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15회 마지막 장면에서 세 명의 시선이 얽혔다. 이병헌과 대면하게 된 김태희, 김태희와 마주한 이병헌, 그리고 뒤에서 그 둘을 바라보는 김소연의 처연한 눈빛이었다. 이 눈빛들은 이들 셋이 처한 기막히고 아픈 상황을 한 순간에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다음 16회에 이르러 <아이리스>는 눈물바다가 됐다. 이병헌도 김태희도 김소연도 심지어는 정준호까지, 비극적인 로맨스의 주인공들이 모두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모두가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 아이리스 화면 캡쳐

이병헌은 조직에게 배신당하고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떠나 적대조직에 가담해야 했다. 김태희는 사랑하는 남자를 강제로 잃어야 했다. 정준호는 여자 때문에 친구를 배신하고, 그 여자를 아프게 바라봐야 했다. 김소연은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조국까지 배신했는데, 정작 그 남자는 다른 여자를 담고 있다.

모두가 비극적인 인물이어서, 그들의 눈빛과 눈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밖에 없다. 이 중에서 16회에 가장 아프게 느껴진 인물이 김소연이었다.

정준호는 작품 속에서 그의 아픔에 공명할 만큼의 존재감을 구축하지 못했다. 김태희는 눈물을 흘리는 연기가 자연스럽긴 하지만, 심장을 치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병헌의 아픈 눈빛은 이미 그 전부터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충격을 주진 않았다.

이병헌의 아픈 눈빛이 심장을 때린 건 10회에서 NSS에 침투하고 김태희와 마주치는 장면에서였다. 그다음 김태희를 고문하는 장면에서도 이병헌의 눈빛은 심장을 울렸다. 16회에 김태희를 아프게 바라보는 것은 그런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김소연의 경우는 그전에 깔렸던 정서가 이번 주에 증폭됐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공감을 축적해놓지 못한 정준호와 달리 일본에서 이병헌과 함께 하는 장면에서 이미 애달픈 정서를 시청자에게 각인시켰다. 그 후에도 시시때때로 이병헌을 서글프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아픔을 축적해나갔다. 그리고 16회에 그 아픈 정서가 폭발했다.

이병헌과 김태희가 안전하게 대화를 나누도록 하기 위해 밖에서 경계를 서는 처연한 모습은 깊은 슬픔을 느끼게 했다. 네 명이 모두 흘린 눈물 중에서도 김소연의 눈물이 가장 아프게 느껴졌다. 자신이 김태희의 생존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왜 숨겼느냐는 이병헌의 질문에 눈물로 답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처지가 너무나 애처로웠던 것이다.

네 명 모두 아픈 사랑의 주인공인데, 유독 이병헌과 김소연의 눈빛이 심장을 울리고 있다. 또, 16회에서 비록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조국의 요인을 처단하며 남한에 협력해야 하는 김승우의 처지도 아픔을 느끼게 했다. 물론 김승우의 경우엔 멋졌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린다고 하겠다.

이병헌, 김소연, 김승우는 배우의 존재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모두에게 기막힌 사연이 있는데 유독 이 셋의 눈빛이 시선을 사로잡고, 심장을 친다. 김소연과 김승우는 방송 분량에서 김태희에게 밀리는 데도 존재감에선 밀리지 않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그런 존재감 때문에 그들의 시선, 감정에 시청자가 공명하게 된 것이다. 이병헌의 경우는 분량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자신의 100%를 발산하는 본좌 중의 본좌라고 할 수 있다.

16회에서 동시에 극적인 순간을 맞고 눈물을 흘렸지만 김태희보다 김소연이 더 큰 울림을 준 것에서 김소연의 강력한 존재감이 다시금 확인됐다. 김태희는 얼굴 클로즈업샷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는 하늘이 내린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영화 <중천>에서 가장 강렬한 스펙타클이 김태희의 클로즈업샷이었을 정도다.

하지만 이상하게 절절한 정서가 깊게 전달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김소연이 크게 느껴진다. 아주 오랫동안 김소연이라는 배우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아이리스>에서 그것이 역전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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