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방송통신위원회 신임 상임위원으로 김용수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방송정책실장을 임명해 '알박기 인사'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올 2월 부터 진행된 국회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황 대행의 알박기 인사권 행사에 야당이 빌미를 준 정황을 지울 길 없다.

방통위원은 대통령이 위원장과 위원 1명을 지명하고, 여당이 위원 1명, 야당이 위원 2명을 추천해 임명한다. 3월 26일 임기가 종료된 김석진 위원은 여당 추천, 이기주 위원은 대통령, 김재홍 부위원장은 야당 추천 몫이다. 6월 8일 임기 종료 예정인 고삼석 위원도 야당 추천 위원이며, 7일 임기가 종료되는 최성준 위원장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다.

지난 2월 여야 원내지도부는 3, 4, 6월 각각 임기가 종료되는 방통위원들의 후임 인선에 대한 구두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관련 사정에 밝은 국회 관계자는 "김석진 위원 몫은 자유한국당, 이기주 위원 몫은 황교안 대행, 김재홍 부위원장 몫은 민주당, 고삼석 위원 몫은 국민의당에서 임명하기로 했다. 다만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는 황 대행이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고, 차기 정부에서 임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용수 위원의 방통위원 내정설이 불거진 이번주 3일 고삼석 위원은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로부터 전해들은 바로는 국회에서 추천하는 2인에 대해서만 추천을 하기로 했다"면서 "정부가 지명하는 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임명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관계자 증언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여야 원내지도부가 3월 임기가 종료되는 여야 추천 몫 방통위원 2인에 대한 인사권 행사에는 합의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이에 야당이 김용수 위원 임명에 대해 "황교안 대행의 임기 말 알박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야당이 성급하게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황 대행의 방통위원 임명에 빌미를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왼쪽)와 추미애 대표. (연합뉴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대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굳이 방통위원 인선을 강행할 이유는 없었다. 황교안 대행이 박 전 대통령을 대신해 권한대행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장·차관급 인사권까지는 행사할 명분이 없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였다. 실제로 민주당이 방통위원 인선 움직임을 보이기 전까지 황교안 대행은 방통위원 인선에 대한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자유당 역시 박근혜 탄핵국면에서 정치적 책임에 대한 부담감으로 섣불리 방통위원 인선에 나서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정부여당의 움직임을 보고 야당이 대응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판국이었다. 3~4월에 걸쳐 4명의 방통위원 임기가 종료되면, 조기대선 국면에서 고삼석 위원 1인 방통위 체제가 운영된다. 야당으로서는 불리할 게 없는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지난 2월 방통위원 공모를 강행했다. 당 내부에서도 '시기상조', '탄핵국면' 등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우상호 원내대표가 공모 절차 진행을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결정에 당 내부에서는 "우 원내대표가 염두에 둔 인물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사전 내정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사전 내정 의혹은 우상호 원내대표와 가까운 관계로 알려진 최수만 전 한국전파진흥원장이 야당 방통위원 추천자로 결정되면서 증폭됐다. 최 전 원장은 민주당 방통위원 공모에서 1위 후보자보다 100점 이상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우상호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절차대로 진행하는 것일 뿐"이라면서 "사전 내정설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지만, 의혹이 커지자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최 전 원장의 방통위원 추천 건을 의결 보류했다. 당시 민주당 관계자는 "사전 내정설 같은 잡음이 있었던 데다 1위 후보자와의 현격한 점수 차이에도 불구하고, 2위를 택한 상황, 추천된 사람의 자격 문제 등이 영향을 미쳐 의결이 보류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방통위원 추천 건을 두고 내홍을 겪고 있는 사이 자유당은 김석진 위원의 유임안을 통과시켰다. 자유당은 민주당의 방통위원 추천 움직임을 보고 김 위원 유임안 발표 시기를 가늠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관계자는 "자유당은 민주당 방통위원 인선에 맞춰 후임 인선을 준비해 이미 결정해 놨다"고 전했다.

김석진 유임안 통과 후 황교안 대행도 대통령 몫 방통위원 인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황 대행은 김용수 위원, 천영식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석제범 방송통신비서관 등을 물망에 올렸다. 그리고 황 대행의 대통령 인사권 행사 정당성 등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김 실장을 방통위원으로 내정, 임명을 강행했다.

결국 이번 방통위원 후임 인선 논란에서 야당은 도끼로 제 발등 찍은 셈이 됐다. 야당이 성급한 판단으로 황교안 대행과 자유당의 인사권 행사에 빌미만 제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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