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경유하면서 대선 구도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돼 있는데 반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명백히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병의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나오듯, 지금의 국면도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 상황이 1차적으로 보수 후보가 약체라는 점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에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경남지사는 안하무인의 태도로 일관하며 새로운 ‘국민적 비호감’으로 등극했다. 게다가 ‘경남도지사 꼼수 사퇴’ 논란 까지 벌어진 것은 지지율이 10%를 넘지 못하는 정체현상을 일으키는 근거 중 하나가 됐다. 행위 자체를 합리적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데다 선거법 위반 논란 덕에 발언 통로가 봉쇄된 것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경우 개인적 경쟁력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가 이번 대선에서 보수세력의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저조한 지지율은 ‘배신자’ 프레임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가 높은 지지율을 받았다면 승리를 위한 ‘용서론’에 힘이 실렸을 것이다.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는 ‘배신자’의 자리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다.

보수 후보인 두 사람이 시원찮은 전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보수적 유권자들은 안철수 후보에게 전략적 투표를 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 걸로 분석된다. 실제 여론조사 수치를 뜯어보면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은 과거 보수 정권의 탄생에 기여하는 투표를 했던 유권자들이 상당 부분 포함돼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안철수 후보를 향한 지지세가 필연적으로 조정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대선주자들 중에서는 특히 문재인 후보 측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걸로 보인다. 안철수 후보가 보수적 유권자층을 잡기 위해 우클릭을 하면 호남을 비롯한 좌측에서 이탈이 일어나고, 이를 막기 위해 좌클릭을 하면 우측이 무너진다는 ‘딜레마론’이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 측은 이런 주장을 일축한다. 잠시 조정기를 거칠 순 있겠지만 ‘반문정서’를 기반으로 일정 이상의 지지율만 확보해 놓으면 호남은 알아서 따라오리라는 게 이들의 계산이다. 안철수 후보로 구 새누리당의 후신들이 집권하는 걸 막아낼 수 있다는 전망이 분명하다면 어느 정도의 우클릭은 호남 여론이 용인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추세를 보면 심지어 우클릭을 할 필요도 없다는 주장도 한다. 이들의 계산에 따른다면 보수적 유권자층의 지지와 호남 여론의 호응이 있다면 대선에서 50% 득표를 넘길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 (연합뉴스)

두 후보 중 어느 쪽의 계산이 현실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투표일 까지는 아직 한 달이 남았고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예비후보 등록이나 보수후보 간의 단일화 이벤트 등의 가능성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두 후보 모두의 계산이 아닌 방향으로 상황이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상황을 단순화 하면 결국 문제의 핵심은 문재인 후보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진단을 내릴 수는 있을 것 같다. 과거 관성적으로 보수 후보를 지지했던 약 45% 정도의 유권자 중 어느 정도가 투표장에 나오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중 홍준표 경남지사나 유승민 후보에게 투표하기로 한 사람들은 어떤 경우든 투표장에 나온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실망해 투표장에 가려는 동력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문제다.

이른바 ‘반문정서’가 투표일에 실제로 위력을 발휘한다면 이 경우에 해당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은 내키지 않더라도 안철수 후보에 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장에 나올 것이다. 그러나 ‘반문정서’의 위력이 반감될 수 있다면 이들은 투표장에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보수 후보에게 ‘소신투표’를 할 것이다.

보수적 유권자 층에서 문재인 후보를 향한 반감을 고조시킨 핵심은 안보 문제다. 이는 물론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등의 발언이 맥락이 제거된 채로 공유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민주정부 10년의 대북정책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뒤집어 말하면 문재인 후보로서는 “안보 문제에 소극적이어서 지지할 수 없다”는 논리를 완전히 극복하기 어렵다.

반면 호남의 보수적 유권자들은 안보 문제보다는 ‘패권주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신문 지상엔 ‘패권주의’로 표현되지만 대중적 차원에서 이의 실체는 참여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해묵은 감정이다. 참여정부의 정책적 방향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았고, 문재인 후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식의 ‘호남홀대론’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체육인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 대목은 앞의 ‘안보 문제’와는 달리 남은 기간 동안 문재인 후보 측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다. 다만 이는 ‘호남 총리’를 배려한다거나 어떤 개발 공약과 같은 수단으로 접근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후보가 직접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상태에서 이 문제의 전후사정과 향후 계획에 대해 다시 한 번 직접 진솔하게 밝힐 기회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안철수 후보와 직접 대면할 수 있는 TV토론 등에서의 발언이 중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TV토론은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스탠딩 토론’에 가까운 방식으로 펼쳐진다.

최근 문재인 후보에 대한 반감을 키운 또 하나의 요소는 이른바 ‘네거티브’ 대응이다. 대표적으로는 아들인 문준용 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채용 문제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하기 시작한 이후 ‘차떼기 동원’, ‘조폭 사진’ 등에 대한 입장을 문재인 후보 측이 내놨기 때문에 네거티브에 네거티브로 대응한 것 같은 모양이 만들어졌다. 이는 전체 선거 캠페인이란 차원에서 볼 때 결코 좋은 구도가 아니다.

네거티브에 대한 직접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문재인 후보 본인이 어떤 정치 철학을 가졌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문재인 후보는 9일에서 10일에 걸쳐 10여개의 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지금까지 밝혀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유권자들과의 접촉면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 ‘사고’를 우려하기 보다는 이제는 좀 더 열린 모습이 되어야 한다. ‘부자 몸조심’으로 대응할 시기는 이제 다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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