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영애의 젊었을 적의 연기는 알지 못한다.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김영애라는 배우를 기억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 드라마 <모래시계> 때문이었다. 태수의 엄마로 출연했고, 그 역할은 크지 않았지만 정말 강렬한 인상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모래시계>의 명장면으로 꼽는 것들보다 내게는 그 장면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슬프고 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앞뒤 상황은 지워졌고, 오로지 기억하는 것은 낡은 기차역에서 곱게 차려 입은 모습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이었다. 그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의 그 처연한 표정은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연기가 아닌 그 표정을 다시 보았다. 드라마를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마르고 창백한 눈빛에서 말이다.

MBC 드라마 <로열 패밀리>

그리고 다시 많은 사람들이 김영애를 기억하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두 인물의 모습일 것이다. 하나는 2011년의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의 회장님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13년 영화 <변호인>에서의 국밥집 엄마의 모습일 것이다. 기억에 남는 대사도 참 다르다. “저거 치워”와 “변호사님아 참 고맙데이” 개인적으로는 과거 <모래시계>의 태수엄마로부터 이어지는 <변호인>의 엄마가 더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김영애의 엄마는 바로 영화 <애자>의 엄마 영희일 것이다. 최근 드라마 <닥터스>의 할머니와도 비슷한 엄마 영희. 그러나 한결같이 김영애의 ‘엄마’는 참 슬프다. 그러더니 이렇게 슬프게 가버렸다.

영화 <변호인> 스틸 이미지

그러고 보면 내가 기억하고, 좋아하는 김영애의 모습은 ‘엄마’인 것이 분명하다. 엄마 연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대상은 김혜자가 되겠지만 김영애는 김혜자와는 또 다른 색깔의 엄마를 보여주었다. 그럴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전원일기>와 <변호인>. 너무도 다른 배경 속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그 상황에 맞게 변화하거나 발전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고, 김혜자와 김영애는 각자의 상황의 엄마에 가장 적합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랬던 김영애였기에 앞으로 엄마라는 존재를 더욱 깊게, 더욱 간절하게 연기해낼 수 있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에게 운명은 잔혹했다. 백세시대라는데, 그는 고작 6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이번에도 암이다. 2012년 진단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김영애는 연기에 몰두를 했다.

그의 유작이 된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출연을 강행했고, 그는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고 한다. 시쳇말로 아파서 암이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병세가 깊어진 상황에서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을 것인데도 그것을 참고 연기를 해냈다는 것에는 어떤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어쩌면 잊혀진 단어가 될지 모르겠지만 ‘연기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연기를 내놓기 위해 그는 그의 아까운 생명을 조금씩 덜어내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이렇게 슬퍼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죽음이 실감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달쯤 또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떡 하니 등장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슬픔을 감춘 억척스러운 엄마를 연기할 것만 같다.

차인표가 고 김영애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했다. (차인표 제공 연합뉴스 영상 갈무리)

1951년 4월에 와서 2017년 4월에 떠난 배우 김영애. 자신은 드라마를 끝내고 “다 정리해서 홀가분하다”고 했다지만 그녀와의 이별을 준비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팬들은 깊은 우울에 빠질 수밖에는 없다. 홀가분하기는커녕 미련과 그리움으로 떠난 그를 붙잡고 싶을 뿐이다. 잘 가라는 인사도 아직은 차마 할 수 없는 이별일 따름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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