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즈음한 수구세력의 신경질적 반발과 이에 대한 맞불 차원에서 고안된 이른바 ‘친북인명사전’ 발간을 둘러싸고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로 욕설과 고성을 주고받은 꼴사나운 광경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바로 기록의 힘이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우파를 겨냥한 좌파의 정치 공격으로 매도하는 수구세력의 저주에 가까운 증오는 ‘기록’에 대한 저들의 공포감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 아닌가.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을 친북인사명단에 포함시키느냐 마느냐를 놓고 욕설과 삿대질을 퍼부은 저들의 광기 어린 분노는 또 어떤가.

▲ 잃어버린 기억의 보고서(정운현, 1999)
어느 대학 교수가 지적한 대로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치도, 정부의 공식 행정 절차도 아니다. 묻힐 수 있는 지난날의 일을 기록함으로써 훗날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근거를 남기는 작업이다. 당연하게도 역사적 평가는 해석하는 자의 몫이다. 그러니 언제까지 과거사에 발목 잡혀 있을 것이냐고 주장할 게 아니라, 도리어 왜 해방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야 나왔느냐고 묻는 것이 더 마땅하다.

그나마 친일파에 관한 기록은 더러 남아 있었기에 뒤늦은 사전 발간도 가능했겠지만, 친일파 문제와 ‘바늘과 실’처럼 짝을 이루는 ‘반민특위’에 관한 기록은 제대로 남아 있는 게 없다. 대표적인 친일파 연구자인 저자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그 답답함을 이렇게 토로한다. “몇몇 신문의 연재물이나 석사 학위 논문 한 두 편이 나왔을 뿐 1차 자료는 문건 한 장도 제대로 나오는 것이 없었다. 꼭꼭 숨어 있든가 아니면 누군가의 철저한 관련 자료 인멸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인 것 같다.” 어디엔가 꼭꼭 숨어 있는 자료가 훗날 운 좋게 발견될 수야 물론 있겠지만, 기록에 대한 병적인 공포감이 철저한 증거 인멸이란 결과로 낙착됐으리란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반민특위는 해방 직후 일재 잔재 청산과 친일파 척결이라는 민족사적 과제를 안고 대다수 민중과 언론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의욕적으로 출범했다. 반민특위를 취재했던 언론인 조덕송 씨의 증언은 당시의 분위기를 상세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반민특위에 걸릴 대상이 안 되는 데도 스스로 국민 앞에 자신의 과오를 공개하고 공직을 내던진 이들이 있었고, 반민특위가 작은 기구와 적은 인원으로 그만한 성과를 올렸던 데는 국민들로부터 쏟아지는 제보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친일세력과 이승만의 조직적인 방해 공작에 부딪힌 반민특위는 반민법이 공포된 1948년 9월 22일로부터 채 1년도 안 돼 와해되고 만다.

▲ 1949년 반민특위 재판 광경.
반민특위 총무과장을 지낸 이원용 씨의 증언은 특위가 해산한 뒤 모든 자료를 국회 사무처에 넘겨줬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특위가 발족할 때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모든 활동 사항을 기록하고 정리한 자료였다는 것이다. 그 기록은 남아 있을까? 남아 있다면 대체 어디에 숨어 있을까? 반민특위 조사부 서기 출신인 임영환 씨는 “다 갔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했다. 반민특위에 몸담았던 사람들 가운데 생존에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이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1999년이었으니까 증언자 가운데 몇은 이미 세상을 등졌으리라. 다행히 당시 반민특위의 활동상과 사회적 분위기, 반민 피의자 재판 실태, 북한의 친일파 척결 등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이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 책에 수록된 반민특위 관계자 7명의 육성 증언이 갖는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더없이 소중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 나라의 건국 초기부터 잘못된 요소로 차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결국 반민특위가 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50년이나 됐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봅니다.” (조덕송)

“친일파들도 알고 보면 대부분은 살기 위해서 그랬을 겁니다. 배운 게 죄였겠죠. 그러나 그때 사형까지는 몰라도 몇 사람은 본보기로 처벌을 했더라면, 그 정신이 살아남았을 텐데 말입니다. 민족정신이 흐려진 것은 해방 직후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이라고 봅니다.” (임영환)

4년 전 한 언론사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던 저자를 만난 기억이 난다. 인터뷰가 끝난 뒤 저자가 쓴 책을 불쑥 내밀자 이런 글귀를 적어주었다. “傳單 하나도 세월이 가면 史料가 됩니다.” 본업으로 돌아가야겠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인 저자는 얼마 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훗날 이 책의 증언자 가운데 오소백 씨의 말에서 저자가 써준 글귀의 단초를 보았다. “이런 작은 기록이 모여서 역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 세기를 바라보는 그 시간의 간격에도 일제 잔재 청산은 아직도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오욕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정리하는 일에 공소시효가 있을 리 없다. 오랜 세월 잃어버렸던 과거를, 나날이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어엿한 기록으로 되살려낸 이 책은 반민특위에 관한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은 최초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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