이어지는 상황은 드라마 속의 모습만은 아니다. 우리 역시 매일 수없이 많은 갈등들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고는 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신이나 다름없는 정의, 확신으로 바꾸기 위한 과정은 딜레마의 연속

컨테이너 박스가 가득한 부둣가에서 피 흘리는 동준의 신음 소리를 막기 위해 입막음 키스를 한 영주. 백상구 일당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둘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순간 싸이렌이 울렸고, 적들은 사라졌다. 영주를 사랑해서 더욱 분노했던 현수는 최소한 적들을 막아주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동준을 살리고 싶지는 않았다.

동준은 최고의 의사인 아버지의 집도로 살아났다. 자칫 죽을 수도 있었지만 동준은 살아났다. 일환은 동준이 정일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분노는 딸 수연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들을 자신이 시켰다고 지시하는 수연의 행동에 일환은 결국 백상구를 잡는 것을 포기했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

비밀문서인 '방탄복 성능 심사표' 보고서는 일환이 비서인 태곤을 시켜 숨진 기자에게 넘긴 것이었다. 보국산업을 몰락하게 만들 아킬레스건인 이 보고서는 그렇게 신창호에게 건네질 예정이었다. 그 문서를 찾기 위해 정일은 백상구를 동원했고, 의도하지 않았던 살인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뒤늦게 현장에 온 수연은 정일이 살인을 했다고 오해했고, 그렇게 얽힌 사건은 모두를 피해갈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30년 전부터 연결되어 왔던 일환과 유택, 이들은 함께하지 말았어야 했다. 80년 광주의 봄을 군홧발과 총칼로 짓밟았던 신군부와 가까웠던 유택은 그렇게 방산 산업을 시작했고, 변호사가 된 일환에게 법률 사업을 제안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일환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맺은 그들의 악연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무기 브로커로 시작해 방산산업을 이끄는 거두로 성장했다. 황무지를 개간한 할아버지의 땅과 아버지가 일군 염전 모두 빼앗겼던 일환은 유택을 믿을 수 없었다.

안전장치를 위해 일환은 계약서를 만들었다. 절대 자신이 가진 태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후 균형추가 바뀌면서 그 계약서가 문제가 되었다. 태백과 보국을 분리해서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확정하려는 일환과 달리, 유택은 아들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제안을 한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

아들 정일에게 살인죄를 피하게 해준다면 뭐든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신창호가 수술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요구한다.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사라진다면 범죄 사실도 소명할 수 없다. 일환은 그렇게 유택의 제안에 응한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만 얻는다면 신창호의 죽음은 이상할 것이 없으니 말이다.

국내 최고라는 동준의 아버지 이호범은 일환의 제안을 받는다. 그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는 인간이다. 그는 수술실에서 테이블 데스를 하면 그만이다. 비록 명성에는 누가 될 수 있지만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의사로서 양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모두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뛰는 상황에서 영주와 동준은 달랐다. 여전히 뜨거운 그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앞서 있었다. 자신의 안위를 챙기지 않은 영주. 자신이 쌓은 명성과 앞으로 주어질 미래에 집착이 강했던 동준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영주를 돕고 그의 아버지를 살리고 싶었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

자신이 만든 이 지독한 악연을 끊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동준의 바람은 이뤄질 수 없었다. 선택의 순간 호범에게 동준은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 아들이 태백의 주인이 되어야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주어질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것은 단순했다.

일환과 유택의 대립 상황에서 신창호의 삶과 죽음은 모두에게 중요했다. 아버지들에게 버림받은 정일과 수연에게도 그리고 동준에게도 신창호라는 존재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동준은 비밀문서만 폐기한다면 그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영주는 비밀문서를 태워버렸다.

결정적인 증거가 사라졌지만 신창호는 수술을 받지 못했다. 수술실에서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암이 온 장기로 퍼져 6개월 이상을 살기 어렵다는 판결이 나왔다. 모두가 사는, 하지만 영주와 가족들에게만 답답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일환과 유택이 원했던 결과, 그리고 호범의 셈법에 일치하는 결과인 셈이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

중반으로 넘어가며 이야기의 흐름은 급격하게 치닫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목표이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자신을 위해 뛰는 그들은 결국 수없이 펼쳐지는 딜레마 속에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미신과 같은 정의를 되찾을 수 있을까? 법비들이 판치는 현실에서 그들은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거악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사랑으로 부모 세대와 대립각을 세우게 된 정일과 수연 역시 탐욕스럽지만 그들의 사랑 자체를 부정당할 수는 없다.

태백이라는 거대한 로펌에서 동준과 영주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형 집행정지로 수술을 받은 신창호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갈 수밖에는 없다. 결정적 증거가 사라진 상황에서 과연 영주는 그들을 압박할 새로운 증거들을 찾을 수 있을까?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동준은 과연 자신을 위한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태백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정의라는 길을 걸을지 다음 전개가 궁금해진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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